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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재의 '2002 대선 돋보기']
정치자금 실명제를 도입하라
 
손혁재   기사입력  2002/03/19 [10:15]
'검은 돈’은 한국 정치가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인가. 한국 정치의 걸림돌 가운데 하나인 검은 돈이 또 다시 정치판을 회오리로 몰아가고 있다. 진행중인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경선에서 돈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돈 문제는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면서 우려했던 사안이다. 국민의 관심과 기대 속에 진행되는 정치실험이 돈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지 걱정스런 상황이다.



  7명의 경선 참가자 가운데 두 명이 돈 문제로 중도 하차했다. 가장 깨끗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불법적 정치자금 사용을 고백했다가 차가운 반응 속에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유종근 전라북도 지사는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돼 경선에서 물러나 민주당을 떠났다. 또 제주와 울산 지역에서 치러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경선 과정에서 일부 후보가 돈 살포 등 부정선거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IMAGE2_RIGHT}더욱 안타까운 것은 김근태 의원의 충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정법상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진실을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자기고백을 한 김근태 의원의 용기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법과 제도의 개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낡고 썩은 정치행태를 국민 앞에 고백하는 정치권의 뼈저린 반성이기 때문이다. 우선 여야의 대선 주자들부터 김근태 의원의 뒤를 따라 정치자금에 대한 고백을 하고, 당내 경선 과정에서 돈을 뿌리는 낡은 행태를 버렸으면 김근태 의원의 고해성사가 정치개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공개적인 비난은 없었지만 당을 깨뜨린다는 곱지 않은 눈길 속에 김 의원이 경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치자금은 없어서는 안 된다. 돈이 없으면 정치를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정치를 썩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허버트 알렉산더는 "돈이 정당이나 정치인을 위해 지지를 동원하고 영향력 확보를 도와주는 자원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돈이 정치권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정당과 정치인은 돈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이 과정에서 돈이 정치를 썩게 만드는 것이다.

  정치적 비리의 뿌리는 돈 선거이다. 정치 자금이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이 바로 선거인 것이다. 선거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검은 돈에도 손을 내밀게 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게 된다. 결국 돈 선거는 정경유착,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을 심화시키게 된다. 철저한 공영제를 하더라도 선거에는 어차피 돈이 들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꼭 필요한 돈만 쓰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돈으로 표를 사고 파는 일이 생겨난 것이다.  

  깨끗한 선거를 정착시키고 나아가 정치인과 공직자가 권력을 남용하여 뇌물을 받는 권력형 비리를 없애기 위해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치자금 유통을 양성화시켜 정치가 검은 돈의 거래를 통해 타락하지 않도록 정치자금법을 고치고 나아가 금융실명제나 돈세탁방지법도 함께 고쳐야 한다.

  정치자금법에는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당비, 후원금, 기탁금, 국고보조금 등으로 되어 있다. 현재 각 정당은 당비 의존도가 턱없이 낮고 국고보조금과 후원금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자금의 가장 중요한 출처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에 불투명한 정치차금 제공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기된 것이 법인세의 1%를 정치자금으로 지원하자는 주장이다. 정치자금의 안정적 지원을 통해 음성적 정치자금을 막음으로써 정치도 깨끗하게 되고, 기업들도 정치자금 부담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금을 걷어 정치자금으로 준다는 데 대해 국민이 쉽게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국고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정당에게 지급되는 국민의 세금을 정당이 낭비하고 있는 데다 음성적인 검은 돈의 거래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양대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는 예산의 0.1%를 웃도는 1138억 여 원이 정당에 지급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가 제대로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지금까지의 각 정당의 국고보조금 지출내역에 관한 회계보고는 엉터리였다. 다시 말하면 국민세금을 정당들이, 또는 정당지도자들이 멋대로 써버리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이 잘못부터 고치고 난 뒤에 법인세 1% 정치자금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바른 순서이다.

  정치자금법 개정의 대원칙은 검은 돈이 정치에 끼어 들지 못하도록 정치자금을 실명화시키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자금법으로는 정치자금을 실명화시키지 못한다. 후원회에 가입하지 않은 개인이나 단체가 정치인에게 직접 금품을 제공하는 불법 정치자금은 그 실태가 좀처럼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근태 의원의 경우도 그 자신의 고백이 없었다면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의 정치비리가 의혹만 남고 제대로 밝혀지지 못했던 것도 이런 한계 때문이다. 후원회 등 합법적 절차를 밟은 정치자금은 형식적이고 대부분의 정치자금은 음성적 거래를 통해 조달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이뤄지고 정치부패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치자금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치자금의 입출금을 한 통장에 관리하도록 하고 정당회계보고서 기재내용을 강화시켜야 한다. 각 정당과 지구당은 선거관리위원회에 1년에 한번씩 회계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지출에 대한 영수증만 첨부하도록 되어 있고 수입에 대해서는 총액만 밝히면 된다. 따라서 정당운영자금의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입출금을 한 통장에 관리하고 그 통장 사본을 제출하게 하면 수입내역을 알 수 있다. 다른 계좌에서 나온 돈이나 계좌가 없는 돈의 사용이 밝혀지는 경우 다 불법정치자금으로 간주해도 될 것이다. 또 100만원 이상의 정치후원에 대해서는 납부자와 액수를 유권자에게 공개하도록 해야 하며, 수입지출에 있어서는 수표사용의 의무화 등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의 경우에도 더 이상 비자금의 조성이 불가능하도록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고비용-저효율’의 ‘생산성 낮은’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검은 돈은 언제라도 우리 정치를 망치게 될 것이다.

* 필자는 정치학 박사로 정치평론가, 국민대 행정학과 겸임교수,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으로 활동중. 저서로 《새천년 한국시민사회의 비전》 《김대중 정부개혁 대해부》 등이 있다.
** 손혁재 박사는 본지에 [2002 대선돋보기] 코너를 연재할 것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들의 성원과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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