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자 데일리 서프라이즈 기사에 나온 시사평론가 진중권 “이명박 대통령? 상상만으로도 잠이 안온다” 는 인터뷰 기사와 그에 대한 10월 3일자 신지호 교수의 반박이 세간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먼저 진중권이 박정희를 "개같은 놈"에 비유하고 몇가지 독특한 논리를 펼친데 대한 반박으로 신지호 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이 개라면 진중권 당신은 파리다"라는 기사가 그 전말이다. 사회과학에 대한 진중권의 경우는 무지가 확실하다 사실 필자가 진중권의 글을 보지 않은지 좀 오래 되었다. 이번의 경우와 같이 특별히 논란이 되면 가끔씩 읽어보지만 그외는 읽어보면 시간이 아깝다는 소위 본전생각이 너무 나서 자연스럽게 읽지 않게 되었다. 신지호 교수가 말하기를 " 정리를 하자면 이렇다. 전체주의 독재와 권위주의 독재의 차이는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그런데 왜 저들의 눈에는 이토록 명백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습부족으로 인한 무지의 발로이거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삐딱 심리’의 발동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진중권의 그런 평가의 저변에는 진중권의 무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운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밖에 차를 몰고 다니면서 여기 저기를 마구 들이 받으면서 온갖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경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진중권에게 부디 대학교 교양과목 중에서 행정학, 그것도 리더쉽이론 부분을 수강하거나 따로 공부해 보기를 권한다. 리더쉽 이론에서는 크게 권위주의형 리더쉽(authoritarian leadership)과 민주주의형 리더쉽(democratic leadership)으로 나눠서 다양한 이론을 전개하고 또 실험결과들도 밝히고 있다.(흔히 카리스마형 리더쉽도 크게는 권위주의형에 포함된다) 신지호 교수의 지적대로 전체주의적 지배와 권위주의적 지배의 차이는 매우 크다. 굳이 필자더러 이 둘의 차이를 알기쉽게 표현해 보라면 '세습을 하고 절대적인 권력을 웅켜진 왕이 존재하는 전제정과 왕이 없는 공화정 만큼이나 큰 차이'라면 사회 일반의 사람들이 감을 잡을 것이다.
시사평론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진중권은 이 부분을 제대로 한번 공부하기 바란다. 그게 진중권 자신의 미래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물론 필자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진중권이 과연 이런 것을 읽고서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고 이해할만한 지적인 능력이 있느냐 하는 부분이지만.(미안하지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해가 좀 힘들면 남들이 공부하는 양보다 10배 20 배 정도 반복해서 암기하면 혹시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시사 평론가 진중권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공부다. 얼마전 'TV책을 말한다'는 대담프로에 나온 진중권은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쓴 장하준-정승일 교수에게 "무척 당혹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런데 진중권이 당혹해 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무지에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진중권이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상대 교수님들에게 자신의 당혹스러움을 해결해 달라는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이상한 모습을 보아야 했었다. 1965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고 2002년 이후 일본 후쿠이현립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인 원로 경제사학자 안병직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일종의 깡패집단이고 폭력집단이다. 북한은 단순 재생산도 안돼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고 지금도 배를 곯는데, 그것이 어떻게 국가인가. 일종의 거대한 폭력집단이 군사력과 정보통제를 통해 폭압기구로 인민을 억압하는 사회다." 이런 안교수의 지적은 필자가 평소에 주장하고 생각해 온 것과 매우 유사하다. 물론 모든 국가라는 조직 자체가 그 속성상 거대한 폭력집단과 유사한 성격을 띄고 있기는 하지만 북한의 경우는 안병직 교수의 지적이 진정으로 딱 들어 맞는 경우다. 민중들을 우매하다 탓하지 말고 진짜 어리석은 진중권이 시각을 바꾸어야
안 교수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근거로 저개발국의 자본주의 발전 가능성을 부정했고 1970년대 말 한국 자본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안 교수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 타도에 나서기도 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스스로 폐기하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입장에 선다. 안병직과 교수가 말한 다음의 자기 고백은 지식인들이 어떤 자세로 자신에게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잘 시사해 준다. “나는 한국 자본주의가 1970년대 말에 붕괴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1980년 그 무도한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후에 도리어 경제가 살아났다. 현실을 원망할 게 아니라 내 시각을 바꿔야 했다. 1985년 3월부터 2년간 일본 도쿄대에서 소련·중국·북한의 연구자들과 교류하면서 ‘사회주의는 전혀 전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자본주의를 제대로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후반은 자본주의의 세기였고, 선두에 서서 이 세계자본주의를 이끌고 가는 국가는 한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신흥공업국이었다. 이들은 선진국이 수세기에 걸쳐서 축적한 자본과 기술을 토대로 발전하기 때문에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중진 자본주의론의 요체다.(안병직)" 이와 비근한 예로 평생을 걸쳐서 기존의 수학체계를 넘어서 새로운 수학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천재 수학자 힐베르트 [Hilbert, David, 1862.1.23~1943.2.14]의 말도 음미해 볼만하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열정과 노력이 버트렌트 러셀이라는 한 천재의 가벼운 농담거리 같은 역설에 의해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음을 자각하고 다음과 같이 편지에 밝히고 있다. ( 이 역설이 그 유명한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깍지 못하는 이발사가 사는 마을'을 예를 들어 설명한 매우 간단한 정리다 ) " 버트런트 러셀에게, 일생에 걸친 모든 노력을 허사로 돌려 버려야 하는 정리가 밝혀지는 것을 반가와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귀하가 밝힌 패러독스는 내가 일생에 걸쳐서 구축하고자 투자했던 모든 노력을 하루 아침에 허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정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군요" 이것이 진중권같은 허위와 무지의 늪에 허우적대는 엉터리 지식인들에게 가르켜 주고 싶은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다. 진중권이 잘 이해를 못할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안병직 교수의 고백에서 중요 부분만 발췌해 주며 끝을 맺는다. 물론 이 말을 듣고 진중권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자신의 시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수학자 힐베르트나 안병직이 가진 학문적인 업적이나 자신감을 신출내기 지식인 진중권이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원망할 게 아니라 내 시각을 바꿔야 했다." 이 말은 진중권 뿐만아니라 허위와 무식의 늪에 허우적대는 모든 지식인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 문명비평가
(예고) 박정희 평가와 개인의 주체성 (다음에 이어질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