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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석논쟁8] 진정한 정당정치는 어느당인가?
이미지의 정치학을 넘어 논쟁의 법칙을 위하여ba.info/css.ht
 
최병천   기사입력  2002/05/06 [23:20]
사회학을 전공하며 민주당 당원이기도 한 장신기는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김민석이라는 인물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수구파식 마녀사냥의 진보적 버전이다”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어디 하루 이틀 들어본 말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필자는 정치적 견해차이를 떠나서 건강한 논객이라면 최소한 수구파식 마녀사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설령 그 사람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일지언정 마찬가지이다. 다만 장신기씨가 유념했으면 하는 것은 장신기씨가 논쟁의 대상으로 설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통신상에서 즉석으로 올라오는 저급한 글들이어서는 아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1. 인상비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 인상비평의 사회학

장신기씨는 현재 논쟁의 상대방인 ‘필자’의 문제제기에 충실했으면 한다. 또한 저급한 인상비평이 난무하는 분위기는 언제나 논리적 사고가 저급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분위기이다. 그런데 아울러 이러한 인상비평에 대한 비판은 장신기 본인에게도 유효하다는 점을 일러주지 않을 수 없다. 인상비평을 비판하던 장신기의 인상비평들을 약간만 취합해보기로 하자.

“나는 민주노동당의 일부는 실질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적폐물들인 수구파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시대에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고루하고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무장된 사람들은 민주당에도 있고 민주 노동당에도 있다”

“정치 뿐만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기본적인 관점은 극단을 싫어한다. 그리고 '나만 잘 났고 옳다'는 오만과 독선에 대해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상당수 이문옥지지논자들의 입장이 지금 그와 비슷하다”

“조언하자면 일부 진보 논객들이 적만 양산하는 이유가 바로 마구잡이식 이미지 비판과 독단 때문이다. 그리고 팩트도 모르면서 무책임하게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내가 수구파식 마녀사냥의 진보적 버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문옥지지자들은 민주노동당의 현재의 공세가 기성 정당의 그것과 사실 별 다를게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신들만 순수한 것처럼 생각하는 그 오만함을 버리기 바란다”


장신기씨는 위와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으면서도 논리다운 논리를 제시한 적이 없다. 단순한 말의 ‘조합’과 ‘논리’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심지어 장신기는 다음과 같은 말의 조합을 논리랍시고 제시하는 용감함까지를 보여준다.

“노무현씨를 더욱 지지하게 된 근거 중의 하나는 그가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순리에 맞는 주장만을 한다는 데에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부패에 대한 언급인데, 노무현은 부패를 함부로 척결한다고 하지 않았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장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비교해보면 이문옥씨 지지자들이 정치적 장점을 내세우고자 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이것이 비교 우위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 장신기, [누구의 지지논리가 우위인가] 中 -

{IMAGE1_LEFT}지금 장신기는 민주노동당은 부정부패의 ‘척결’을 함부로(?) 주장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고 순리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인가? 위의 글은 장신기가 민주노동당에게 표현했던 ‘보수적이고’, ‘고루하고’,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를 하고’,  ‘극단’이고, ‘오만과 독선’이고, ‘순수한 것처럼’ 거침없이 주장하는 근거 중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 참으로 우리는 <인상비평의 절정>이 무엇인지 오히려 장신기의 글을 통해서 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라고 해서 대단한 ‘절대’ 善일 수 없다. 비판받을 것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인상비평을 넘어서는 <비판>을 하려면 현재 옥/석 논쟁과 관련되어서 민주노동당의 “어떤” 주장이 극단이고, “어떤” 주장이 오만과 독선이고 “어떤” 주장이 지나치게 경직된 것인지 장신기는 정직한 답변을 해주기를 바란다. 합리적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어떤>과 <왜>가 빠져 버린 이미지의 남발, 바로 그것이 인상비평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만일 장신기씨가 <어떤>과 <왜>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몹시도 서글픈 일이자 동시에 몹시도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서글픈 이유는, 위와 같은 이미지적 “딱지붙이기”는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수구꼴통들이 써먹는 것인데 다름아닌 ‘민주당 당원’인 장신기씨가 오늘날 민주노동당에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두려운 이유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제압’한 이후 민주노동당을 향해서 행해질 신종 색깔론과 신종 마녀사냥이 얼마나 넓은 외연을 가지고 자행될 것인지 눈에 선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자의 서글픔과 두려움이 제발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에 대한 장신기의 성실한 해명을 촉구한다.

2. 여전히 유효한 문제제기 - 다시, 한국정치는 정당정치인가?

장신기씨의 글에 대해서 반론을 펼치고 있는 필자는 지금 몹시 서글프다. 필자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오독’과 ‘논점일탈’을 밥먹듯이 자행하는 사오정들과 논쟁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 할 수 없이 오독을 일일이 지적해주어야 하는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독을 지적하느라 보다 생산적인 논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정말이지 논점에 정직하게 천착하는 생산적 논쟁을 거듭 기대해보며, 장신기가 하나도(!) 답변한 것이 없는 필자의 문제제기를 다시 재확인하고자 한다.

최초의 글에서 장신기 주장의 요지는 다음의 3가지로 압축된다. (1)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다. (2) 민주당의 대선후보는 노무현이다. (3) 노무현과 김민석은 운명공동체이다. 이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전개했다. (1) 노풍의 진보적 의의는 “상식의 회복”에 대한 대중들의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2) 정당정치를 말하기에는 민주당은 감히(!) 정당의 명함조차도 내밀 수 없는 前근대적 정당이다. (3) 김민석과 노무현이 운명공동체라고 ‘주장’하는 장신기씨의 논리에 의하면 김민석이 낙선이라도 한다면 노무현에게 책임을 묻고자 하는 ‘주장’을 도대체 어떻게 비판하려고 하는가? (4) 민주노동당은 당원들의 자발적 정치자금으로 운영되는 깨끗한 정당이며, 가장 현대적인 <참여민주주의형 노동자/서민의 정당>이다. (5) 前근대 극복과 “상식의 회복”이라는 기치아래 노무현을 지지했던 바로 그 ‘최초의’ 이유에 입각한다면, 깨끗한 정당의 깨끗한 후보 이문옥 후보를 찍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이상이 장신기의 주장과 필자의 반론이었다.

이에 대해서 장신기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최병천씨와 나는 보수를 인식하는 관점부터 다르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일부는 실질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고루하고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무장된 사람들은 민주당에도 있고 민주 노동당에도 있다”

필자는 앞서의 글에서 보수적인 이념을 가진 사람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고 했다. 필자가 비판한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보수성’이 아니라 <前근대성>을 비판한 것이다. 마음대로 오독하지 마시라(!) 작년 쇄신파동을 곰곰이 돌이켜보자. 쇄신파의 핵심 요구사항은 권노갑의 퇴진이었다. 당시 권노갑은 어떠한 공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떠한 공직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연인’ 권노갑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 이런 것이 정상적인 보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가? ‘자연인’ 권노갑이라는 사람에게 국가정보원장이 보고나 하고 자빠진 모습이 ‘보수’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이것은 보수정당의 한계가 아니라 前근대적 정당의 한계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장신기는 보수의 이름을 함부로 더럽히지 마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고루하고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무장된 사람들은” 물론 민주당에도 있고 민주노동당에도 있다. 정당정치 논의를 그렇게 좋아하는 장신기는 이 문제를 ‘인물론’으로 환원하고 싶은 것인가? 문제는 인물 ‘개인’이 아니라 인물들이 서로 얽혀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구조(!)의 문제이다. 개인들이 특정한 구조에서 결합되어 있는 <세력>의 문제이다. 민주당내에서 가장 깨끗한 편으로 인정받을 만한 김근태같은 사람이 권노갑에게서 정치자금을 받는 판국에 김민석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당내에 있는 ‘일부의’ 고루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정당을 성격을 대표하는 <보편성>(전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3. 장신기씨의 정당정치론 - 前근대적 정당도 변화하니까 前근대적 정당을 밀어주자?

장신기씨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조는 필자)

“나는 정당정치가 기본이라고 했다. 이는 상식적인 수준의 표현이다.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그 다음에 인물을 중요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그 동안 한국 정치가 제대로 발전되지 않은 것은 전근대적인 정당 구조와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인물 중심적 정치 문화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들이 민주당의 정당 개혁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큰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 (중략) ....  최병천씨가 민주당은 계속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에 대한 보수성의 규정은 이제 부분적인 의미만을 가진다”


장신기씨가 말하는 정당정치란,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회학도인 장신기의 정당정치에 대한 인식은 <정당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의식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채 단지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정당정치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보다? 그간 한국정치의 문제점은 지역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던 그간 우리 국민들이 <근대적 합리성>의 잣.대.가 아닌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정당정치(?)의 포로가 되어 있었던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열혈 지지자를 자처하는 장신기가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을 정당정치라고 새삼스럽게 다시 주장한다는 것은 역사의 희극인가? 비극인가?

장신기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가? <지역주의 해체>에 대한 열렬한 갈망을 가지고 노풍을 일으켰던 사람들은 단지 정당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에 안티를 걸었다. 그들의 열망은 오히려 <정당정치란 ‘무엇’인가> 혹은 <‘어떤’ 정당인가?>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된다. 바로 이러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오늘날 “상식의 회복”이라는 슬로건으로 일상화된 것이다. 장신기는 자신이 열렬하게 지지하던 노무현의 성공은 이루었을지 모르겠지만 노풍이 이루어야 할 ‘미완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식의 회복”(합리적 사고의 진보)는 전혀 이루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또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희극인가? 비극인가?

민주당이 변화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소위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 떠드는 민주당의 ‘종이당원’은 100만 명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당비내는 ‘진성당원’은 5천명 내외인 이 상황. 더욱 놀라운 것은 한달(!)에 내는 1인당 평균 당비가 월 160만원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 중산층과 서민들은 생활하는 돈을 전부 제외하고 당비‘만’ 한 달에 160만원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떼부자가 되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현대적 참여민주주의형 노동자, 서민의 정당인 민주노동당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前근대적 정당인 민주당이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지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장신기 본인이 펴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대선 후보에 대해서 당내 경선제도를 제일 먼저 도입했던 곳은 97년 한나라당(신한국당)이었다. 장신기씨의 논리에 따르면, 수구꼴통 한나라당도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고 있는데 수구꼴통을 지지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장신기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당내민주주의가 <어떤 동력>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변화하는 기본 동력은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른바 386의 대표주자급에 해당하는 김근태 같은 사람도 정치자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민주당의 <구조>에 대한 근본적 고민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IMAGE2_RIGHT}민주당이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진일보한 대안을 채택했던 것은 작년 10월 25일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했기 때문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민주당의 당원인 장신기는 전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정치에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주장하던 <당원민주주의>에 입각한 당원들에 의한 상향식선출을 일찌감치 민주노동당이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것이 (동력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나의 여론적 압력으로 중요하게 작동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사발전이 진보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명심해야 할 것 하나는 <참여민주주의형 노동자, 서민의 정당>, 깨끗한 정당, 민주노동당의 깨끗한 손, 이문옥 후보가 선전하면 할수록 그 자체로 장신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담론인 한국의 “정당정치”는 더 진일보할 것이라는 점이다. 변화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력>이 작동할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신기가 답변해야 할 것은 통신공간에 올라오는 김민석 후보에 대한 저급한 인상비평을 애써 방어하기 위해서 이런 자료 저런 자료를 수집하는 것 이전에 (1) 정당이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며, 정당정치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직하게 천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2) “상식의 회복”이라는 노풍의 가치에 비추어봤을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중에서 어느 정당이 이에 반하는 前근대적 정당이라고 생각되며, 어느 정당이 “상식의 회복”이라는 가치에 걸맞는 <참여민주주의형 노동자, 서민의 정당>이라고 생각하는지 정직하게 답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3) 또한 수구꼴통들이 써먹던 수법을 그렇게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민주노동당을 비롯 진보정당에 대해서만큼은 <수구파식 마녀사냥의 ‘민주당식’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상비평을 해대는지 깊이 있는 성찰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논리적 정직함은 ‘논객’의 윤리라고 생각되며,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는 ‘사회학도’의 윤리라고 생각되며, <노동자/서민의 편>에 서고자 하는 것은 ‘정치인’의 윤리라고 생각된다. 민주당 당원이자 사회학을 전공한다는 장신기가 성찰하는 모습 속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화답하기를 기대해본다.

* 이어서 정당론, 정책론, 인물론(자질론)에 근거한 이문옥 지지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관한 글이 올라갑니다.

장신기, [옥/석 논쟁 7] 이문옥 찍으면 노무현이 산다-최병천씨와 김수민씨 견해에 대한 반론
장신기, [옥/석 논쟁 6] 누구의 지지논리가 우위인가-김민석 지지논리는 이문옥 지지논리를 압도한다
이장규, [옥/석 논쟁 5] 이제 우리도 이런 시장 하나쯤 가지고 싶다
김수민, [옥/석 논쟁 4] 노무현-이문옥 동시 지지는 모순이 아니다 - 장신기, 최병천의 글에 답한다
장신기, [옥/석 논쟁 3] 김민석 비판은 정당한가-인물비판을 넘어 정책비판을 위한 제언
최병천, [옥/석 논쟁 2] 한국정치는 정당정치인가 - 장신기씨에 대한 반론 및 노사모에 묻는다
장신기, [옥/석 논쟁 1] 이문옥 등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김민석과 노무현은 운명공동체이다

* 이문옥 후보 팬클럽 깨끗한 손 가기 : http://moonOK.com
* 사진은 지난 5월 1일 청계천 전태일 열사 기념동판 앞에서 이문옥 후보의 추모식 모습(대자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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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06 [23: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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