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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여러분, '주목' 하십시오
총선에서 일꾼을 잘 뽑아야 진정한 지방분권
 
민경진   기사입력  2003/02/11 [14:49]
"사이버 스페이스를 흐르는 귀하고 탐낼 만한 무엇이 과연 있는가? 분명히 있다. 그 누구도 인터넷에서 무언가 대가를 얻어낼 희망이 없이 컨텐츠를 기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인의 주목(Attention)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본질적인 경제원리는 정보가 아니라 바로 주목(Attention)이다." - Attention Shoppers! By Michael H. Goldhaber

몇 년 전 잡지 <샘이 깊은 물>에서 기가 막힌 사진을 보았습니다. 서울의 어느 아파트 상가였는데 10층 남짓 되는 건물이 무려 수 백 여 개의 간판으로 도배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점포 주인들의 마음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수 백 여 개의 목소리가 일시에 아귀다툼을 하는 지옥의 아수라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상가마다 울긋불긋 간판을 내 걸고 목청껏 외치지만 결국 어느 가게도 손님의 관심을 끄는 데는 실패한 것입니다.  

이럴 경우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상가를 대표하는 커다랗고 근사한 하나의 간판만을 건물 위에 세워 행인들의 관심을 끌고 일단 상가에 들어오면 전화번호부 같은 점포 인덱스를 달아 고객의 쇼핑을 돕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쉬 균형' 모델에서 이미 수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입니다. 전자제품 상인들이 용산전자상가에 몰려 있고 가구 상인들이 가구거리에 몰려 있으며 꽃가게들이 서초동 꽃 도매상가에 몰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서울의 길거리를 걷다 보면 정말 피곤합니다. 사람들도 많지만 우선 눈부터 어지럽습니다. 온갖 가게들이 새빨간 간판을 내걸고 제발 나를 봐 달라고 애원합니다. 사실 이것은 도시계획의 실패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상위 폴더와 하위폴더의 배분이 잘못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위폴더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수천개의 파일이 모조리 상위폴더에 올라와 나 좀 봐달라고 아귀다툼을 하는 형국입니다. 서울의 각 지역마다 테마가 정해져 있고 각종 상업 시설들이 이에 따라 생태계를 형성했다면 지금처럼 아수라 같은 시각공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혹시 대자보 로고 바뀐 것 보셨습니까? 편집국 기자 한 분이 곧 바뀔 것이라고 귀띔했었는데? 앗! 아닌가요? 혹시 스크롤 바를 올려 로고를 확인하고 오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독자 여러분이 제 글을 읽고 있는 동안 즉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Pay Attention)에는 저의 노예입니다. 제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Attention이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80:20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제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필자의 글을 읽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 역시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불행하게도 엄마는 오직 한 번에 한 명에게만 관심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놀이공원에 미아들이 그토록 많은 이유입니다. 사람의 Attention은 승자독식 구조입니다.  

첫째가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안에는 둘째는 서럽게 울고 있어야 합니다. 대자보에 옥고를 올려주시는 필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기화면의 면적은 한정되어 있고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합니다. 섹션뉴스에 있는 동안에는 수 백회를 넘기 힘든 기사의 조회수가 대문에 올라가는 순식간에 수천회로 폭증합니다. 승자독식구조입니다.  

사람들의 Attention이 한정된 자원임 만큼 경제원리에 따라 외부효과(Externality)가 발생합니다. 즉 거래와 증여의 대상으로 변신하는 것입니다. 바로 광고입니다. 대자보가 하루 수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들이면 배너광고를 유치할 수 있습니다. 수만 독자들의 Attention을 광고주에게 팔 수 있습니다. 독자 조사를 해 보니 방문객의 소득수준이 높은 것으로 드러난다면 대자보는 고가의 광고료를 매길 수 있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에 자리잡은 거대한 전광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전광판을 운영하는 신문사들이 군중을 불러모은 것은 아니지만 하루 수백만의 Attention이 모이고 흩어지는 광화문 사거리는 한국에서 가장 거대한 Attention의 옥외시장입니다.  

여러분이 슈퍼스타가 되어 수백만 군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이들의 Attention을 거대기업에게 팔거나 혹은 증여(Endorse)할 수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를 Endorse 했고 박찬호는 삼보컴퓨터와 국민카드를 Endorse했으며 직장상사는 직장을 옮기는 부하직원을 추천서로 Endorse 합니다. 그 거래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Attention이나 많이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희대의 흉악범도 세인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Attention은 명성(Reputation)과 결합하고 나서야 진정한 거래와 증여의 대상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슈퍼스타의 경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만 명의 농구 선수들이 있지만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농구스타는 몇 명이나 됩니까? 아마 다섯 손가락을 넘기 힘들 것입니다. 그 많은 무명의 농구선수들을 다 기억하지 못 한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이 본래 Attention의 속성입니다. 80:20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승자 독식구조입니다. 기업들도 이런 현상을 눈치채고 CEO들을 슈퍼스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봉 수백만불을 넘는 스타급 CEO들이 탄생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역시 문제의 핵심은 글로벌 마켓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같은 스타라도 동네스타도 있고 도시의 스타도 있고 국가의 스타도 있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스타 아니면 스타로 쳐주지도 않습니다. 즉 한 번에 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는 Attention의 속성에 따라 승자독식구조의 원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그 스케일이 자꾸만 커지면서 파이배분의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글로벌 플레이어의 숫자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뉴스를 보아도 전국뉴스나 월드뉴스 아니면 눈길도 주지도 않습니다. 생활의 터전은 지방에 두고 있는 사람이 신문을 보아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조중동만 보고 뉴스를 보아도 MBC 뉴스데스크 아니면 CNN 입니다. 지방지나 지방뉴스는 찬밥입니다. 미국, 유럽, 아시아를 가릴 것 없이 컴퓨터는 IBM 아니면 컴팩이고 콜라는 코카콜라 아니면 펩시입니다. Attention의 배분이 최상위 폴더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최상위 폴더에 보금자리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최상위 폴더에 할당된 집터는 많아야 다섯 개를 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수많은 하위폴더를 만드는 것입니다. 최상위 폴더에서 슈퍼스타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하위폴더의 마이크로 스타들도 기를 펴고 살수 있도록 Attention 생태계를 다시 설계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Attention의 분권화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구조가 1,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 즉 서비스산업으로 변화할수록 Attention 경제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서구 국가에서 서비스산업의 비중은 갈수록 올라가 무려 70%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Attention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Attention의 특징은 매우 유동적(Fluid)이라는 것입니다. 한 번 확보한 Attention이 영원히 당신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어제의 스타가 내일이면 무명으로 잊혀집니다. 그만큼 Attention에는 명성(Reputation)과 신뢰의 뒷받침이 따라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Attention 경제의 본질적 특성인 유동성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엄청난 시가총액을 자랑하던 회사가 자고 일어나니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Attention 경제입니다. 농사경제 시대에 쌀 열 가마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옮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스피드의 유동성입니다. 그만큼 고객과 시장의 Attention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치열하고 눈물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총선보다 대선에 더 뜨거운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Attention 경제의 승자독식구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의원 수는 150명이 넘고 민주당은 100명이 넘습니다. 이들 중 여러분이 이름을 기억하는 의원의 숫자가 얼마나 됩니까? 여러분의 지역구 의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더라도 이들이 지금 중앙정치권에서 도대체 어떤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지 꼼꼼히 기억해 두고 있는 유권자가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은 Attention의 배분구조가 서울이라는 중앙정치권에 쏠려 엉망으로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작 지방 사람들이 지방지를 읽지 않고 지방뉴스를 보지 않는데 이들이 아무리 지역구 의원들의 동향을 보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조중동만 보고 중앙뉴스만 봅니다. 조중동이 딱히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지면제한 때문에라도 260여 의원의 면면을 모조리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전 국민의 Attention이 모조리 서울이라는 최상위 폴더에만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로지 대통령을 비롯한 10여명 남짓의 스타 정치인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이 아무리 음지에서 노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보스정치인의 낙점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전국민의 시선이 몰려 있는 최상위 폴더 조중동 지면의 낙점을 받지 못해서 잊혀지고 사라지니 결국 이들은 건달처럼 떼로 몰려다니며 위력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 정책 중 하나가 지방분권화 이지만 아무리 중앙정부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지역개발을 추진한다 해도 사람들의 Attention이 서울이라는 최상위 폴더에만 몰려 있는 한에는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해결방법은 없을까요? 국민의 시선을 조중동 지면과 중앙뉴스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을까요? 유일한 희망인 지방지들은 대다수가 재정난으로 허덕이고 그나마 중앙지에 우수한 인재를 빼앗기니 지면의 품질은 날로 떨어지고 다시 독자가 떠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미 지방지에서 희망을 거둔지 오래입니다. 강준만 교수는 열심히 지방지 회생을 위한 대책을 세우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지만 이미 때를 놓친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터넷에서 대안을 찾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듯 합니다. 인터넷처럼 무한대의 하위폴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매체도 없습니다.  

이미 거의 모든 의원이 개인 홈페이지를 지니고 있고 각 지방지들 역시 자사의 뉴스 사이트를 두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제 서울이라는 최상위 폴더에 미련을 거두시고 여러분의 독자적인 하위폴더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 폴더를 최상위 폴더 못지 않게 우수하게 만들어 여러분만의 마이크로 스타들을 발굴하고 키워 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또 한번의 심판 기회인 총선이 1년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의 눈높이가 서울이라는 중앙정치권의 최상위 폴더에만 머물러 있다면 진정한 대의 정치와 지방분권의 희망은 없습니다. 유시민의 말처럼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역구의 의원들을 살피고 지역의 정치적 이슈를 살피고 지역의 경제적 쟁점을 부각시키십시오. 그렇게 새로운 하위폴더가 생성된 뒤에야 진정한 총선의 심판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Attention 레벨이 1년 내내 서울이라는 최상위 폴더에만 머물러 있다면 단지 한나라당이라는 이유로 혹은 민주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함량미달의 의원들을 국회에 보내 놓고 4년간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비극적 사태가 또 다시 벌어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80:20 법칙과 승자독식의 원칙을. 여러분의 독자적인 Attention을 모으고 관리할 수 있는 근사한 하위폴더를 가꾸고 지키는 것에 내년 총선의 향방이 달려 있습니다.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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