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검사하는 친구로부터 온 편지
유시민씨, 당신이 검사에 대해서 얼마나 압니까?
 
양문석   기사입력  2003/03/11 [23:08]
검사하는 친한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유시민씨가 3월1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 "대한민국 검사들은 무엇으로 사는가-호불호 따지기 전에 강금실을 배워라-<유시민의 아침편지>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를 보고"에 대한 반론적 성격을 지닌 글이다. 그리고 필자가 대자보에 쓴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검찰의 독점적 권력인 기소권을 분산해야"는 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항의'하는 글이다.

[관련기사]
유시민, 홍길동 검사님께, 검찰독립을 믿습니까?  대자보 98호
양문석,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대자보 98호
유시민, "대한민국 검사들은 무엇으로 사는가-호불호 따지기 전에 강금실을 배워라, 유시민씨 홈페이지

지난 일요일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가 있은 후 검사 일반이 가지는 절망감과 자괴감, 그리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를 '분노'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검사집단이 가지는 일방적인 소견(小見)도 있고, 또 현실적으로는 당장 수사를 해야 할 상황에서 '검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짐으로써 느끼는 당혹감도 있다.  

필자는 이미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글을 대자보에 발표할 때 가장 숙고하고 또 취재하면서 정리한 기소독점주의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수사권 독립'의 문제를 밝힌 바 있다. 이는 아무리 친한 친구일지라도 양보할 수 없는 소신이다. 하지만 검찰 전체를 각종 수사(修辭)를 동원해서 '비아냥'거렸던 것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검사 전체에 대한 일방적이고 무자비한 사회적 매도'라는 현재의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내 질렀던 몇몇 문장은 참으로 부주의했다. 필자 스스로 '시류'에 편승하며 검찰을 '죽여야 한다'는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는 점에서 반성한다.

친구의 분노가 가득 담긴 주장이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항목에는 이런 말도 있네요. 검사들에게 쫓기고 박해받은 한총련 수배자, 구속된 양심수...

저는 감히 묻겠습니다. 이게 검사 책임입니까? 검사는 법을 수호하고 집행합니다. 악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무리 처벌하기 싫은 피의자도 현행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검사 맘에 들면 봐주고, 맘에 안 들면 처벌합니까? 저는 요구합니다. 그 놈의 현행법 좀 고치세요. 국보법 얘기 몇 십 년 되었지요? 검사가 국보법 폐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나요? 도대체 누구 책임입니까? 그게 저희들 책임입니까? 저는 공안부에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만약 공안부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친구의 안타까운 주장이다.

…참 이번 토론회와 관련하여 한마디하지요. 자, 검사를 전국적으로 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후련하겠지요. 그리고 모든 지면과 인터뷰에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런 검토와 고민도 없이 마구 글을 써대기 시작합니다. 천하에 검사 잡놈들이 감히 대통령에게 까불고 있다며 온 나라가 광분의 도가니가 됩니다.

저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수사를 하나. 모든 피의자들이 제 앞에 와서 속으로 '바보 새끼, 말도 잘 못하는 새끼, 대통령에게 까부는 새끼'라고 생각을 할텐데, 수사기관의 권위는 무엇으로 지켜져야 하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검찰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 좀 있다는 사람들이 모두가 들고일어나는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많은 분노가 묻어 있고, 스스로 철저히 반성하지 못했다는 비난도 받을 수 있는 글이다. 하지만 몇몇 측면에서 현재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만한 점도 있어, 이 글을 익명처리해서 전문을 공개하고자 한다. 일방적인 비난보다 애정을 가진 비판을 기대한다.


유시민씨께 따집니다

먼저 당신께서 '자격'을 따지시니 자격에 대해서 말해 보겠습니다.

0대 000과 00학번이고 00년부터 소위 운동 좀 했습니다. …(편집자주: 신분을 드러낼 수 있는 대목이라 생략)00년도에 군대 갔다가 00년 제대해서 현장 준비(편집자주: 노동운동)하다가 '학삐리'는 필요 없다는 대세에 밀려 어찌어찌 살다가 사법시험까지 봤고 00년 검사가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정도면 말을 할 자격은 갖추어 진 셈이죠?(이것도 불만이시면 이하는 읽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또 좀 감정적이고 비꼬는 말이 가끔 있을 텐데 그것도 불만이시면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데는 소질이 없어, 맨 날 뛰어다니는 일을 저의 자랑으로 삼은 자이기에 저의 글이 호소력이 있거나 논리적이지 않더라도 그런 것으로 트집잡지 말기를 바랍니다.

먼저 감정이 상한 몇 가지 말을 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께서 말한 두 번 째 이야기입니다. 권력욕과 특권의식에 대한 항목말입니다.

이런 예를 들고 계시죠.

폐렴에 걸려 죽은 아내 핑계를 왜 대느냐는 것이지요. 예 맞습니다. 누가 죽으라고 했나요? 죽은 사람이 등신이지요. 다만 왜 그 얘기를 했습니까? 이 잘난 국가를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다가 감기 걸린 아내를 챙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1년 365일을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놀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그 얘기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의 성실성과 국가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돈 있는 자들 접대 받느라 시간 허비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예를 들어보지요. 0년 0개월 동안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이었습니다. 3시는 기본이고 4시까지, 그것도 1년 내내. 오후 6시에 퇴근한 기억이, 휴일 집에서 쉰 기억이 별로 없으니, 대부분의 날을 사무실에서 보냈지요. 저도 어디가면 저런 얘기하고 싶습니다. 너무 힘들게 살고 있어서 관두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하는데, 억울한 감정을 느낄 때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위로 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또 만삭의 여검사 얘기를 하셨지요. 그것이 검찰 책임입니까? 누가 그런 규정을 두었지요? 보내주고 싶다고 지검장 또는 지청장이 맘대로 보내줍니까? 임신한 여자 공무원들에 대한 처우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만, 그건 당신께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그 여검사가 새벽까지 일하다가 바로 병원에 갔다는 얘기를 한 것입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했던 검사의 의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호소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 '그렇게 미워하기만 하면 정말 힘 빠진다'는 호소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 주제도 아닌 얘기를 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겠지요.  

검사들의 격무는 자초한 일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말해보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 수사권 독립이라는 것과 맞물려 있어 이것만 가지고도 많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사실 검사 0년째 맞는 저로서는 아직 판단이 선 상태가 아니어서 쉽게 말할 주제는 아닌 것 같군요. 짧게 느낌만을 말하겠습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론, 정확히 말해 '검사의 수사지휘 배제론'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현실적인 이유입니다.(검찰의 공식적 입장도 아니며, 저의 짧은 생각이니 그 점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검찰제도의 취지 중 하나는 아무나 법정에 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식 제도와는 전혀 틀리지요(다만 미국도 배심원 참여 하에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는 전체 사건과 비교해 상당히 적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다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모릅니다. 학자도 아니고 미국엔 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또 미국병 환자들을 경멸하기에 솔직히 별로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대검이나 법무부에서는 상당한 연구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판사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자가 기소, 불기소 여부를 판단하여 유죄의 증거가 있는 자만을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지요. 사실 경찰의 수사권 독립론이 나오기 전, 검찰 선후배 사이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오고 갔습니다. 수사지휘가 내실화되지 못해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방안을 연구해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수사권 독립론이 제기되었고 그 주장에 많은 힘이 실렸습니다. 저로서는 좀 당황스럽습니다.

경찰은 사실관계를 수사합니다. 경찰의 수사는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기초 단계이지요. 그 사실관계를 기초로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 증거는 있는지 여부를 검사가 판단을 합니다. 그래서 증거가 있는 범죄자에 대하여는 법원에 기소를 합니다. 또 혐의가 없는 자에 대하여는 불기소 처분을 하지요. 그래서 검사를 준사법기관이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불기소 처분에 대해서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통제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사권 독립론은 검사 지휘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경찰이 직접 판단해서 수사할테니 검사가 끼어 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지금 경찰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못하나요? 모든 수사를 독자적으로 합니다. 다만 기소 단계에 가서 송치 전에 검사가 기록을 한 번 들춰보고 법률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증거 없는 사건을 마구 수사하여 인권침해 소지는 없는지, 죄가 되지 않는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피의자들과 유착되어 피의자가 뒤바뀌거나, 청탁수사로 억울한 사람이 체포된 것은 아닌지를 검사가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미한 사건에 경우에는 예외라구요? 경미한 사건의 피의자는 함부로 다뤄져도 상관없나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교통사고 사건이 현실에서 얼마나 왜곡되지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경찰은 기본적으로 서민들과 직접 관계를 갖습니다. 아무래도 은밀한 거래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요. 검사는 자주 옮겨 다녀 부임지에서 범죄정보 수집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입니다. 범죄자들과의 유착관계가 발생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지 않을까요(전혀 없다고 할 순는 없겠지요). '견제와 균형'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수사권이 독립되어야 한다고들 난리지요? 검사가 그런 사건을 한번 들춰보는 게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행정사건, 즉 행정기관에서 과태료 처분을 해도 충분한 사건을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 검사가 쓸데없이 그러한 사건에 매달리는 상황이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음주운전, 여관의 미성년자 혼숙의 경우 여관업주, 낚시 금지구역에서 낚시행위 등등(생각나는 예를 들었을 뿐 이런 범죄들이 공식적으로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는 행정처분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예외 없이 형사처벌 대상 사건입니다. 이런 것들 누가 만든 법이지요. 그 잘난 국회의원들이 만든 것 아닙니까? 이런 사건을 법무부에서 놓기 싫다고 형사처벌 대상으로 정할 수 있습니까?

다만 음주운전자들,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자들은 형사처벌 대상으로 설정해야 악의적인 자들을 구속도 하고 엄한 처벌을 할 수 있는 측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범죄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저는 당신께 간절히 바랍니다. 행정처분으로 충분한 사건은 제발 좀 떼어내라는 글 좀 쓰시기를.

저의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론적으로 더 연구를 해야겠지요.

당신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항목에는 이런 말도 있네요. 검사들에게 쫓기고 박해받은 한총련 수배자, 구속된 양심수...

저는 감히 묻겠습니다. 이게 검사 책임입니까? 검사는 법을 수호하고 집행합니다. 악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아무리 처벌하기 싫은 피의자도 현행법을 위반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검사 맘에 들면 봐주고, 맘에 안 들면 처벌합니까? 저는 요구합니다. 그 놈의 현행법 좀 고치세요. 국보법 얘기 몇 십 년 되었지요? 검사가 국보법 폐지하지 못하게 하고 있나요? 도대체 누구 책임입니까? 그게 저희들 책임입니까? 저는 공안부에 떨어지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만약 공안부에 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실망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가요. 언젠가 신문기고에서 국보법 이야기를 하셨었지요? 제가 당신보다 얼마나 나쁜 놈이기에 이런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들어야 하지요?

당신의 글 마지막 부분에 강금실 장관을 배우라고 하면서 법관으로서 할 일을 했으며, 철저한 법률가라고 하셨지요. 법을 어긴 사람을 잡는 경찰관은 죽일 놈이고 훈방시켜 준 판사는 훌륭한 법률가인가요? 장관님은 자신의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도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물론 잘 하셨지요. 저도 그런 판사에게 재판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운이 안 따랐나 봅니다.

어떤 의도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신 건가요. '검사가 현행법을 어기고 법 집행을 맘대로 해도 좋다', '기분에 따라 일해도 좋다'는 주장을 하시는 건가요? 정반대로 죄는 안되지만 나쁜 놈이라고 생각되면 전부 잡아넣으면 어떨까요? 그런걸 원하십니까? 법 집행을 하는 검사가 그렇게 기분 나쁜 존재입니까?

당신의 세 번째 주장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주장에 동의합니다. '외압' 얘기하셨지요. 얼마 전 노 대통령의 사정속도 조절 발언도 그 외압 중 하나라는 것 모르십니까. 적어도 지금까지 검찰이 판단하기에는 외압이 분명합니다. 재벌개혁 많이 떠듭니다. 저도 어떻게든 그 일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즘 돌아가는 얘기를 들어보면 제도개혁으로서의 재벌개혁만 되면 여태까지의 실정법 위반, 다수 투자자들에 대한 막대한 손해쯤은 충분히 봐 줄 수 있다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아닙니까? 2천 만원 사기 친 놈들 구속하면서 경제를 말아먹는 놈들은 어떤 짓을 했든지 그냥 봐주자고요?

정 원하신다면 봐줄 수 있지요. 하지만 다시는 검찰이 자기 역할 못한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정치권력이 수사하라면 하고 말라면 안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검찰이 정치권력에 예속되어 있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당신께서 한 네 번째 주장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이 사적인 비리로 얼룩져 있고, 검찰도 그 정권들에 의해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존경해 마지않는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께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철통같이 믿으시나 보지요. 전 아닙니다. 토론회 후에 비서진의 대응, 김호철씨의 대응이 압권이더군요. SK수사 과정에서의 외압에 대한 발언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하시더군요. '책잡힐 말을 이런 데서 하면 어떻게 해, 자식아!'라는 투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김호철씨를 보면서 벌써 조직 감싸 안기를 시작했구나를 느낍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검사들의 무례함만 보려하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생각조차 안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생각이 틀렸나요.

참 이번 토론회와 관련하여 한마디하지요. 자, 검사를 전국적으로 씹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후련하겠지요. 그리고 모든 지면과 인터뷰에 너나 할 것 없이 아무런 검토와 고민도 없이 마구 글을 써대기 시작합니다. 천하에 검사 잡놈들이 감히 대통령에게 까불고 있다며 온 나라가 광분의 도가니가 됩니다.

저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수사를 하나. 모든 피의자들이 제 앞에 와서 속으로 '바보 새끼, 말도 잘 못하는 새끼, 대통령에게 까부는 새끼'라고 생각을 할텐데, 수사기관의 권위는 무엇으로 지켜져야 하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검찰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각 좀 있다는 사람들이 모두가 들고일어나는 지금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하려니 당신께서 주장한 첫 번째 항목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것 같군요.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은 부끄럽습니다. 좀 더 철저한 자기 반성이 뒤따르지 못한 것 인정합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노래에 대한 얘기를 하지요. 저희는 검찰과 국민의 사이의 신뢰를 검찰 고위 간부들의 인사와 연결할 생각 없습니다. 검찰인사는 현 정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현 정권 이후까지 예상하여 우리의 주장을 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인사시스템 구축이 최대 쟁점이라고 파악했던 것입니다. 만약 제가 얼마 후 검사장이 될 시기에 파시즘 정권이 권력을 잡아, 비교적 개혁적인 검찰 간부들이 보기 싫으니 나가 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마 나가야 하겠지요. 감히 대통령이 나가달라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때도 국민은 정권에 대항하는 '검찰은 자폭하라'는 주문을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그런 꼴 당하기 싫습니다. 조직 이기주의라고요? 아닙니다. 생존권의 문제입니다. 변호사 할 생각 없습니다. 변호사 해먹으면 되는데 뭘 걱정하냐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적어도 위와 같은 이유로 검찰 인사위원회에 그토록 목을 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이번에는 안된다고 하시더군요. 결국 다음 정권도 그러겠지요. 정권 바뀔 때마다 목줄을 어디에 대야 할지 계산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 아찔해집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검찰이 잘못한 것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검찰을 매장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건 너무나 큰 고통입니다. 너도 검사니 어쩔 수 없구나 하면 그만이겠지만, 저의 말이 단지 넋두리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개인적 메일에 불과합니다. 이 글을 발표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논리적 주장도 없습니다. 당신께서 쓴 글에 대해 저의 느낌을 적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십시오.  

00지검 검사 000
2003. 3. 11.    


* 유시민씨 홈페이지 안내 http://www.usimin.net/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3/11 [23:0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