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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기독교우파와 시오니즘의 포로(2)
부시와 남부 기독교 근본주의와의 관계
 
백찬홍   기사입력  2003/04/13 [01:53]
* 본문은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에 관한 배경을 종교사회적 측면에서 밝힌 글입니다. 본문에 대한 독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참여를 부탁드립니다-편집자

-. 기독교우파는 어떻게 등장했는가(지난호)
-. 부시와 기독교우파의 관계(이번호)
-. 부시정권은 기독교우파와 시온주의의 야합(다음호)

뉴트 깅그리치 혁명이후 지난 199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상하원에서 다수파가 되지는 못했지만 크게 약진했다. 98년 선거에서 승자는 클린턴이었고 패배자는 선거결과에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를 발표한 깅그리치와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에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공화당 지도부 및 기독교우파였다. 당시 기독교우파는 그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60년대 반문화와 마약, 성적방종의 상징적 인물인 클린턴이 대통령의 지위에 있다는 것에 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그들은 르윈스키 사건을 통해 탄핵을 추진했으나 낙태의사에 대한 살해 등으로 대변되는 우파의 과격하고 파괴적 행동에 위기감을 느낀 자유주의세력 단결과 온건보수세력의 이탈, 언론의 비우호적인 태도로 선거에서 패하고 탄핵도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2월 최병수씨가 미대사관 앞에서 부시 미대통령이 이라크의 석유를 갈취하는
깡패에 불과하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민의신문 이정민기자 jmlee@ngotimes.net


기독교우파 지도자의 한 사람인 게리 바우어는 공화당 패배의 원인이 클린턴 행정부와의 98년도 예산안 협상에서 대규모 감세안을 관철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종교적 우파들은 그들의 아성인 캔자스,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노스캐롤라이나, 워싱턴주, 켄터키, 뉴멕시코 등의 주지사나 상원의원 하원의원 선거 등에서 고배를 마셨다. 98년 중간선거 결과 상원에서는 55대45, 하원에서는 2백23대 2백11로 공화당이 다수당 위치를 유지했지만 선거 결과를 놓고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예상밖 선전’ 또는 ‘공화당의 패배’로 규정지었다. 특히 클린턴과 힐러리는 그들이 꼭 떨어뜨리고 싶었던 2명의 적, 즉 클린턴 탄핵에 적극적이었던 뉴욕주 알 드마토 상원의원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로치 페어클로드 상원의원을 낙선시켜 정치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민주당의 승리는 경제호황에 힘입은 바가 크다. 경제가 안정되면서 중도보수파가 공화당에서 이탈하면서 여론이 민주당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인 것이다.

당시 ABC방송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자신을 보수파라고 답한 사람은 94년 선거때 37%이었으나 98년에는 31%로 줄었고, 자유주의자라고 답한 사람은 18%에서 19%가 되었는데, 중도파라고 답한 사람은 45%에서 50%로 증가했다.

민주당은 또한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인으로 상대적으로 멕시코출신이 많다-과 흑인들이 지지를 받았는데 이들은 기독교우파의 인종주의에 위기를 느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은 총 투표자의 16%밖에 되지 않았지만-94년의 12%에 비하면 크게 늘어났다-결집력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승패의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지사 및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히스패닉표의 70%, 흑인표의 80%, 여성표의 60%를 얻었다. 뉴욕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챨스 슈머 후보는 히스패닉표의 82%, 흑인표의 86%, 여성표의 59%를 얻었다. 조지아주에서 흑인은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인구의 27%밖에 안되지만 흑인투표율은 총투표율의 29%이었다. 조지아 주에서 민주당의 로이 바네스 후보는 백인표는 40%를 얻었으나 흑인표는 90%를 얻음으로써 승리했던 것이다.

민주당의 승리로 지도부가 사퇴하고 추종자들의 이탈 등으로 큰 위기가 닥치기도 했던 기독교우파는 2000년 대선을 앞두고 96년 대선과 98년 중간선거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선거전략을 준비했다. 이들은 청년시절 사생활이 복잡하고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했으나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부시를 적극적으로 밀어 당선을 시켰다. 기독교우파는 승리를 위해 그들이 이전에 취했던 복잡한 슬로건을 접고 당선을 최우선으로 하는 단순한 전략으로 보수적 유권자를 흡수해 나갔다.

부시 역시 자신의 성향을 감추고 98년 선거이후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공화당의 좌·우파를 아우르고 유권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온정적 보수주의를 채택해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있었고 플로리다 주지사를 맡고 있던 자신의 동생 젭 부시의 도움으로 대통령의 권좌에 올랐다.

대통령이 된 후 부시는 곧 본색을 드러냈다. 그가 취임후 처음 한 일은 대폭적인 세금감면이었고 인종차별주의자인 애시 크로프트를 법무장관에 임명해 우익들을 기쁘게 한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의회인준을 그렇게 반대했던 애시 크로포드는 보수성향을 가진 오순절교회-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가 이 교파다-목사의 아들로 상원에 진출하기 전 미주리 주지사와 주 법무장관을 역임하며 낙태와 동성애자들의 권리부터 인종과 종교문제에 이르기까지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대단히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는 상원에 입성한 후에도 총기규제와 낙태권 반대를 주장했고 99년 미주리주 대법원 흑인판사인 로니 화이트의 연방판사 임명을 반대해 우익의 영웅이 되었으나 반대파에서는 '인종주의자'란 비난을 받아온 인물이다.

부시는 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탈퇴와 교토기후협약을 거부해 신보수주의자와 기업가들을 감격시켰다. 9.11이후 그는 즉각적으로 '악의 축’에 대항, 대테러 전쟁을 불량국가들과의 전쟁으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우파에 엄청난 기대를 주고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을 통해 기독교보수파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실제 부시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가 보수파 기독교의 거두인 빌리 그레함 목사에게 감화를 받은 후 독실한 신앙을 지켜왔는데 백악관에 입성해서도 기도와 성서 읽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주 1회 이상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관 등 백악관 직원 10여명이 모이는 성경 읽기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우리는 기도를 통해 전능하신 신에게 우리의 슬픔을 감당해달라고 간구한다."(9.11 테러 직후)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이다"(2003년 1월 국정연설)라면서 성경구절들을 쏟아내고 있다. 링컨에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 대통령들은 공식 연설에서 성경을 즐겨 인용했지만 하지만 부시처럼 자주, 광범위하게 성경 구절을 인용한 예는 없었다.

부시의 이러한 행동에 자극 받은 도덕적 다수파의 지도자 팻 로버트슨 목사는 9.11직후인 9월 22일 자신이 창설한 기독교방송네트워크의 `700 클럽'에서 "이슬람 이민자들은 우리 외교 정책을 그토록 경멸하면서도 미국에 살려고하니 이상하지 않느냐"면서 "코란에도 분명 이교도를 보면 죽이라고 적혀있다"고 말하고 " 이슬람은 공존을 원하는 평화로운 종교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이민정책은 유럽 쪽에서 멀어지고 중동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을 우리 가운데로 불러들였다. 그들 속 어디에나 틀림없이 테러 조직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9.11이후 계속되는 기독교우파인사들의 이러한 발언은 새로운 적으로 이슬람을 목표로 하면서 남부의 기독교인들을 강하게 묶어두고 있다. (이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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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기독인연대' 집행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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