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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 질레트와 친일파 윤치호
선교사에서 한국야구의 아버지, 항일운동을 한 길례태와 친일파 후손들
 
이기현
프로야구 시즌이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야구를 즐기면서도 한국 근대 야구를 도입한 사람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근대 야구 초창기 모습을 담은 영화 'YMCA 야구단'. 야구단을 통해 개화기, 일제 강점기 상황을 재현했다.     © 김현석 필름
영화배우 송강호가 주연을 한 영화 YMCA야구단이 있다. 구한말부터 일제초창기 당시 한국 최강의 야구팀인 황성YMCA 야구단과 관련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간 영화이다. 바로 이 야구를 처음 한국에 들여온 사람이 선교사 필립 질레트(1874~1939)이다.
 
질레트는 대학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예일대학 YMCA부목사로 있던 중 조선 기독교 인사들이 YMCA 세계본부에 기독교 선교를 위해 건물설립이 시급하다는 요청을 받자 회관건립을 위한 간사로 한국에 들어온다. 1901년 한국에 온 질레트는 한국말과 한국 정서를 익히면서 '길례태'라는 한국 이름도 갖게 된다.
 
이러던 중 1902년 평양 하령회(요즘의 교회 여름 수련회 정도에 해당함)에서 다른 선교사들 및 신도들과 가벼운 캐치볼을 하였고, 이를 보던 숭실학교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고 한다(조선야구사 1930년, 이길용). 이것이 최초의 한국 야구의 기원이라고 하지만 정식 경기로 한다면 1905년 질레트가 야구장비를 요청하여 들어온 것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첫 시합은 1906년3월15일 황성YMCA와 덕어학교의 경기로 알려져 있다.

▲1911년 평양 원정에 나선 황성YMCA 선수단 모습. 아래 맨 오른쪽이 질레트이다. © 사진출처 폭탄뉴스
 
또한 질레트는 1907년 황성YMCA 청년회원들에게 농구도 가르쳤다. 게다가 처음으로 한국에 복싱글러브와 스케이트화를 처음 가져온 사람이기도 하다. 질레트는 한국 야구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한국 근대 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질레트는 단순한 선교사와 한국 야구의 아버지로만 머물게 하지 못하게 하였다.
 
1910년 12월 28일 압록강 철교 준공 축하식에 참석하고 귀로에 선천에 들린 조선총독을 기독교인들이 암살하려 한 음모가 발각되었다는 해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총독부는 윤치호, 양기탁, 유동열, 임치정 등 157명이나 체포를 하였다. 일제 초반 국내 항일운동의 뿌리를 미리 잘라버리기 위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05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피소된 사람들 중에 장로교인 96명, 감리교인 6명 등, 특히 이 사건에는 기독교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이 많았다. 이는 일제가 합방 이전부터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중심 축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고 특히 미국과의 연결고리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때 질레트는 이 사건의 전모를 기록한 보고서를 국제 기독교 선교 협회로 보내게 되는데 이 문서가 중국 <차이나프레스>에 공개가 된다. 이에 조선 총독부는 YMCA에 질레트를 파면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YMCA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으나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되자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일제는 국제여론을 의식하여 사표를 수리하지 못하게 하였고, 대신 상해 YMCA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하게 한 이후 돌아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후 일제는 고마쓰 외사국장을 파견, 저항운동을 포기한다면 돌아와 한국 YMCA 총무를 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했으나 질레트는 "죄없는 윤치호를 석방하라. 그러면 돌아갈 의향이 있다"고 응수를 했다. 결국 질레트는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사망한다.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105인 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중요 인물이었던 윤치호는 1915년 <매일신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우리 조선민족으로서는 어디까지나 일본을 믿고 피아의 구별이 없어질 때까지 힘쓸 필요가 있는 줄로 생각”한다는 등 아버지 윤웅렬의 뒤를 이어 남작의 지위를 물려받고 황국신민화에 적극 협력하였고, 1928년 제9회 전조선야구대회에 시구자로 나선 사진이 한국야구위원회가 발간한 ‘한국야구사’에 실려 있다.
 
3월16일 일본 시네마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관련한 조례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최근 한승조, 지만원 등의 망언이 있었다. 이들이 한국 야구의 아버지로까지 불리우는 질레트의 일생에서 이들은 진정한 보수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오히려 1928년 야구대회에서 시구를 했던 윤치호의 친일행적만을 배운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기사입력: 2005/04/02 [14:1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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