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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묻지말라
국익을 위해서라도 이라크전반대 파병반대
 
이승훈   기사입력  2003/03/18 [23:08]
이라크전의 본질이 미국의 석유 이권 확보와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침략전쟁이라는 것에 대해 세계 여론이 동의하는 가운데에서 미국은 UN과 세계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전을 감행하려한다. 이에 대해 노무현대통령은 국회 동의도 없이 혼자의 판단만으로 부시대통령에게 이라크전에 대해 지지를 밝히고 파병약속을 했다.  

이라크전이 비논리적이며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도 대부분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이 불가피하다고 하면서 파병을 해야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한미동맹관계의 특수성과 북한문제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실익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행동에 동참하며 파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관계와 관한 조약에는 동맹국이 침공당했을 때만 파병을 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침략 전쟁에 참여할 의무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다. 우리 나라가 이라크전에 참전해야할 의무는 없으며, 이라크전 참전과 한미동맹관계는 무관하다. 이라크전에 참전하지 않아도 우리는 미국에게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여전히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를 너무나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적 문제는 이라크전이 북한핵문제와 관해서 우리 나라 안보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다음이 북한이라는 시나리오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수백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서 이라크전은 마땅히 반대해야할 것인데 이러한 문제에 남북한 사람의 생명과 국익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행위의 준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우울하다.  

우리로서는 북핵문제를 포함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에서 미국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폭격을 하는 등으로 남북한 공히 수 백만 명,  어쩌면 수 천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무력적 해결방법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미국의 자제를 요구하고, 미국에게 순수한 자위권 차원에서만 전쟁억제력을 보여주면서 북한정책에 있어서 우리 나라에 보조를 맞추도록 요구를 해야한다.  

이라크전에 대해 우리 나라가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침략 전쟁에 동참하면서 미국에 알랑거리는 것이 미국의 협조를 구하는데 과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UN을 무시하며 전세계적 반전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이다. 미국의 행위규범, 선악판단의 기준이 오로지 미국의 국익이라는 것을 그 어느 나라도 부정할 수 없는데 말이다.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UN의 거부, 국제적인 반전여론, 자국 내의 반전여론을 무시하고 이라크의 수 백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가면서까지 전쟁을 단독강행하려는 미국을 볼 때 북한을 통해 동북아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고자 하는 미국이, 막대한 양의 최고급 우라늄원광 자원을 가진 북한에 대해서 욕심을 갖고 있는 미국이, 남한의 의사와 상관없이 북한에 전쟁을 단독강행할 욕심을 삼가할 것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미국의 이해관계가 절대적으로 평화적 해결방법을 원하는 우리 나라의 입장과 배치되는 경우가 생길 때 우리가 미국의 이라크전에 동참해주고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주었다는 것으로 미국이 자신의 생각과 국익을 양보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변수가 너무 많다. 우리가 아무리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 해도 김정일의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이 엉망으로 될 수도 있다. 북핵문제를 포함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책에서 미국의 협조를 구한다는 이 현실적인 문제에 대하여 이라크전 지지와 참전이 어떠한 현실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의 편을 들어준다면 오히려 독불장군 미국의 버릇을 더욱 나쁘게 할 지도 모른다. 하나로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국익은 마땅히 국제사회의 동의와 함께 인류공영의 가치에 부합할 때만 국익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국익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인류공영의 가치를 저버린 국익이라는 것은 10년도 못가서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신뢰를 없애버리는 국가적 부담으로 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묻지말라'고 했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모든 전쟁을 거부해야할 수준에 이르렀다 . 역사가 대학살극으로 규정할 것이 분명한 이라크전쟁 앞에서 국익을 말하지 말자. 하나된 세계에서 우리는 연대민주주의의 기치아래 우리 안과 우리 밖의 모든 폭력과 전쟁에 대해서 연대를 하며 거부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각자가 또 다른 폭력과 전쟁으로부터 생명과 재산의 권리를 보호받기 위한 전제이며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하다.

[참고기사]이승훈, 폭력에 대한 세비야선언과 인간방패, 대자보 96호

인간방패로 상징되는 연대권적 가치가 보편화되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미국의 비위를 맞추어주면서 미국이 우리를 이해해줄 거라고 믿기보다는 하나된 세계속의 국가로서 국민으로서 개인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편이 북한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이 되고 우리의 안전과 국익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장받는 길이 될 것이다.  

이제 수 백만 명의 무고한 죽음앞에서 이러한 논리적인 사고는 그만하고 싶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반전에의 의지를 보여주어야할 때다.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 지원연대에서는 반전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많은 네티즌들의 참여와 연대를 부탁한다.  / 논설위원

자유... 백수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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