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순의 문학과 여성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개혁적 이미지 강금실, 진실 혹은 거품
[정문순 칼럼] 법무장관시 개혁은 제도적 범위, 높은 지지도 뒤집어봐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6/04/13 [19:52]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아이는 대개 팔방미인이다. 공부는 잘하는데 다른 분야에 내세울 게 없는 학생은 교사들한테만 총애를 받을 뿐이다. 책만 파고드는 외골수 주위에는 친구가 꾀지 않는다.
 
또 성적은 뛰어나지 않지만 다른 데 재주가 있는 아이는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아이한테는 자기 재주를 드러낼 기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또래한테 가장 인기가 높은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하고, 하여튼 뭐든 못하는 게 없는 만능인이다. 한 가지만 잘하든 이것저것 골고루 잘하든 둘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세상은 문어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당이 여성 대통령 감으로까지 언급되던 전 법무장관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우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사정이 어지간히 급했던가 보다.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인기가 그만큼 높기 때문인데 그녀의 대중적 인기가, 무언가 잘 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열 가지 잘 해도 한 가지 미끄러지면 돌아서는 시정의 여론은 그녀가 법무장관 재직 시 어떤 일을 했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강 전 장관의 인기 비결은 그녀의 스타일과 취향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데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혁 이미지 상식선 못 넘어
 
강 전 장관이 일도 잘하고 놀기도 잘한다고 소문난 것에 대중들은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한국 사회의 수준으로 보아 그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일과 놀이가 나란히 손을 잡을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박힌 사람들에게 개미가 베짱이 노릇도 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할 것이다. 딱딱한 법전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문화적 소양도 깊다더라는 것, 이것만 잘 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딴 것도 잘 하더라는 건 부러움과 선망을 일으킬 수 있는 대단한 재능으로 비칠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강 전 장관은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를 달고 있다. 법무부 인사에서 연공서열을 파괴한 건 보수적인 그 동네에서 획기적이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개혁성을 따지자면 사형제도 폐지 소신을 밝혔고, 강정구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 지시를 내렸던 천정배 법무장관을 따를 수는 없다. 법무부내의 인사 개혁도 그 안에서야 강도가 큰 개혁으로 받아들여 반발하는 이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을 테고 그녀가 장관직에서 교체된 것도 그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바깥의 국민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지극히 상식적인 선의 개혁을 넘지 않은 것으로 다가온다.
 
대중적 인기의 비결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데 있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의 흠을 어떻게든 들추어내려는 조선일보도 강 전 장관한테만큼은 그 인기에 편승하려고나 하지 헐뜯는 건 단념했다. 온건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적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왜 여성을 핑계로 내세우나
 
그만큼 개혁의 강도도 약해진다. 강 전 장관의 몇 가지 자질이나 정치적 태도는 하나같이 이미 주어진 경계를 넘어서지는 않으며 제도가 용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중은 고리타분한 것도 싫어하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만약 그녀가 법무장관 시절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한다고 했거나, 간첩으로 몰렸던 송두율 교수가 죄가 없다고 하는 등 다칠 각오가 아니고서는 힘든 발언을 했다면 보수언론에 의해 여지없이 난타 당했을 테고 말썽만 일으키는 시끄러운 여자로 모함을 받았을 것이다.
 
대중이 늘 바른 판단을 한다고 말할 수 없는 세상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근거 없는 인기는 거품이 빨리 꺼질수록 좋다. 걱정스러운 건 여성계의 움직임이다. 여성을 서울시장으로 만들겠다는 말이 있는데,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열린우리당으로 나올 사람이니까 지원하려는 줄 세상이 아는데 왜 여성을 핑계로 내세우는가.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4월 13일자에도 실렸습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4/13 [19:5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애독자 2006/04/14 [19:03] 수정 | 삭제
  • 잘 보았습니다. 교수신문과 제휴를 맺은 일도 대자보의 수준에 맞는 방향인것 같네요. 대자보 집필진에서 유명한 논객들과 문필들이 배출되었다는 항간의 말이 사실이군요. 수준높은 논객들이 모여 있는 대자보 앞으로도 많은 기대를 하고 주시하겠습니다. 특히 김휘영의 글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더군요.
  • 시원 2006/04/14 [18:19] 수정 | 삭제
  • 시원한 글 잘 봤습니다. 수구들 핑계 대면서 위선 떠는 일부 (사이비) 진보들 이제 지겹습니다.
  • 능소니 2006/04/14 [02:17] 수정 | 삭제
  • 대자보가 앞선 여론으로 존재하는 힘 아닐까요?
    자알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