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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 풀어보는 정계개편 감상법
정치권 새판짜기 미뤄선 안된다ba.info/css.html'>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3/31 [22:01]
{IMAGE1_LEFT}민주당 국민경선 유세 과정에서 이인제 고문이 연일 쏟아내고 있는 정치적 레토릭을 찬찬히 훑어보면, 마치 민주노동당 전당대회에 자유민주민족회의 이철승 대표가 찬조연사로 등장한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기 그지 없다. 토요일 치러진 경남지역 국민참여경선에서 이고문이 행한 연설을 듣고 가장 황당해할 사람들은 노무현 고문이나 그의 지지자들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었을 것이다. 이인제 고문에 의해 졸지에 민주노동당에 온건보수 우파 정당이라는 딱지가 붙여졌으니 말이다.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자. 지금은 극우주의자로 낙인찍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철승씨가 한때는 김대중-김영삼 양김씨에 필적하는 전도유망한 차세대 정치주자로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런 그가 DJ나 YS처럼 대권고지 등정은 차치하고, 대통령직에 제대로 도전장 한번 내밀지 못한 채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져 영락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헤아리지 못하고 중요한 국면마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판단을 내린 자승자박의 결과라는 것이 한국정치를 연구하는 이들의 중론이다.

경선후보 사퇴파동 이후 이인제씨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보는 지역 맹주로 군림하며 정치권 내에서 일정지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JP는 고사하고, 출신지역인 전북에서마저 외면 당하고 있는 이철승씨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듯하여 대단히 우려스럽다. 당원과 국민을 상대로 그가 불붙이려 애쓰는 사상검증 논쟁은 CGV나 메가박스에서 케이스에 빨간 라벨 붙은 16mm 싸구려 에로영화를 동시상영하는 것처럼 관객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전개를 단순히 경선의 전체적인 판세를 오독한 이고문 개인의 정치적 오판 탓으로 돌리기에는 석연지 않은 구석이 많다. 이인제 고문의 목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엇박자로 들리는 것은 자신의 정강과 정견을 실천할 현상적 매개체인 정당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고문이 천명하고 있는 노선과 정책은 민주당보다 한나라당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이고문과 민주-한나라 양대 정당, 그리고 국민 전체를 위해 모종의 통로를 개척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진정한 프로선수는 개인성적에 연연하기에 앞서 팀의 승리를 우선시한다. 바람직한 정치인이라면 당적이 없는 무소속이 아닌 이상, 자신의 정치적 입지보다는 소속 정당의 장기적 진로와 집권 가능성에 유의해야 마땅하다.

프로스포츠에서는 팀 성적이 부진하면 개인기록이 아무리 출중해도 팬과 구단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개인 지지도가 높아도 소속 정당이 지리멸렬 상태에 처해 있다면 해당 정치인의 정치적 장래는 안봐도 훤하다.

지난 2년간 구동교동계는 골 에어리어를 서성이는 이고문을 향해 무수히 많은 센터링을 올려주었다. 소속 계보원들 역시 이고문을 응원하는 치어리더 노릇을 묵묵히 감내했다. 좋든 싫든 한나라당 골 네트를 흔들 수 있는 골 결정력을 가진 선수는 이고문 밖에는 없다는,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고문은 무수한 득점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문전처리 미숙으로 계속 헛발짓만 해대는 한국축구처럼 국민지지율 측면에서 이회창 총재에게 줄곧 뒤처져왔다. 선수교체나 포지션 변경을 요구하는 함성이 경기장 전체를 흔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다. 이고문은 포지션 변동을 감독(DJ)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의 선수교체는 감독의 의사가 아니라, 전적으로 구단(당원)과 팬(국민)들의 여론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거쳐 단행된 것이다. 괜시리 감독을 향해, 혹은 동료선수에게 원망의 시선을 돌리는 것은 선수가 갖춰야 할 경기매너가 아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국민과 네티즌)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자발적으로 운집한 서포터스(노사모)들의 뜨거운 응원 아래 긴급히 교체투입된 선수가 백넘버 2번 노무현이다. 연습경기와 번외경기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기량을 향상시킨 그는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켰다. 현란한 개인기로 이인제에게는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던 한나라당이 자랑하는 빗장 수비진인, 색깔론-음모론-지역감정으로 형성된 스리백 시스템을 파죽지세로 돌파한 다음, 골키퍼 격인 민정계마저 가볍게 제치고 한나라당 문전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여론과 언로를 독점한 수구언론의 밀집대형수비를 일시에 무력화시키는 수백만 네티즌들의 절묘한 공간침투 패스가 노무현의 득점 퍼레이드를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팬과 소속팀은 축제 분위기다. 그런데 같은 팀 선수 하나가 우리편과 상대편이 헷갈리는 모양이다. 아니면, 포지션이 스트라이커에서 미드필더로 끌어내려진 것이 불만인 듯 공만 잡으면 상대편 골대가 아니라 우리편 진영을 향해 뻥뻥 차대기 일쑤다.

축구는 11명이 하는 경기다. 골넣은 스트라이커에게 당장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것 같아도 경기 결과는 팀 전체, 응원단 전부, 팬들 모두를 울리고 웃긴다. 이인제 고문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더라도 미드필더나 수비수로서 팀 승리에 기여할 몫을 찾아야 한다. 팬과 구단은 팀 기여도에 상응하게 선수 고과를 산정한다. 노무현은 1군-2군, 홈-어웨이, 맨땅-잔디-인조구장 등 포지션과 그라운드 컨디션을 가리지 않고, 스탠드에 관중이 있든 없든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그 성실성과 승부욕이 검증되고 인정받아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다. 상대팀인 한나라당 내홍의 원인이 무조건 주장(총재)도 내가 하고 스트라이커(대선후보)도 꼭 본인이 해야 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총재의 오만과 독선에 있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기 바란다.

근육과 근육이 맞부딪치는 스포츠는 의외로 정치와 메커니즘이 흡사하다. 팀 전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팬들의 요구에 따라, 혹은 구단과 감독의 필요에 의해 수시로 트레이드 시장이 형성된다. 종목을 농구로 바꿔보자.

지금의 정당구도를 개관하면, 한쪽 팀에는 서장훈-김주성이 함께 플레이 하고 있어 센터진이 남아 도는 형국이고, 상대팀에는 김승현-이상민이 동시에 뛰고 있어 포인트 가드가 넘쳐나는 문제점이 있다.

정계개편 어려운 것 아니다. 필의 색깔에 맞지 않거나, 팀전술 운용에 부적합한 선수를 방출하고, 팀에 요긴한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정계개편의 골자이다. 그것은 구단(정당)이나 팬(지지자)들의 바람이며, 균형적인 전력보강을 기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물론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스처럼 엄청난 물량공세로 우수선수를 싹쓸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자민련 의원임대 해프닝에 비견돼는, 하도 선수가 이팀 저팀을 옮겨다녀 팀 동료들마저 혼동을 일으키는 프로농구 대체용병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취지도 아니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트레이드 시장을 형성하여 필요한 선수를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팀전력을 극대화자는 것이 목적이다. 전력이 비슷해야 경기를 바라보는 팬들도 신나고 박진감이 넘친다.

지금의 민주당은 프로농구 대구 동양과 비슷하다. 김승현이라는 새로운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재정비함으로써, 작년 시즌 꼴찌에서 이번 시즌 정규리그 우승이라는 기적을 연출했다. 민주당은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에이스를 발굴함으로써 역전의 발판을 다졌다. 고졸학력으로 자수성가한 노무현과, 몇몇 대학들의 인맥과 입김이 좌지우지하는 농구판에서 농구 비명문대 출신으로 이번 시즌 MVP에 등극한 김승현의 삶의 궤적을 대조하면, 두 사람 모두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잡초처럼 일어나 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랍다.{IMAGE2_RIGHT}

대학농구를 주름잡던 화려한 공격수에서 코트의 마당쇠로 변신해 궂은 일을 도맡은 양철(전희철-김병철)의 존재도 동양의 우승 원동력으로 무시할 수 없다. 국민경선 후보를 중도사퇴하고 식스맨을 자임한 김근태-한화갑-김중권 고문이 건재하기에 민주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은 한 발짝 더 현실화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고집스레 특정 선수(갈베스)를 선발 투수로 내세우다 2001년 한국시리즈 패권을 두산에게 헌납한 삼성 라이온스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작년 우승에 안주하여 새로운 전술 개발을 등한시하다 전년도 챔피언 팀으로서 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수모를 당한 삼성 썬더스 농구단의 추락에서는 낡은 색깔론과 구태의연한 음모론에 집착하다 본선 진출은커녕 예선전에서부터 휘청거리는 이인제 고문이 자꾸 오버랩된다.

특정선수 편애는 팀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선수 스스로가 감독은 물론 구단주 노릇도 겸해야 한다고 버티다 다른 선수들의 반발에 못이겨 마지 못해 감독직만 내놓는 팀은 미래가 없다.

이인제 고문과 이회창 총재는 팀보다는 개인성적에 연연하다 낭패를 본 경우다. 이들이 대세몰이의 무대로 삼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참에 국민들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남의 손 빌려 가려운 곳 긁으려 할 참인가.

최근 들어 갑자기 잠바 차림으로 승합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한 이고문이 이회창 총재 바로 곁에서 이총재를 도운다면 이총재에게 천형처럼 따라나니는 귀족 이미지가 조금이나마 희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의 중흥을 가져온 코믹 코드가 정치라고 약발이 통하지 말란 법은 없다. 서로 얼굴만 맞대도 앙앙불락했던 이총재와 이고문이 톰과 제리나 토끼와 거북이처럼 나란히 손잡고 국민화합과 지역통합을 호소하며 전국의 유세장을 누비는 광경, 그 얼마나 살가웁고 아름다운 정경인가. 수천억의 비자금을 은닉한 노태우를 보통사람이라 여기고, 독립투사를 때려잡은 친일파를 책사로 부린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 데서도 여실히 입증되었듯이 이인제-이회창 두 사람의 주된 지지기반을 이루는 한국의 노장년층은 대중조작에 극히 취약하다. 양이(兩李)가 연대하면 1노(盧)를 따라잡을 가능성에 실낱 같은 희망이 비친다. 용장 관우를 함정에 빠뜨리고자 여우 조조와 구렁이 손권이 전략적으로 제휴했던 역사적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이인제 고문과 이회창 총재는 공동운명체다. 이인제와 붙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가설에 이회창의 존재이유가 있었다. 정권은 내어줄망정 그나마 체면치레는 할 정도의 득표율을 올릴 이회창 대항마로서, 이인제 대세론은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왔다. 두 사람 모두 노무현이 집권하면 송곳 하나 꽂을 곳 없을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다. 이이동주(李李同舟}하기로 작심한 이회창-이인제 쌍포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면 근 30% 가까이 벌어진 지지율 격차를 어느 정도 만회할 것이다. 장담컨대 정치공학적으로 300만표는 거저 먹을 수 있다.

이부영을 비롯한 한나라당내 개혁세력은 노무현과 힘을 합쳐 정치개혁 작업에 탄력과 가속도를 붙여야 한다. 그들 개혁세력은 한나라 구단에 잔류해봐야 출장기회조차 잡기 어려운 영원한 벤치워머로 남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지역구도로부터 기득권을 누려운 호남지역 민주당 구동교동계 의원들과 영남지역 구민정계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할 개연성이 크다. 호남의 토호와 영남의 유지가 국회에서 짜고치는 수준 이하의 레슬링 시합에서 국민들이 얻을 것은 없다.

민주당-한나라당 모두 내심으로는 상호 맞트레이드를 통한 전력강화와 선수 라인업 재구성을 절실히 희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양당을 지지하는 당원이나 일반 국민들 역시 매한가지다. 이인제 고문은 그의 정치노선에 상응하게 친정으로 복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역구도에 의지하여 정치적 수혜를 받는 세력들은 내각제 추진 깃발 아래 단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서 JP에게 줄을 서라. 요즘 자민련 너무 썰렁하다.

정책 지향점과 정치노선의 차이에 입각한 조기 정계개편 단행은 정치안정의 대전제이자 생산적 국회운영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퇴영적 지역대결구도에서 미래지향적 정책경쟁구도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될 정치권의 새틀짜기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국민들에게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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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31 [22: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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