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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이데이 - 영남은 이회창을 버렸다
「친구」개봉 1년을 돌아보며ba.info/css.html'><
 
공희준 Cinema Jockey   기사입력  2002/03/30 [03:35]
{IMAGE1_LEFT}작년 3월말 한국영화의 모든 흥행관계기록을 갈아치울 새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항구도시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두 남자의 우정과 의리, 배신과 복수를 다룬 이 영화는 전국관객 850만명 동원이라는 전무후무한 흥행기록을 세우면서 엄청난 물량공세를 앞세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세에 눌려 빈사상태에 신음하던 한국영화가 관객 점유율 50%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룩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국영화 흥행몰이의 견인차 구실을 한 문제의 영화가 곽경택 감독, 유오성 장동건 주연의 「친구」였음은 굳이 말하기조차 새삼스럽다. 「친구」가 영화흥행의 역사를 새로이 작성하며 엄청난 관객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인 데에는, 지나간 과거의 기억에 관한 아련한 노스탤지어와,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추억의 시간을 향한 동경의 열망이 대중의 감성 코드를 길고 깊게 자극한 사실이 주효했다는 것이 평단과 저널의 공통된 시각이다.

「친구」는 삼성경제연구소에 의해 2001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될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날렸다. 「친구」가 개봉된 지 정확히 1년이 되가는 지금, 작품의 무대로 설정되었던 부산이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정치를 통해 2001년에 이어 2002년에도 한국최고의 히트상품을 내놓을 조짐이다. 2002년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역사에 남을 것으로 예감되는 상품은 특이하게도 사람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다름 아닌 노무현이다.

YS의 3당 합당에 뒤이은 문민정권 창출 이래로 영남지역의 일반적 정서는 개혁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여 왔다. 개혁에 대한 영남인의 반감은 보수정당 중에서 상대적 진보성을 내세운 DJ의 집권 이후 그 농도와 강도가 한층 더해졌다. 심각한 주택난으로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와중에 불거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빌라게이트 파동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를 애써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려 드는 대구지역 노년층의 반응은 독기나 오기의 범주를 넘어 일종의 광기에 가깝다.

개혁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맹목적 지지로 한나라당의 철옹성을 이루던 영남지역에 드디어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구멍이 뚫린 곳은 전통적 야도(野都)로서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정권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우리나라 제2의 도시 부산이다. 지역감정에 기대어 부패한 정치구조가 제공하는 기득권을 만끽해온 구정치 세력은 그 구멍을 부랴부랴 메우고자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은 모래포대 하나로 도도한 장강의 물결을 막으려는 것처럼 가망이 없어 보인다.

{IMAGE2_RIGHT}그간 노골적으로 한나라당을 두둔해온 대형 신문기업들이 집계한 결과치까지 포함해서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부산을 비롯한 영남권 남부에서는 민주당 노무현 고문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지지율이 이미 역전되었으며 그 격차 또한 급격히 벌어지고 있음이 객관적 수치로 입증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노고문에 대해 압도적 우세를 점했던 이총재의 지지기반이 서시히 잠식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1960년 대구 2.28 학생운동으로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1979년 부마항쟁으로 유신의 숨통을 조였던 거인 영남이 드디어 오랜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다. 색깔론을 부추기고 지역감정에 불을 붙여 영남이라는 거인을 다시 잠재우려는 음모가 일각에서 획책되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징후가 몇 명 정치분석가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긴 하지만, 수레를 막겠다며 앞발을 들고 일어선 사마귀의 어리석음를 조롱한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가 풍자하듯, 이들의 책략은 실패가 예비된 무모한 허세의 몸짓에 불과하다.

토요일 예정된 경남지역 국민경선에서 우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내딛는 보폭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향해 뚝심 있게 앞으로 전진하는 거인이 걸어간 거리 만큼에서, 한국민들은 우리사회가 특권적 귀족이 지배하는 낡은 정치의 틀로부터 벗어나 국민일반 서민대중이 자신의 미래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개혁적 정치구도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가갔음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조폭을 미화하고 적나라한 살인 장면을 여과 없이 묘사한 「친구」가 폭력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듯, 근거가 불분명한 검증되지 않은 색깔론과 음모론을 유포시켜 깨어난 거인의 관심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음습한 술수 역시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각성을 방해하고 이제 막 싹을 튀우기 시작한 깨끗한 정치를 고사시키려는 은밀한 폭력이라는 의심에서 결코 놓여나지 못할 것이다.

거인을 잠자리로 돌려보내려는 어둠의 세력들의 움직임은 성공하기 어렵다. 거인은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아둔하고 단순한 외눈박이 거인이 아니다. 그 거인은 수백만의 형안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수백만의 영남지역 젊은 네티즌들이 거인의 눈이다. 수백만 눈동자가 반짝이며 생동하는 한 소수의 책사들이 밀실에서 모의하는 대중조작은 포말의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다. 깨어난 거인은 다시 잠들지 않을 것이다. 거인이 잠들지 않는 이상 이 땅의 메인 스트림과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은 영남의 민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이 보여준 선이 굵은 정치의 길 대신 구태의연한 색깔론과 음모론이 지탱하는 가늘고 긴 정치노선을 선택한 한 정치인의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당혹스런 초상을 대하며 어린 시절 동네 앞을 흐르던 금강에 반사된 영롱한 햇빛이 수 놓아진 유년의 기억과, 계룡산에 소풍간 형제자매의 빛바랜 사진을 떠올린다. 이런 멜랑콜리한 감정의 되새김은 영남인들에 대한 시샘과 부러움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친구」의 대박을 뒷받침한 하드웨어적 토대는 멀티플렉스와 복합상영관의 폭발적 증가이며 노무현 돌풍의 진원지가 수천만 네티즌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명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인터넷의 대중화였다고, 냉정한 마음을 가지고 실증적인 분석을 차분하게 진행하기에는 동향의 유력 대선주자가 연출하는 정치적 곡예의 몰역사성이 너무나 나를 심란하게 한다. 아직은 그가 바른 역사의 흐름으로 동참할 수 있는 길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믿기에 「친구」의 대사 한 토막을 들려주는 것으로 결론에 갈음하련다.

“고마해라, 마니 묵었다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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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30 [03:3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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