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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송금문제 : 남북관계재정립의 계기로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자
 
늦깍이   기사입력  2003/02/23 [02:42]
최근 중요한 논쟁이 북한 송금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이군요. 자칫 국가의 앞날을 좌우할 수도 있는 문제라 감히 의견 표명을 한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민감함으로 인해, 전체적인 그림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염려스러운 점은 송금문제가 불거진 책임을 노무현 측에 제기하거나 또는 노무현이 결단을 통해 문제를 덮을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의 김민웅기자가 그러한 시각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각은 문제를 관통하는 본질적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데서 비롯한 현상적인 이해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정치 전략적으로도 남북화해를 지향하는 세력들을 분열시킬 뿐입니다. 현재 북송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이면에는 한국내 정치지형의 변화와 남북간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본질적인 두 문제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의 의견은 오마이뉴스의 유창선 기자의 견해와 같은 지향을 갖고 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한국의 리더쉽이 노무현의 대통령당선을 계기로, top-down 의 방식에서 bottom-up으로 확연히 전환했다는 것입니다. 김대중이 북한과의 화해 정책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국민들의 합의를 얻어서 추진되지 않고 김대중과 몇 명의 보좌진에 의해 막후에서 조정되는 방식에 의존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방식의 문제점에도 대북정책은 여전히 대성공이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도 불가피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의 경험에서 배운다면, 소수의 엘리트가 미처 국민의 동의 과정없이 추진한 정책 또는 정치프로그램들은 그 생명력이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비록 시작은 소수의 리더쉽에 의지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노력이 아주 중요합니다.

일관되게 김대중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주장했던 노무현의 당선으로 인해서 비로서 남북화해정책은 국민의 공인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겨우 2%의 차이로 승리했을 뿐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대북정책을 ‘퍼주기사업’이라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도 남북화해라는 총론에 대해서는 지지했을 지언정, 구체적인 방식에서까지 지지했다고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노무현은 일관되게 대북정책에 의혹이 있다면 털고가자라고 했습니다.

김대중이 선도적인 정책으로 대북화해의 초석을 놓았다면, 노무현은 그에 대한 대중적 합의를 공고히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선 노무현은 기존의 대북정책에서 의혹이 있다면 밝혀서 국민의 심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향후 정책에 있어서도 국민의 합의에 기반해야 하며, 그 합의를 위해서는 정책집행의 구체적인 양상도 투명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투명성과 그에 기초한 합의은 대북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개혁의 관건입니다. 그러한 원칙이 어느 한곳에서라도 무너져버리면 개혁전체 프로그램이 흔들립니다.

물론 대북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어느정도 비밀스러운 구석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밀스러운 구석을 용인하는지의 여부도 국민의 합의에 기초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러한 합의를 이룬적이 없습니다. 서독과는 달리,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대북지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국민들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식량지원에서 봤듯이, 국민들의 생존권을 체제유지라는 지상명제에 복속한 전략적 문제로 삼는 김정일 정권은 스스로 비난의 여지를 만든 측면이 있었습니다.

노무현은 그런 국민들도 포용해야 합니다. 대북화해정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유일한 방법은 기존의 정책중 가능한 많은 부분을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의견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비록 한나라당의 정략적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없이, 무수히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김대중의 입장을 지지할 지언정, 국민들의 합의를 얻어낼 수 없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비록 정몽준 측의 야비한 술책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위해, 순순히 단일화를 받아들였던 노무현을.

남북관계의 재정립이라는 다음 문제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이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간단히 김대중의 대북화해정책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추진되었는지 정리하겠습니다.

최근, 김대중이 대북성금과 관련한 해명에서 언급했듯이 남북화해 정책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현실에서 부닥치는 어려움은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면서, 현실정치의 흐름에 민감한 그가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다고 결심했던 것은 무난하게 대통령직을 마치는 길보다는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역사에 기여하는 대통령이 되고자했던 단호한 의지에서 비롯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점에서 남북문제에 있어서 김대중은 현실정치인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의 의지의 결과로 남북은 5년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명분으로나 실리로나 탁월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현실정치에서는 위험부담을 질 수 밖에 없었다는데, 우리 역사의 아픔이 있습니다. 서독도 동서화해 정책을 추진하는데, 반대가 많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독일은 서로 내전을 치른 적이 없습니다.그에 반해 남북은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몇년동안 겪었습니다. 비극적 체험으로 인한 고통은 논리적인 설명으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북한 정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적개심은 조건반사의 원리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내재해 있습니다. 더군다나 북한 정권은 여전히 왕이나 다름없는 1 인을 중심으로한 권위주의 체제로 과거 전쟁을 일으켰을 때와 별로 다른 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반도는 지금도 기술적으로는 휴전상태입니다.

대화 파트너인 북한 역시 정상적인 국내 정치질서를 그리고 국가간 관계를 따르는 국가가 결코 아닙니다. 주체사상이라는 도그마에 빠져서, 자신의 체면에 손상을 받기라도 하면, 호전적인 제스쳐를 취할 정도로 그 인식의 범위가 제한적입니다. 늘 민족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정권의 안위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합니다. 식량배급을 못해서 국민들이 굶어죽는데도, 투명성을 전제로 하는 식량지원은 꺼려했습니다. 남한이 약속을 안지킨다고 비난하면서도, 김정일은 답방약속을 어겨서 김대중을 곤경에 처하게 했습니다.

주변강국들도 남북이 전쟁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현상유지를 더 원합니다. 특히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적으로 삼고 있고 또 자신의 군사적 지위를 유지 강화하는 구실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북관계에는 많은 걸림돌들이 있어서, 언제라도 난관에 처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책임은 오로지 김대중이 지게끔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내에서의 지지기반의 붕괴로 나타날 가능성이 컸읍니다. 지금의 송금문제이외에도 김대중은 여러차례 곤경에 처했습니다. 김정일 답방 거부로 인해, 국내의 반대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영향력있는 외신들은 햇볕정책은 실패했다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 이후에 남북의 대화 채널은 오랫동안 중단되었습니다. 최근의 북한 핵개발문제 또한, 미국과 중립적위치에서 조정하고자 하는 김대중의 입지를 극도로 악화시켰습니다. 송금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김대중은 남북관계의 초석을 이미 깔았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이제 불가능하리하고 여겨졌던 휴전선철거로 이어졌습니다. 북한에 대한 직접투자역시 활발해졌고, 북한도 남한의 투자와 경영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북아 정치 경제의 새로운 미래를 열, 시베리아 철도계획도 이미 가시권에 들어섰습니다. 그외에도 개성공단 건설 등 북한의 산업인프라 건설도 이미 남한의 주도하에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정들이 붙투명하고 예측불가능한 북한정권을 상대로 협상해야만  가능했습니다. 북한의 세입세출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남한의 지원 내지는 투자자금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각각의 교류건에 대해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돈을 요구한다고 하는데, 그런자금은 남한에서 역시 비공식적으로 만들어져 비공식적으로 제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남북관계의 진전의 이면에는 불가피하게 밝힐 수 없는 거래가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식량지원까지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한나라당이 국정 파트너인 상황에서, 그들을 포함한 초당적인 협의체를 통해 정책에 대해 합의하고 집행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막후 협상과 그와 연관된 돈흐름은 철저히 비밀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관련자들은 소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몽준 현대 회장인 자금흐름과 관련한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런 자금 흐름들이 완벽하게 비밀일 수는 없습니다. 언제든지 터질 개연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대북 정책의 추진과정이 베일에 쌓여있다보면 국민들은 결국 그 결과를 가지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금강산 관광등의 성과에 환호하지만, 김정일 답방 거부를 놓고 싸늘한 태도를 보입니다. 송금문제가 터지자, 역시 국민들은 원칙적인 입장에서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또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실정법의 위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유사한 일이 얼마나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쪽에 설득력을 부여하지 기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남북화해라는 대성공을 훼손시키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지저분하고 나중에 책임져야할 가능성이 높은 일들에 기꺼이 손을 담가준 김대중이 저는 고맙습니다. 현대와 북한이 추진하는 북한의 사회간접자본건설 사업이 북한의 개발 프로젝트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자금 지원이 현대의 향후 사업을 보장해준다면 남한의 주도권이 확보된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점기업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북한이 구한말처럼 열강들에게 이권들이 찢겨나가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주요 개발 플랜이 확정된만큼, 향후에 그런 큰 자금이 요구되는 협상은 불필요하다는 점에서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악역을 맡아준 김대중이 고맙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을 계속 안고 갈수도 없습니다. 기업이 은밀한 자금을 조성하고 정부가 방조하는 과정이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기업의 장래에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정책결정에 참여하지 못한채 방관자로서만 있게해서도 안됩니다. 남북관계의 진전에는 여러 어려움이 불가피하고 때로는 실패의 경험도 있을 수 밖에 없는데, 방관자로서의 국민은 실패에 대해서 가혹한 평가를 내릴 뿐입니다. 스스로의 문제로 이해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려고 하지 않고 오직 정부에 책임을 묻게 됩니다. 남북관계가 더 심화발전되고 국민들의 그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안됩니다.

저는 이번 송금사건이 남북관계가 한차원 달라지는 계기가 되야하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남북화해에도  한나라당이 제기한 특검제에도 동시에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에 주목해야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이 좋은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그러나 특검제를 김대중의 업적을 훼손시키는 정략이라고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대북지원과정에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특검의 과정에서 밝혀져서는 안될 중대사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대중을 위시한 관련당사자는 특검을 거부하던가, 아니면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저로서는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지원과정을 알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를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송금문제에 관한한 명분은 특검제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이 쥐고 있습니다.

향후 사태의 추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격받지 않는다면-김대중과 노무현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겠습니까?-북한의 남한에 대한 태도도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봅니다. 더이상은 비밀스러운 자금 거래에 의지하기도 힘들고 결국 '비밀'도 지켜지기 힘들다는 것을 인식했으리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기업과 정부의 투명성을 개혁의 핵심으로 내거는 노무현 정부하에서,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음은 명확해졌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남한이 과거방식을 따르지 않는다고 남한과의 관계를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북한은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북한의 개발프로젝트는 북한정권의 사활이 걸려있습니다. 대책없이 계속 식량지원에 의존해야한다면 그 정권이 버티면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여전히 많은 리스크가 따르는 대북한 투자를 주도할 국가는 남한 밖에 없다는 것도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북핵문제로 미국의 고립정책이 예고되는 상황 아닙니까?

과거 남북관계는 북한이 원하는 방식대로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김대중은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고 또 지저분한 일들에 손을 담갔습니다. 그러나 그결과, 이제 남북관계는 남한이 원하는 방식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남한이 난폭한 주도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한은 북한과의 사안들에 대해서 남한내의 공론 형성과정을 거쳐야 하고 북한은 그 공론을 존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구미에 비밀스러운 막후 협상은 이미 한계가 명확해졌습니다.

김대중은 선구자로서 그 영욕을 함께 누렸습니다. 늘 외롭고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노무현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선구자를 계승하는 그는 행복합니다. 노무현은 국민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국민은 과정을 알기만 한다면 변함없이 남북화해를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록 지지의 폭은 더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야당에게 감출 것도 없습니다. 동의를 구하면 됩니다. 야당이 남북화해의 대세를 거스른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멸을 의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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