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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수사로 분장한 한미 FTA와 양극화
[홍기빈 칼럼] 양극화와 한미 FTA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는 것은 모순
 
홍기빈   기사입력  2006/03/23 [16:13]
국회의원 선거철이 되면 우리는 담벼락에서 전봇대에서 대문 앞에 널브러진 종잇장에서 인간 사회가 발명한 온갖 미사여구의 백화점을 볼 수가 있다. 좋고 예쁜 말이면 모조리 갖다 붙이는 형국이다 보니,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 같은 문구까지 심심찮게 발견된다.
 
수사학이란 본래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말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세상만사가 보이게 하는 기술인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 목적이 결합되어 정치적 수사학으로 변하게 되면, 그야말로 세상만사가 한가지 단일한 방향으로 보이게 되고, 우리의 지도자로 추대되는 사람은 지상 최대의 진인(眞人)이 된다. 그러니까 이러한 정치적 수사학에서는 논리적 모순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은 ‘화려하면서도 소박하신’ 분이 된다.
 
정부와 집권세력은 드디어 올 초부터 양극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마치 최근 생겨난 현상인 것처럼. 또 동시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1년 내에 완결시켜야 한다고 서두르고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왔던 것처럼. 더욱 흥미진진한 것은 이 두 가지 정책 방향의 모순을 과연 정부는 어떤 논리로 해결할 것인가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한국 경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외경제연구원의 보고서가 시인하고 있듯, 수치적인 측면에서는 단기 성장 0.49%, 중장기 성장 1.99%라는 그야말로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면은 바로 산업구조의 ‘업데이트’에 있다고 한다.
 
‘선진적인’ 미국의 서비스산업과 여타 산업과의 경제적 통합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부문이나 기업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그 핵심이 된다. 그러니 ‘경쟁력’ 없는 자들은 농민, 영화 감독, 의사, 교사, 증권회사 직원 할 것 없이 모두 자체적인 ‘구조조정’과 ‘재교육’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 대신 대한민국 사회 구석구석은 미국과 한국의 국적을 넘어서서 ‘경쟁력’ 넘치는 강자들로 그득하게 될 것이다. 21세기로 한국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임무다.
 
무릇 이 업데이트야말로 거의 정확하게 양극화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마스터플랜’이라고 할 수 있다. 중산층이 무너지는 것이 양극화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이제 그 중산층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재교육의 힘든 기간을 거치게 생겼다. 개중에도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애초에 미국도 제패할 정도의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이미 중산층이 아닌 상류층이 되지 않았겠는가.
 
양극화도 해소해야 한다고 한다. 또 한국 경제도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화려해져야 한다고 한다. 또 소박해져야 한다고 한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존재라는 것도 만방에 알려야 한다고 한다.
 
아마 별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겠다고 내건 일들이 정면으로 모순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양극화도 해소되지 않을 것이고, 업데이트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고, 화려해지지도 않을 것이며 소박해지지도 않을 것이며, 왼손도 오른손도 쉬고 있는 가운데 또 아무도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저들은 여전히 많은 말을 할 것이다. 양극화는 4.19% 해소되었고 업데이트는 1.99% 이루어졌고 ‘루미나리’만큼 화려해졌고 청계천 풀포기만큼 소박해졌고 꽃꽂이 학원에 나가게 된 집창촌 여성의 미담은 만방에 알려질 것이다. 위대한 정치적 수사학의 시대다. 
*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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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23 [16:1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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