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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총독부, 미군정청은 어떤 역할했나
[우리역사 속의 미국이야기 2] 남한을 미국 식민지로 전락시킨 미군정청
 
박제민
'남한사회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세인들은 '민족해방운동권'이라고 칭한다. 더 정확히 하자면 '민족해방민주주의변혁(NLPDR)론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민족해방운동권에 대해서 수구언론은 '빨갱이'라고 규정했고, 법은 '이적' 또는 '간첩'으로 규정해왔다.

무시무시한 '이적'과 '간첩'의 낙인에도 불구하고 해방 뒤 오늘날까지 '미국의 식민지'라는 주장을 해온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남한을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줄잡아 수십 만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사람들을 구속, 처형했으니 나는 이 나라가 식민지든 아니든 끝장을 보기는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역시 대학시절 '민족해방운동론'에 빠져들었다. 적어도 당시 나는 '남한'이 '자주독립국가'라는 주장보다 '미국의 식민지'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주독립국'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보다 '미국의 식민지'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실들이 수십 갑절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작전지휘권'을 우리나라 대통령이 아닌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를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각종 미군범죄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도 그러했다.

케네스 마클이 윤금이 씨를 잔혹하게 살해하고도 1년 6개월 만에야 구속, 수감되었다는 사실은 젊은 대학생이었던 나의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으며 효순, 미선의 억울한 죽음과 그 살인자들에 대한 무죄평결은 좌절의 늪에 빠뜨렸다.

충격과 좌절의 늪속에서 나를 살린 것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인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는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민족의 운명을 고민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젊은 청년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했고 실천했다.

전면적 동의이건, 부분적 동의이건, '우리사회가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지 않는가?'하는 의문과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결국 미국의 문화식민지를 자처하고 나서냐"며 울분을 토했다는 '한미투자협정 저지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원회'의 주장은 의미심장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학생도 아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미제의 식민지'라는 표현을 대신해서 '예속적 한미동맹관계'라는 표현을 쓴다. '미제의 식민지'가 운동실천적 표현이라면 '예속적 한미동맹관계'는 학술이론적 표현이며 근본상 남한이 미국에게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두 가지 주장은 일맥상통한 주장이라고 하겠다.

미제의 식민지이던 예속적 한미동맹관계이던 미국이 남한을 식민통치했었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바로 해방직후 3년 동안 미군정통치가 그것이다.

▲ 1945년 해방 당시 일장기가 내려간 자리에는 태극기가 아니라 미국기가 게양되었다.     © 사진으로 보는 남북관계 50년사 제공

조선이남을 강점하고 군정청을 설치한 미국

"본인이 지휘하는 승전군은 오늘 북위 38도선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는 미태평양 방면 총사령부 포고 제1호를 뿌리며 1945년 9월 8일 미군 중장 J.R.하지의 지휘하에 미육군 24군단이 남한에 진주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9월 9일, 삼팔선 이남 지역에 대한 군정을 포고한 데 이어 12일 미군 소장 A.V.아널드가 군정장관에 취임함으로써 미군정은 시작되었다. 해방되고 보름도 되지 않아 다시 미군정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물론 혹자들은 '과도기에 임시통치는 불가결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해방 직후 '과도기'는 미군정통치를 받을 만큼 혼란하거나 사회적으로 변란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도기'에 조선에는 전국적으로 13개 도, 21개 시, 215개 군에 자생적 정권기관인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자주독립건국을 추진하고 있었다.(1945년 10월 현재)

결국 과도기라는 것은 국가가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미군정통치를 받을 만큼 사회가 혼란하다던가 변란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또한 조선은 미군정통치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포고령에도 나와 있지만 미국은 자국이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임으로 일제의 식민지를 점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은 이미 동북항일연군, 조선독립동맹과 같은 무장단체를 통해 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하고 있었고, 상해임시정부, 조국광복회와 같은 민족해방을 추진하던 기구들도 많았다.

이 같은 조선의 반일민족해방운동단체들은 이미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반일전쟁을 수행하고 있었음으로 조선은 분명 넓은 범주에서 승전국이다. 승전국인 미국이 또 다른 승전국이자 반일전쟁을 수행중이었던 조선을 점령할 아무런 명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한 것이다.

조선민중의 동의를 구하고 군정통치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선거를 진행한 것은 더더욱 아닌 미 군정청은 명백히 불법이었고 '미국판 총독부'에 다름없었다.

미군정청, 남한의 건국의지를 꺾다

미군정청이 제일먼저 행한 것은 조선의 건국운동세력, 즉 인민위원회와 민족자주세력에 대한 전면적 탄압이었다.

1945년 10월 10일, 미 군정 장관 아놀드는 성명을 통해 민족자주세력이 주도하는 인민공화국을 부정했고 같은 해 12월 12일에는 해산명령을 내렸다. 또한 광범위하게 결성되던 자생적 정권기관인 각급 인민위원회에 대한 해산명령을 내렸으며 자진해산하지 않은 인민위원회에 대해서는 무장습격을 하고 간부들을 연행해 갔다.

1946년 2월 23일에는 정당등록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좌익성향의 운동단체 또는 민족자주성향의 운동단체들의 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시켰으며 '인민보', '자유신문', '현대일보' 등 민족적 신문들을 폐간시켰다.

1947년 8월 11일∼14일에는 민족주의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인민공화당 중앙위,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중앙위 사무소를 폐쇄하고, 좌익계열 1,000여 명을 검거하는 등 미군정은 군정통치 3년 동안 민족자주운동세력의 씨를 말렸다.

친일민족반역자, 친미우익세력 육성

미군정청은 민족자주세력 씨말리기와 함께 과거 친일민족반역자들과 친미우익인사들을 정치세력으로 키워냈다.

1945년 10월 5일 군정장관 고문관에 친일민족반역자 김성수를 임명하였고, 친미성향의 11명을 위원으로 임명하였다. 미군정청의 자문기구격으로 '남조선대표민주의원'을 출범시키면서 친미우익의 거두인 이승만을 의장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미군정은 미군정청 안에 친미우익인사들의 보직을 마련하여 '남조선 과도정부'로 개칭하는 등 친미우익세력이 남한의 정치세력으로 부각할 수 있게끔 인위적으로 환경을 만들었다. 그 결과 남한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친일민족반역자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지배집단으로 존재했고 친미수구세력들이 또 다른 지배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지난 반세기동안 남한의 정계에서 총리 2명, 장관 21명, 시장 및 도지사 10명, 합참의장 6명, 육군참모총장 7명, 공군참모총장 4명, 검찰총장 4명, 대법원장 3명, 대법관 8명, 검판사 201명 등이 친일파였다고 하니 미군정의 친일파육성정책은 성공한 셈이다. 물론 이 친일파들이 친미파로 되었음은 물론이다.

미군정통치는 현재진행형?

시대는 바뀌었고 사람도 바뀌었다. 3년 동안 미군정통치는 이미 종식된 지 오래되었고 미군정에 기생하여 남한정부에서 한자리씩 했던 친일, 친미민족반역세력도 거의 다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요즘 남한사회는 반미로 요동치고 있다. 이 아이러니한 사회현상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는 오늘날의 한미관계가 미군정통치기와 본질상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발생되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남한의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미국을 방문하여 '당선인사'를 하고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시위한다.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라던 국민의 정부의 김대중 대통령도 그러했고 개혁을 외치며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했다.

어디 그뿐인가? 주한미군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의 보호아래 봉건시대 영주와 맞먹는 무소불위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고 있다. 효순과 미선은 이 주한미군이 저지른 '합법'적 살인인 셈이다.

농민들은 식량주권을 빼앗겼고, 영화인들은 문화주권을 빼앗겼으며 학생들은 교육권을 빼앗기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주한미 대사관에서는 미국식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으며 남한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미대사관을 남한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으니 아이들 만화책에서나 볼법한 '식민지'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역사속에서 미국만큼 큰 생채기를 남긴 나라도 없고, 우리 현실에서 미국만큼 고통을 주는 나라도 없다.
 

<참고> 미군정법령

군정법령은 3년 동안 감행된 미군정청의 무단통치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무단통치시기이니 미군정법령은 남한의 의회나 국민투표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군정법령에 따른 정치, 경제적 일련의 조치들은 모두 미군정청의 통치효율성과 친미수구세력들의 기득권강화, 예속적 한미관계 공고화를 위해 이용되었다.

▮군정법령 2호 <재산이전 금지법>

이 법령에 의거, 적산이라는 미명하에 미군정청이 '국, 공유재산과 일본인의 재산을 접수, 관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남 전체 재산의 8할이 이 '적산'이었던 점을 상기 할 때, 미국의 '적산불하'가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미군정은 적산을 '불하'하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기만적이었다. 이른바 '적산'이 본래 조선민중의 것이었는데 조선민중의 재산을 일제가 빼앗고 그것을 다시 미국이 빼앗아 친미파, 친일파들에가 다시 헐값에 나누어주었던 것이다.


▮군정법령 19호 <파업규제법>

황폐화된 조선의 경제구조에서 살인적인  노동강요가 빈번했는데 군정법령 19호 <파업규제법>은 이를 법적으로 보장했다. 특히 미군정청이 선포한 산업에 대해서는 일체의 파업을 금지시켰다. 원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1. 작업을 순수하고 방해 없이 근무하는 권리는 존중하고 보호할 것이다. 권리를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다.

2. 민중생활상 필요불가결하다고 조선군정청이 선포한 산업에 있어서 생산의 중지, 또는 감축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동계약 및 노동조건에 관하여 발생하는 쟁의는 조선군정청이 설치한 조정위원회에 의해 해결할 것이며, 그 결정은 최후적이요, 구속적이다.


▮군정법령 21호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규칙, 명령, 고시 등을 그대로 존속시킨다는 내용으로 원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앞으로 새로운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혹은 앞서 폐기된 것이 아닌 모든 현행법과 과거의 총독부(일제 총독부를 의미함, 필자 주)가 공포한 규정, 명령, 지시 및 각종문서들 중에서 1945년 6월 9일까지 유효했던 것은 합법적 당국(미군정청을 의미함, 글쓴이 주)에 의하여 제기될 때까지 계속 발효한다."

이 같은 법령에 따라 일제가 조선민중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억압하기위해 만들었던 정치집회금지법(1910년), 선동문서통제령(1936년) 심지어는 치안유지법(1907) 2호까지 그 효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군정법령 28호

미국은 군정법령 28호에 의거하여 미군장교가 지휘하는 '국방사령부'를 설치하고 일본군 장교 출신 친일파, 일본 경찰관이나 악질적 관리였던 자, 경찰대와 테러단에 가담했던 자 등을 다수 포함하여 '국방경비대', '해안경비대'등을 조직했다.


▮군정법령 33호 <조선내 소재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건>

원문은 다음과 같다. "전(全) 종류의 재산 및 그 흡수에 대한 소유권은 1945년 9월 25일로부터 군정청이 취득하고...그 재산의 전부를 소유한다" 조선 내 일본인들의 재산이라는 것은 결국 조선민중의 재산, 조선의 국가적 재산들을 일제가 수탈한 것들이었다. 그러니 이는 조선민중에게 돌려줘야 마땅한데 미군정청은 이를 일본인 재산이라고 하여 모두 접수해 버렸다. 이는 조선의 경제가 미국에게 종속되기 시작한 첫 시작이었다.


▮군정법령 55호 <정당등록법>

남한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법령으로 이 정당등록법은 좌익계열과 민족자주계열의 활동을 위축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조선사람 3명이상 모이는 것을 <정당활동>으로 몰아 탄압할 수 있도록 하는 법 조항을 두고 있어서 사실상 조직결성, 결사, 집회의 자유를 금지한 법이다.


* 글쓴이는 한국민권연구소 (www.minkwon.org) 상임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6/03/27 [12:10]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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