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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씨, 당신은 대통령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친인척은 '패가망신' 발언을 잊지 말아야
 
양문석   기사입력  2003/02/27 [01:04]
능력으로 보나, 조직장악력으로 보나 ㄱ씨가 차기 청장이 되는 것이 순리에 맞다. 당선자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ㄱ씨가 배제된다면 오히려 역지역차별일 수 있다. 대선 전에 동생(노무현 대통령)에게도 ㄱ씨가 매우 유능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한 일이 있다.

시사저널 최근호(697호)에서 노대통령의 형이자 세무공무원 출신 노건평씨의 발언이다. 차기 국세청장의 인사 문제에 노씨의 개입설이 분분한 가운데 스스로 이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ㄱ씨와 ㅂ씨가 경쟁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ㄱ씨는 영남출신이고 ㅂ씨는 호남출신이다. 그리고 ㄱ씨가 노씨에 줄을 댔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개인적인 친분이 없다고 밝히면서 ㄱ씨가 청장이 되는 것이 순리란다.

돈 같은 것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연이 너무 딱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 도와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노부모와 아내를 경남 거제에 둔 채 홀로 제주에 파견 근무를 나가 있다는 공무원의 사연을 접하고는 해당 관청에 직접 연락해 선처를 부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연이 딱한 경우가 어디 한 두 군데이겠는가. 공무원을 예로 들면, 교직공무원들의 경우 지역 간 이동이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다. 현실적으로 '맞교환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지역에 있는 교사가 이쪽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거의 길이 없다. 결국 '돈과 배경'만이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결혼만 하고 헤어져 사는 주말부부, 홀로된 부모, 장애아동을 가진 공무원 부부의 생이별 등은 어찌 보면 일반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딱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노씨가 '너무 딱하다 싶으면' 이런 문제를 취임 초 한번 정도 정책적 차원에서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을 건의했다면 이것은 너무도 생산적이며, 이것에 시비를 걸면 이것이야말로 '대통령가족 역차별'일 수 있다. 한데 개인적인 관계로 들었던 '딱한 사연'에 대해서 '개인적인 문제'로 해결한 노씨는 좋게 말하면 휴머니스트고, 나쁘게 말하면 '권력사칭'이 전문인  '브로커'일 뿐이다.

노씨는 개인이다. 그리고 왕조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건평君'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 풍토가 대통령 가족이면 '왕족'쯤으로 여기는 것은 그 동안 대통령 가족들이 '왕족'으로 행세해 왔기 때문이며, 실제 왕족과 같은 권력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대통령의 형이 '혹시 선처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문의'해 오는데, 어느 공무원이 감히 '안됩니다'고 냉정하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노대통령은 "지금까지 돈이 관련된 것만 처벌했지만 앞으로는 연고 정실 문화도 배격하겠다"며 대통령 친인척에게 줄을 대다 걸리면 줄 대는 사람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패가망신'을 당한다고도 경고했다.

한데 벌써 노대통령의 형 노건평씨가 '저질러버렸다'. 노대통령의 '영(令)'이 노씨에 한해서는 서지 않은 것이다. 인간적으로 딱하다고 봐주고, 사연이 안타깝다고 봐주는 것도 대통령의 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나 조직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냉정하게 노씨의 개인평가이기에 그 주관성과 자의성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인사문제에 친인척이 개입했다면 이것은 앞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가 있다. 이것이 지난 수 십 년 간 우리 국민들이 겪었던 경험법칙이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치떨리는 분노'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 형 전기환, 노태우의 처이종사촌 박철언, 김영삼의 둘째 아들 김현철, 김대중의 둘째아들 김홍업 셋째아들 김홍걸. 그 이름만 들어도 한 때 대통령에 준하는 권력을 누렸던 인물들이고, 하나같이 감옥살이를 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았던 인물들이다. 이들도 처음에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노씨는 현정권의 친인척 중 '가장 잘 통하는'인물이다. 대통령의 형이기 때문이다. 노씨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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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2/27 [01:0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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