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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환, 김현철, 김홍업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대통령의 형은 '의견'보다는 침묵을 선택해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3/02/27 [23:52]
세상이 바뀌었다. 대통령의 친인척이 '나쁜 짓'을 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까지 하고서도 비굴하게 침묵하다 정권말기에 물 만난 고기처럼 폭로전을 감행했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금은 '나쁜 짓'의 개연성만 가지고도 비판의 봇물이 터지고 있다. 당사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관련기사]  양문석, 노건평씨, 당신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자보 97호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가 차기 국세청장 물망에 오른 곽진업 현 차장에 대해 능력 있고 청장 맡는 게 순리라며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의견'을 표했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또 "돈 같은 것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연이 너무 딱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서 도와주기도 한다."며 '사연 딱한' 공무원의 민원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는 발언도 세간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인사를 앞둔 특정인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의견 낸 것을 건평씨는 '추천'과 '인사청탁' 중 긍정적 의미인 추천으로 해석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한데 추천이든 인사청탁이든 목적은 '그 사람 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식적인 통로냐 개인적인 통로냐에 따라 추천과 인사청탁은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또 유사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연 딱한' 사람 중 단 한 명만 해결해 주는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 해결했느냐도 문제다. 공식적으로 책임 있는 사람이 절차를 밟아 처리하는 것과 달리 책임지지 않지만 힘있어 보이는 사람이 '선처를 호소해' 해결하는 것은 결과와 상관없이 비판의 대상이다.  

우리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3대 비공식적 의사결정 통로'로 인해 수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어왔다. 과거까지 갈 것 없이 현대사만 보더라도 이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다. 그 결과 비공식적 사적 통로로 인사문제나 정책문제가 결정될 때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분노의 한숨만 내 쉬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노씨가 '능력 있는 인사를 추천'하고 '딱한 사연'을 해결해 주었다는 사실에 '감동'하거나 '휴머니스트'로 찬양하기보다는 '월권'이니 '권력형 인사청탁'이라는 비판이 자연스레 나온다. 나아가 '악몽 같은 과거 경험'에 의한 '불안감'이 증폭된다.  

노씨는 평범한 농사꾼이 아니다. 세무공무원으로 10년의 관록을 먹었다. 세무 공무원 교육시험에서 전국 1등을 차지할 만큼 유능했다. 또 동생인 노대통령의 과거 정치활동과 많은 선거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즉 한국사회가 돌아가는 이치, 권력의 속성과 결말을 알만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비공식적 개인적 통로로 특정인에 대한 '호의적 의견'을 내고, 딱한 사연을 해결해 주면서, 인사청탁 안 하면 되고 돈 받지 않으면 되지 대통령의 형이라고 해서 의견조차 내지 못하냐며 항변하고 나섰다.

해도 된다. 하지만 그 전에,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의 형 기환과 동생 경환, 노태우의 처고종사촌 박철언, 김영삼의 아들 현철, 김대중의 아들 홍업과 홍걸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감옥살이를 했고, 또 아직도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문제는 이들 개인의 불행에 그치는 게 아니다. 바로 이들 때문에 국민들이 겪었던 그 엄청난 절망과 분노 그리고 비공식적 사적 통로의 고착화로 인한 인사와 정책의 혼선이 더 큰 문제였다. 이것이 노씨가 자중하고 또 자중해야 하는 이유다. 다행이 청와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조사에 나섰다니 지켜 볼 일이다.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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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2/27 [23:5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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