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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총리, ‘논술’하나면 서울대문제 해결됩니까?
[논단] 정권 뒷치다꺼리는 그만두고 교육개혁과 입시정책 바로세워야
 
임흥재   기사입력  2005/07/21 [13:01]
서울대의 통합논술고사 실시를 두고 서울대와 정부, 집권 여당까지 나서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20일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논술교과목을 신설하여 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겠다고 나섰다. 정운찬 서울대총장이 한 발짝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서울대의 최고의결기관인 평의원회까지 나서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주요골자인 2008년도 입시안을 지지하고 나서자 이번에는 국공립대협의회에서 노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간섭은 대학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도전이라며 정부 여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시점이다.
 
한편, 학부모회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회의에서는 서울대의 2008년도 입시안은 사실상의 본고사 부활이라며 정운찬총장과 서울대의 입시안을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서울대입시안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대의 2008년도 입시안으로 촉발된 이번의 교육논쟁은 비단 대학의 학생선발권에 따른 당사자 간의 의견다툼으로 국한시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우리의 교육정책의 근간으로부터 해결해야할 난제이기 때문이다. 입시안을 지지하는 입장이나 이를 강력 비판하는 입장이나 양자 모두 뚜렷한 명분에 입각하여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은 이번의 논쟁이 그만큼 우리의 교육정책과 시스템이 위기에 처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의 입시안논쟁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등’이냐 ‘경쟁’이냐 하는 해묵은 화두가 논쟁의 수면 위로 재등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의 경쟁력을 강조하는 논자들의 주장이란 정운찬총장의 비유처럼 “좋은 원료를 가지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교육분야에서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재양성의 최종담당자인 대학이 그 정도의 자율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반면,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에 허덕이는 우리의 현실에서 내신과 수능 외의 또 다른 입시과목을 수험생에게 지우는 것은 본고사의 부활에 다름 아니고 이는 상대적으로 특목고를 비롯한 소수의 경쟁력을 갖춘 고교에 유리한 제도이다. 이는 기존의 교과목을 내실 있게 가르치기에도 버거운 고교의 현실에서 수험생들을 또 다른 입시학원으로 내모는 파행이 불을 보듯 뻔 하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 양자의 주장이 어느 쪽이 더욱 타당하고 설득력을 가지느냐 하는 것은 사실 함부로 정의하기 어렵다. 다만 서울대의 입시안은 우리의 교육정책이 이른바 3불 정책(고교등급제 불가, 본고사 금지, 기여입학제 불허)을 고수하는 한에서는 당연히 교육당국과의 충돌을 가져올 수 밖에 없고, 여론의 비판이 비등할 것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들고 나왔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서울대가 이번의 입시안을 들고 나온 것은 기존 입시정책의 테두리 내에서 나름대로 변별력을 이끌어냄으로서 보다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지 않으면 세계 유수 대학과의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측면을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이것 자체만을 가지고 서울대를 비판하거나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서울대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상징적 자리다.
 
소위 서울대 폐지론 혹은 서울대 무가치론까지 나오게 된 측면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학벌주의와 그 학벌주의의 제일의 수혜자이자 기득권자인 서울대 출신들이 우리의 현대사를 관류하며 저지른 부정성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자리하고 있다. 다양성과 수월성이 보편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는 교육을 추구하는 시점에서도 서울대라는 간판이 차지하고 있는 학벌의 이기적 수혜와 기득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논쟁은 늘 용두사미가 되거나 핵심을 벗어난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건전한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통합형 논술고사를 실시하는 입시안을 지방의 어떤 대학이 발표했다고 치자. 지금처럼 사회적 이슈로 연일 나라를 시끄럽게 했을까를 생각하면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서울대 입시안이 아니라 우리의 교육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그 해답이란 것에 대다수가 동의해주리라 믿는다.
 
서울대의 입시안에 동조하는 대학들을 언뜻 살펴보면 거의가 서울에 위치한 소위 명문대학 몇몇에 불과하다. 물론 이 논쟁에서 서울대가 승리한다면 기타 다른 대학에서도 대세를 따르겠지만 서울대입시안이란 것도 아직은 사례를 예시한 논의의 수준에 불과하다. 즉 야단법석을 떨며 핏대를 세우는 목소리들은, 다른 측면에서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을 포함) 서울대에 가지 않거나 실력이 되지 못해 못가는 수험생들에게는 특별한 이슈가 아니라는 측면에 관심을 돌리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노대통령이 청와대 간담회에서 제시한 ‘대학은 특성화 차별화로 승부해야 된다'는 방편에 대하여 교육당국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런 시점에서 어제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들고 나온 것이 논술교과목의 신설이다. 이런 정신 나간 헛소리가 어디 있나. 결국 서울대입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사교육비 들지 않도록 학교에서 잘 가르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멘트도 빼먹지 않는다.
 
논술교과목을 신설하고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발표가 우선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학을 특성화하고 차별화 하여 대학마다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게 할 것이냐, 어떤 정책적 배려와 지원을 통해 그동안 참여정부가 각혈하는 수준까지 부르짖은 지방화 분권화의 핵심에 지방대학을 위치시키고 그 경쟁력 강화를 위한 어떤 대안들이 마련되어 있으며 학벌사회를 타파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이것이다라는 대안이 먼저여야 했을 것이다. 비단 지방 대학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면서 또한 아이들이 입시지옥을 벗어나 입으로만 외쳐온 전인교육을 받고 그 인적자원들을 심신이 모두 건강하면서 미래 사회의 경쟁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진정한 실력을 겸비할 수 있는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교육의 비전이 선행, 제시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육부총리가 서둘러 논술교과목 신설을 발표한 것은 교육의 장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연일 시끄러운 이번의 논쟁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참여정부의 부담을 줄여보려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즉 교육의 백년대계라는 숲은 보지 않은 채, 숲에 부는 바람이 서울대입시안이라는 나무 사이를 지나며 내고 있는 소리들이 시끄럽다 하여 대충 바람을 막고 보자는 식의 무책임, 졸속행정의 전형이다.
 
참여정부 2년 반의 모든 개혁조치들이 이번의 경우와 똑 같았다. 과거사법이 그랬고 국가보안법 개폐논쟁이 그랬고 언론법이며 사교육법이 그랬다. 노대통령은 무엇 하나 제대로 건사해내지 못하며 분난만 조장하는 화두를 던지면 열린우리당과 정부 담당부처에서는 변죽만 울리다 제 풀에 지치고 마는 것이 참여정부의 일반화된 통치모델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학의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본고사 부활 등 이른바 3불 정책의 재고에 따른 여론의 비판이 비등한 시점에서 당장에 3불정책의 해금을 실시하기에 이르다 하여 그 정책의 실리와 미래 사회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그것의 논의까지 금지하려는 발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무엇이 대안이고 합목적적인 것이며 실제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험은 보장되어야 한다.
 
서울대의 입시안을 그저 정치적 측면 또는 정권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미리 결론을 규정하고 마는 작금의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교육정책에 대한 다양한 접근은 늘 열려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부분에 국한하여 말하면 내 큰아이가 중학교 3년이다. 즉 2008년도 입시안의 바로 당사자다. 지방의 아주 작은 소도시에 사는 내게 있어 교육환경이나 경제적 측면을 고려하면 나는 서울대입시안을 반대해야만 유리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렇다고 그것이 서울대 입시안을 반대할 명분은 되지 못한다.
 
서울대가 본고사 부활이라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통합교과형 논술고사를 실시하고 그것이 대학의 자율성 보장이라는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면, 우선 서울대는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권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서울대와 국공립대와의 차별, 특별한 설치근거를 내세우려는 기득권적 발상, 책임은 회피하면서 보다 많이 누리려는 이기적 욕심 등을 포기하는 것이 순서다.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여 그것으로부터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면 그것 역시 대학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순리에 맞다. 다른 국공립대보다 더 많은 예산을 써야하고 더 많은 특권적 배려를 국민에게 혹은 국민의 혈세에서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서울대에서 내놓고 있는 서울대특별법은 무엇이고 서울대병원의 복지부 이관을 놓고 벌이는 서울대의 특별한 위상의 근거와 주장은 자신들이 내세우고 있는 자유 경쟁의 원칙과 자율성의 추구라는 명분에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학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입시학원으로 몰려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작금의 입시지옥, 가계의 균형까지를 위태롭게 하는 과중한 사교육비 등이 학교교육의 부실에서만 비롯된 것인가? 인터넷이며 방송강의 아무리 강조하여도 입시학원으로 몰리는 이 망국적 현상은 그리 개선되지 않았다. 아니 개선이 불가하다. 바로 우리의 학벌주의, 인생의 한 판 승부가 바로 대학입시 한 방으로 결정되고 마는 이 결정론적 시스템으로 고착화 된 대한민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업보다. 그런데 고작 내놓는다는 방편이 논술교과목 신설이라니... 학과 한과목이, 그것도 본고사처럼 수능 뒤에 따로 보아야 하는 교과목이라면, 수험생에게는 또 하나의 입시학원에 등록해야 한다는 노역의 부과일 뿐이며 학부모에게는 그 돈을 벌기 위해 등골이 휠 또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고역에 불과하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평준화도 아니요 본고사의 부활도 아니다. 그것은 단순하고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는 종이시험과 그 종이시험의 답을 족집게처럼 미리 집어내 대비해야만 하는 족보교육이 가장 큰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의 경쟁력이란 것이 다양성과 본인만의 특별한 적성에 기인한 분야에서의 성취도가 틀리지 않다면 우리의 교육도 거기에 맞게 행해져야 하고 그런 인재를 적재적소 분야에 맞게 선발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선발방식이 존재해야만 한다. 지금처럼 획일적인 선발시스템이 있는 한, 사교육과 과도한 입시경쟁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논술은 하나의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김교육부총리의 엉뚱한 발상처럼 교과목의 이수로 변별 되는 논술이 되어서는 안된다. 즉 이런 저런 예제가 있고 거기에 맞는 모범답안이 존재하는 그런 교육은 논술도 아니요 변별력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수험생 모두를 법전의 해석에나 유용한 사법고시 수험생으로 만들려는 것인지 나는 김 교육부총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논술이란 당사자의 사고력과 대상에 대한 인식, 그에 관련한 가치관 그리고 나아가 수험생의 세계관 등 그가 가진 미래의 전망과 목표를 묻는 것이어야 한다. 이는 하나의 체계로 이미 굳어진 실제적 이론을 암기하거나 그것에 맞춘 글쓰기의 전형을 훈련하는 것이 논술이 되어 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미래 사회의 담당자로써 수험생에게 필요한 것을 묻는 논술고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체험한 실제경험과 독서와 기타 다른 일상의 예술적 혹은 특별한 간접경험 등을 통해 당사자에게만 형성된 고유의 사고체계, 가치체계, 인식의 차별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고교 한 두 해의 교과목 이수로 가능한 것도 가능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입시지옥 학원의존교육의 병폐는 바로 족보에 나와 있는 문제유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그 모범답안이 효력을 발휘하는 빌어먹을 교육시스템에 있다.
 
언제가지 그 족보교육형 교육정책들을 양산해내고 있을 것인가? 정운찬총장에게 나는 부탁한다. 논술뿐인가. 구술고사며 인터뷰며 서구 명문대학들처럼 수험생의 미래사회에 대한, 혹은 대학지원 후의 학업계획과 구체적인 목표를 묻는 에세이는 왜 요구하지 못하는가? 학원에서 가르치지 못하고 한 두 해의 벼락공부와 단순한 지식체계만으로 머리를 채우는 방식으로는 서울대생이 되지 못한다는 전범을 왜 만들려 하지 않는가. 영어가 조금 딸리고 수학이 조금 약해도 학문에 대한 열정과 소신이 있다면, 또한 미래사회의 중추적 일원이 될 구체적 비젼을 가진 학생이라면 누구나 서울대생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꿈을 왜 아이들에게 들려주지 못하는가. 나는 앞에서 예시한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모색된다면 3불 정책을 비롯한 모든 논의들이 이제는 활짝 열린 마당에서 논의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소위 진보적 지식인, 전교조를 비롯한 모든 교육담당자 등 무조건적이고 천편일률적인 반대논리만을 가지고 우리의 교육정책에 접근하는 것에 극도로 분노한다. 양비론이라 욕을 먹을지언정 아직 국민적 공감대나 치열한 논의와 준비과정을 생략한 채, 한나라당처럼 여당의 정책에 대한 반대당론을 과시하는 것으로 교육정책에 졸속 접근하는 것 역시 경계한다. 방폐장을 건설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핵발전을 포기하면서 가중 되는 전력생산비용을 국민들에게 부과해서도 안 되는 비핵과 핵의 산업적 활용을 구분하지 않는 일부 진보적 명사라는 분들의 허울뿐인 논리와 마찬가지로 교육정책에 대한 근시안적 접근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토론회에 나가서 어물쩍 정총장과 화해하는 제스처를 취할 시간 있으면 스스로 말했듯이 어느 정권도 쉽게 해결하지 못할 이 국가의 숙원난제에 대하여 진정으로 고민하길 바란다. 논술교과목 신설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헛소리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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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7/21 [13: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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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푸른 2005/07/28 [11:05]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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