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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 대통령, 한글은 소리나는대로 표기하라?
[한글 지키고 빛내기15] 1954년 정부가 발표한 <한글 간이화안>이 일으킨 한글파동
 
리대로   기사입력  2021/02/10 [00:54]

한글은 세종이 만들고 144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성종 때까지 50여 년은 임금(나라)이 나서서 한글을 알리고 쓰게 하려고 힘썼지만 그 뒤 연산군 때부터는 찬밥 신세였다. 그렇게 고종 때까지 450여 년을 부녀자와 깨어있는 이들을 통해서 목숨을 이어오다가 1894년 고종 칙령1호에서 ‘언문’이라 부르던 우리 글자를 ‘국문(나라글자)’이라면서 공문서에 쓰자는 ‘국문식’이란 법을 발표했다. 그리고 주시경, 지석영들이 앞장서서 우리 글자를 널리 쓰게 해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주시경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뒤에도 우리 글자에 ‘한글’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 부르면서 한글을 갈고 닦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그런데 1914년  주시경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39살에 갑자기 숨을 거두었고 그 제자들이 앞장서서 만든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에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고 표준말도 정했다. 그래서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6년 미국 군정 때부터 한글맞춤법과 표준말을 바탕삼아 한글로 공문서를 적고 배움 책도 만든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면서 공문서는 한글로 쓴다는 ‘한글전용법’을 제정하고 한글나라로 가는 첫발을 내디딘다. 그런데 1954년 7월 정부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어렵다고 대한제국 때 쓰던 것처럼 제멋대로 글을 쓰자는 <한글 간이화안>을 발표하니 한글맞춤법에 맞추어 교과서와 우리말사전을 만들고, 신문을 만들던 말글살이가 몹시 어지럽고 흔들리게 되었다. 이른바 한글파동이었다.

 

▲ 1896년 독립신문에 ‘값을’은 ‘갑슬’로, 1887년 성경에 ‘낳고’는 ‘낫코’처럼 소리대로 적었다.     © 리대로

 

리승만 대통령은 한글학자 주시경과 배재학당에서 함께 공부하고 독립협회 활동을 했으며 고종 때 가장 처음 한글로 만든 일간 신문인 매일신문을 창간한 사람으로서 한글을 살려서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글맞춤법을 만들기 전인 대한제국 때 성경처럼 소리가 나는 대로 적은 글에 길들었다. 그리고 바로 미국으로 망명했기에 한글맞춤법을 잘 몰랐고 불편했다. 그래서 한글맞춤법을 정하기 전 말글살이 방식으로 되돌리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강점기인 1933년에 조선어학회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을 때에도 박승빈 같은 이는 조선어학연구회라는 조선어학회와 이름도 비슷한 모임까지 만들고 세차게 반대했으나 많은 토론을 거쳐서 문필가와 신문이 한글맞춤법을 찬성했고 국민이 따랐다.

 

그런데 리승만 대통령이 갑자기 대한제국 때 성경이나 독립신문이 ‘낳다’를 ‘낫타’로, ‘값을’은 ‘갑슬’로, “야곱을 낳고”를 “야곱을 낫코”로 적던 방식으로 말글살이를 하자는 것이었다. 맞춤법을 정할 때에 박승빈은 ‘먹으니’를 ‘머그니’로, ‘먹히다’는 ‘머키다’로, “없으니, 없고”는 “ 업스니, 업꼬”로 적자고 했던 것과 같았다. 어쩌면 리승만 대통령이 한글맞춤법을 몰라서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일제 때부터 한글맞춤법을 반대하면 박승빈 같은 무리가 보이지 않게 리승만 대통령을 부추겨서 일어난 한글파동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도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자는 국어학자들 모임에서 그런 박승빈을 기리며 “박승빈 국어학상”이란 것을 만들었는데 그런 흐름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이다.

 

리승만 대통령이 1949년 한글날에 한글맞춤법이 불편하니 고치자고 하니 정부 안에서도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본 경찰에 끌려갔던 안호상, 백낙준, 김법린 문교부장광은 반대했다. 1954년 4월 그 다음 문교장관이 된 이선근이 그해 7월에 ‘한글간이화안’을 발표한다. 그러나 한글학회는 말할 것이 없고 신문과 학자들이 거세게 반대하니 1955년 9월에 리승만 대통령은 “반대하는 국민이 많으니 없던 일로 한다.”고 발표했다. 그 때 한글학회가 우리말 큰 사전을 만들고 있었는데 정부도 돈이 없이 도와주지 못해서 미국 록펠러재단이 종이를 원조해주어 사전을 만들었는데 그 사전까지 물거품이 될 판이고 국민이 끈질기게 반대해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우리말 독립이 쉬운 것이 아님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 한글맞춤법에 따라서 쓴 교과서의 ‘바둑이’는 ‘바두기’로, ‘먹었다.’는 ‘머거따’로 바꾸어야 하고, 수십 년 동안 엄청난 노력과 돈을 들여서 만든 우리말 큰 사전도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 리대로

 

그래도 이 일은 1960년대에 박정희 군사정부가 일본처럼 한자혼용을 하려다가 국민이 반대하니 한글전용 정책으로 바꾼 것과 함께 대통령 결단으로 정책이 바로 간 좋은 본보기다. 사실 한글이 태어나고 500년이 지나도록 한글을 제대로 쓰지 않았고, 한글을 쓰기 편리하게 갈고 닦지도 않았으며 우리말을 적기 좋게 말법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말본을 만들고 나라 글자로 쓰려고 하는데 이런 말썽이 일어난 것이다. 요즘도 수 천 년 동안 길든 한자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로부터 해방되어야 우리말이 살고 한글이 빛나는데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는 이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못살게 굴고 있다. 이제 일부러라도 한자는 쓰지 말고 우리 토박이말을 살려서 쓸 정책을 강력하게 펴고 국민들도 스스로 그런 노력을 해야겠다.

 

그래야 우리 말글과 얼이 살고 빛난다. 우리 얼과 말글이 살고 빛나야 튼튼한 나라가 되어 힘센 나라에 짓밟히지 않고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다. 그럴 때에 앞서가는 나라가 되고 우리 글꽃이 활짝 펴서 노벨상을 타는 사람도 많이 나오고 우리 문화가 온 누리에 빛날 것이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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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10 [00: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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