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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후보님들, 힘 내십시오!
 
CBS노컷뉴스   기사입력  2006/05/31 [09:35]
엥겔스는 19세기 말 영국 노동계급의 투표권을 "가장 예리한 새로운 무기"로 평가하고 "혁명주의자들은 불법방식과 봉기보다 합법 방식으로 더욱 번영한다"고 주장하면서 "혁명은 투표소에서!"라고 외쳤다.

그로부터 100여년 뒤 세상은 앵겔스의 뜻대로 돌아가진 않았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조사 결과 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소득 분포의 최하위 20%에 속하는 계층의 38.7%만이 투표한 반면 최상위 20%에 속하는 계층은 72.6%가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정치학자 토머스 드루카는 "투표율이 낮을수록 투표 참여에서 계급과 교육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투표에선 계층 이외에 세대가 주요 변수다.

지난해 중앙선관위의 '10·26 재선거 투표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재선거를 치른 4개 지역에서 20대 유권자의 투표율은 21.0%에 그쳤으나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61.2%에 달했다.

또 30대는 33.0%, 40대는 46.4%, 50대는 56.2%여서 연령이 낮을수록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현상이 뚜렷했다. 선거법 개정으로 이 선거에 처음 투표에 참여한 19세의 투표율도 21.4%에 그쳤다.

계층·세대별 투표율 차이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문제는 낮은 투표율이다. 그래서 투표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치학자 버나드 마넹은 "선거는 민주적인가"라는 책에서 "사실상, 오늘날 정치라는 무대를 지배하고 있는 (혹은 점점 그렇게 할) 사람들은 그 사회의 진정한 반영이 아니다"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단지 '새로운 엘리트의 부상과 다른 엘리트의 퇴조'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통치를 받는 사람과 통치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의 지속, 혹은 그것의 심화"를 우려했다.

한국도 그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치인 욕하기'는 범국민적 오락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도 후보들은 유권자의 무관심과 냉대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뛰는 후보들에게 경외감마저 갖게 된다.

유권자들이 후보들을 냉대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나, 그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혹 '자기이행적 예언'이라는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까? 후보들을 모두 다 냉대해도 마땅한 사람으로 대해버리면 그런 냉대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당선된 사람들이 원래의 뜻과는 달리 정말 냉대받아 마땅한 자치단체장·의원이 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일종의 복수극이라고나 할까.

유권자와 후보들의 관계는 자녀교육에서의 부모-자식 관계나 학교에서 교사-학생 관계와 비슷할 수도 있다. 부모·교사의 따뜻한 관심과 우호적 태도를 보지 못하고 자란 자녀·학생은 부모·교사를 존경하지도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국정치가 그런 악순환의 함정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

그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돌리기 위해 유권자들이 오히려 후보들을 감동시키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유권자들이 후보들로부터 인사를 받거나 명함을 받을 때에 '고맙습니다', '정말 고생하십니다', '힘 내십시오'라고 격려해주면 안될까? 
 
새전북신문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교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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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31 [09: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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