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란 할머니와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할머니는 사실 생물학적으로 노인이지 현실에서는 노인이 아니다. 할머니들은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깔끔하게 돌볼 줄 안다. 나아가 어린아이들을 볼보는 일도 잘 한다. 돌보는 주체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산다. 할머니는 노인이 되어도 여기저기서 반기는 존재이다. 재래시장에 가보면 할아버지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의 할머니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노인인가?
사실 한국의 할아버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다수가 남을 돌보기는커녕, 자기 스스로의 몸도 돌보지 못하고 남에게 얹혀 사는 형편이다. 유독 범죄학에서만 할아버지는 노인이 못된다. 유아와 미성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서 할아버지들은 젊은이들과 경쟁하다시피 한다. 범죄의 대상이 미성년이기에 할아버지들의 존재가치는 더욱 처절해진다. 성차별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 이 차별의식은 자연스레 천벌을 내리게 된다. 노인이 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가 이들의 존재가치를 하늘과 땅만큼 벌여 놓는 것이다. "여자는 늙어 죽을 때까지 쓸모 있지만, 남자는 늙으면 뭐가 돼, 똥이 되는 거지." 한국의 할아버지들의 자조 섞인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할아버지는 아마도 성전환수술까지 생각해 본 것은 아닐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매너도 너무 차이 난다. 문화가 서로 다른 존재들이다. 공공교통기관을 이용할 때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괜찮아, 미안해서 어떡하나, 자, 여기 같이 앉아' 하며 연신 고마움을 표시한다. 할아버지들은 어떤가?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는 할아버지 찾으면 신문에 기사제보하고 싶을 지경이다. 아주 드물게 형식적인 인사 한 마디 한다. 대다수가 당연하다는 듯이 괜찮다는 말 한 마디 없다. 특히 할머니들은 할아버지에게 자리 양보를 잘 하는데 할아버지들은 할머니에게 잘 양보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은 청소년들은 실지로 현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관찰해 보길 바란다. 관찰한 후에 확신이 서면 무조건 나이 들었다고 존경하지 말자. 청소년들은 자체적으로 할아버지들의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해 경험을 교류하고 사회에 미성년 보호장치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지구촌 뉴스를 한번 살펴보자. 할아버지들의 성범죄 소식은 국내외에서 금새 한바구니 가득 잡히지만 할머니들의 범죄 뉴스는 해외토픽에서조차 찾기 힘들다.
"할아버지의 친손주들에 대한 성희롱, 성범죄가 밝혀진 것만 따져도 세계적 추세이고 국제적으로 광범위하다."
"70대 노인,중국소녀 입양해 140여 차례 성폭행… 또 다른 중국소녀와도 1년 동안 살아"
"손녀 뻘되는 아홉 살짜리 여아를 성폭행하려다 '체력부진'(?)으로 미수에 그친 칠순의 노인이 쇠고랑"
"노인 성범죄의 결과는 매우 심각하다. 힘이 약한 노인들이 성폭행하는 대상이 대부분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이다. 동북신문을 비롯한 중국 언론들은 지난해 충칭에 사는 10살 소녀가 74살 노인에게 성폭행 당한 사건 등 노인들이 저지른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을 잇달아 보도한 바 있다." 노인은 성욕이 없는 중성인이라는 사회의식이 할아버지의 성범죄 빈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미성년 여아를 가진 부모는 친할아버지를 포함하여 할아버지를 제 1순위로 경계해야 한다. 미성년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성범죄 진실을 숨기는 사회에서 할아버지들의 성범죄는 완전범죄가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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