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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강점기에 우리말로 노래 부른 애국지사들
[한글 살리고 빛내기9] 제 겨레 말글로 글 쓰는 것은 겨레 지키는 일
 
리대로   기사입력  2020/08/29 [22:49]

 한 겨레의 말은 그 겨레의 얼이고 삶이다. 그 겨레말이 죽고 사라지면 그 겨레도 죽고 사라진다. 청나라를 세우고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떵떵거리던 만주족은 그 겨레 말글이 사라지니 그 겨레도 사라졌다. 그런데 이스라엘 겨레는 2000여 년 동안 나라를 잃고 세계 여러 나라로 떠돌며 살았지만 제 겨레말을 지켰기에 그 겨레는 사라지지 않았고 다시 제 겨레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일본은 1910년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우리말을 못 쓰게 하면서 우리 성씨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일이 있었다. 우리 겨레를 없애고 일본 겨레로 만들려고 한 짓이다. 그런데 그 때에 우리 말글로 아름다운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른 이들이 있었다.

 

바로 한용운, 이육사, 이상화, 심훈, 김소월, 방정환, 이은상, 윤동주와 더 많은 이들이 우리 말글로 글을 썼다. 그 때 똑똑하고 잘 났다는 이들은 일본 말글로 말글살이를 허거나 거의 모두 일본 말투에다가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글을 썼다. 그러나 이 분들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 말글을 지키고 빛내는 것이 겨레 독립운동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분들은 정치 무장독립운동을 한 분들 못지않게 우리 겨레 얼이 살아있는 우리 얼과 말글 독립 운동가들이었다. 그 때 시인 한용운은 우리말로 저항 시를 쓰면서 일본 총독부가 있는 남쪽을 바로보기 싫다고 성북동 제 집을 북향으로 지을 정도로 철저하게 일본에 맞섰지만 이광수 같은 소설가는 우리 말글로 좋은 소설을 쓰고 독립운동도 하다가 변절해 일본 앞잡이가 되기도 했다.

 

▲ 왼쪽부터 일제 때에 우리 말글로 글을 쓴 한용운, 심훈, 김소월, 윤극영(동요 작곡가), 이상화   ©리대로

 

일본 강점기에 우리 말글로 좋은 글을 쓰고 노래한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그 분들 가운데서도 ‘어린이’란 새 우리말을 만들고 우리 말글로 동시를 쓴 방정환과 그 뜻벗들, 그 동시를 동요로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우리 노래를 부르게 작곡한 윤극영, 그리고 우리 말글로 좋은 우리 시조를 짓고 한글을 살려서 쓰려고 애쓴 이은상 이야기를 좀 더 드러내 적으련다. 이 두 사람의 글과 그 글을 노래로 만들어 우리 겨레가 즐겨 부른 것은 바로 우리 말글을 지키고 독립할 수 있는 밑거름이었으며 남다른 애국운동이었다. 또한 겨레 앞날을 내다보고 먼저 깨달은 것을 실천한 매우 중대한 일이었는데 그만큼 인정을 받지 못해서 안타깝다. 

 

‘방정환(1899년 – 1931년)은 ’어린이‘란 새 우리 낱말을 만들고 동시를 썼다. ‘어린이’란 말은 “젊은이, 늙은이”란 말처럼 어린 애들을 부르는 말로서 참 잘 만든 말이다. 옛날은 말할 것이 없고 오늘날에도 학자나 언론인, 문학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이 만든 낱말을 그대로 갔다 쓰고 우리 새 낱말을 잘 만들 줄 모르며, 만들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런데 방정환이 일본 강점기에 우리말로 새 낱말을 만들어 썼다는 것은 아주 뜻 있는 일이고 따라 오늘날 우리가 따라서 할 일이다. 그는 일본에 유학하던 1923년 3월 16일 동경에서 강영호, 손진태(와세다대학), 고한승(니혼대학), 정순철, 조준기(이상 도요대학), 진장섭(도쿄고등사범학교), 정병기 들과 함께 어린이문화단체인 ‘색동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3월 20일에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또 이들과 함께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어린이날’ 행사를 처음 했다.

 

방정환은 우리말로 만든 동시를 우리 어린이들이 노래로 부르게 했다. 그는 동경 유학할 때에 윤극영에게 “나라도 빼앗기고 말도 뺏겼는데, 왜 노래마저 일본 노래를 부르지? 우리 고유한 노래가 없잖아. 그래, 우리노래가 없다. 그것이 문제야. 우리는 3·1운동으로 뭔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하고 실패만 했다.”라면서 우리 동시를 노래로 만들자고 했다. 그리고 《어린이》 잡지에 자신의 동요만이 아니라, 유지영의 〈고드름〉(1924), 윤극영의 〈반달〉(1924)을 비롯하여 많은 우리 동요와 어린이 잡지 동시 공모에서 뽑힌  윤석중의 〈오뚜기〉(1925), 서덕출의 〈봄편지〉(1925), 이원수의 〈고향의 봄(1926)〉, 윤복진의 〈바닷가에서〉(1926) 들도 실렸는데 그 때 2~30대 젊은이들이고 10대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방정환이 이런 일을 한 것은 어린이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우리 어린이를 잘 키워야 우리 겨레도 일어나고 독립을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고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 우리 얼과 겨레를 지키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3.1운동 민족 대표인 손병희의 사위로서 남다른 애국심을 가졌으며 우리말로 동시와 동요를 만든 문화 독립 운동가다. 그는 우리말로 지은 동시를 ‘어린이’잡지에 실었고 다른 뜻벗들의 동시도 실었다. 그리고 윤극영에게 그 동시를 동요로 만들게 하고 어린이들이 우리 동요를 부르게 했다. 그리고 어린이 잡지에 우리말에 관한 글(조선어학회 권덕규 글 들들)도 실어서 어린이들이 저절로 우리 말글을 사랑하고 익히게 했다.

 

1923년 5월 1일 첫 어린이날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글을 보자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이의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싹(어린이)을 위하는 나무는 잘 커가고 싹을 짓밟는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습니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같이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라고 쓴 글은 일본말투가 아니고 진짜 우리 얼이 담긴 쉬운 우리말이다. 그리고 그 때에 우리말로 쓴 동시와 동요는 지금 읽어도 진한 감동을 준다. 방정환이 젊은이들을 모아 어린이들이 부를 노래를 만들고 어린이날을 만든 일은 매우 중대한 독립운동이었고 고마운 일이었다.

 

▲ 왼쪽부터 일제 때 어린이 잡지 겉장, 소파방정환이 태어난 곳을 알리는 세종문화회관 뒤 로얄빌딩 앞에 있는 알림돌,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방정환 무덤 빗돌, 어린이날 알림글이다.     © 리대로

 

다음으로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을 우리글자인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실천한 이은상을 보자. 나는 오래 전에 1933년 동아일보 한글날 특집호에서 좀 남다른 것은 보았다. 여러 한글 운동가와 한글학자들이 우리 말글 관련 글을 썼는데 모두 제 이름을 한자로 쓰고 글도 한자혼용 글이었다. 그런데 이은상만은 제 이름도 글도 한글로만 쓴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 글을 다시 읽어보고 이은상이 그 때 벌써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쓰는 말글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걸 실천한 사람임을 알았다. 1933년 한글날 특집에 쓴 [심메만이의 변말]이라는 글이었다. 1932년 그가 낸 시조집에 담은 글들도 ‘가고파’처럼 우리 말글로 쓴 글이다.

 

그는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일제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고 나온 다음 해 1943년에 일제에 불온 사상범으로 몰려 다시 전남 광양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광복으로 풀려났다. 그런데 이번에 [심메만이의 변말]이란 글을 보고 그가 우리말을 찾아 한글로 써서 우리말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려고 애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우리말 사랑, 한글 사랑 정신이 광복 뒤에 순 한글로 ‘호남신문’도 창간하게 했고, 이승만, 박정희 정부에 한문으로 된 책들을 국역하고 한글전용 정책을 펴도록 노력했으며 그 스스로 한문으로 된 충무공 이순신 의 난중일기를 국역했는데 오히려 독재에 빌붙어 자기 이익만 챙긴 이로 비난받고 있어 답답하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그가 동아일보에 쓴 우리 말글로 쓴 “심메만이의 변말”이란 글을 소개한다. 되도록 원문 그대로이고 몇 마디 오늘날 말로 바꾸었다. 그런데 셈틀 화면으로 보려니 뚜렷하지 않은 글자도 있어 보이는 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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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메만이의 변말”
                                  이은상

 

  한글을 지어 펴신 지 四百八十七년 기념일을 당하여 나는 무엇보담도 조선말, 조선글이 남은 몰라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생각하여 말지 않는다. 영화안락은 그 한 몸에 있고, 생명이라도 그 다하는 날이 있는 것이나 말과 글의 위대하고 영원함은 영화보담도 안락보담도 또 생명보담도 우리 온 민족이 가지고 복을 누리는 고작(가장)크고 고작높고 고작값있는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므로 온갖 것의 공부보담도 말공부, 글공부란 것이 더 큰 공부인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에 우리 조선말 공붓거리로 심메만이들의 변말([特殊語) 百여마디를 모아 발표하는 것인데 이 심메만이들의 변말을 조사하기 위하여 평안도 강계(江界)로 가는 학자들은 있는 줄 기억하지마는 강원도로 간 이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강원도나 평안도나 심메만이의 변말은 같음을 보거니와 내가 여기 발표하는 것은 이번 설악산(雪岳山) 가는 길에 그 산중에 사는 심메민이들의 변말을 조사해본 것이다. 그 말 하나하나에 대한 고증(考證) 같은 것을 아울러 쓰지는 못하거니와 그 중에는 우리가 아는 옛말(古語) 그대로인 것도 있고 일본말의 어원(語源)이 우리말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또 더러는 한문문자가 우리말이 된 것도 있어 여러 가지 공부해볼만한 거리가 됨은 물론이다. 아래에 그 어휘만을 보통말과 비겨 써놓는바 말공부 하는 이의 참고가 된다하면 다행이겠다.

 

사람 [만이], 여자[개장만이],  아이[소장만이],  포수[퇴기만이],  목수[똑똑이만이], 노인[어인], 집[모딤], 이사 移徙 [전산],  머리 髮 [주비리],  상투[쪼지비],  눈 眼 [공자],  손 手 [설피], 배 腹[흡배],  배가고프다[흡배가 찌봇어진다], 다리 脚[가쟁이],  음경 [陰莖[수리대], 음문
 陰門[멀?컨이], 쌀[모래],  좁쌀[잔모래],  밥[무리미],  떡[시도기],  물[수움],  곡식[웅케] ,과일[상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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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서 이은상은 ‘변말([特殊語)’, '옛말(古語)'처럼 우리 토박이말을 쓰고 ( )에 한자로 한자말을 썼다. 그리고 숫자를 한자로 썼는데 세로로 쓴 글에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 힘들어서 그런 거로 보인다. 이렇게 한 것에서 그가 얼마나 쉬운 우리말을 한글로 쓰려고 애썼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일부러 심메만이들이 쓰는 토박이말로 된 특수어를 조사하고 알리려고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말을 지키고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쓰는 말글살이를 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고 뚜렷했기에 우리말로 시조를 짓고 조선어학회 활동을 하다가 옥살이도 하고 광복 뒤에 한글로만 만든 호남신문도 창간했다. 그리고 되찾은 우리나라 정부에 어떻게 해서라도 한글전용정책을 펴게 하려고 애써서 그 성과를 냈다.

 

▲ 왼쪽은 동아일보 1933년 한글날 특집 자료. 오른쪽은 마산 돌섬에 있는 ‘가고파’ 노래 구절     © 리대로

 

훌륭한 지도자는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또 아무리 훌륭한 도구도 갈고 닦아서 쓰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고 빛나지 않는다. 일제 때 우리 말글로 좋은 시를 쓰고 그 시를 노래로 만든 일, 앞날의 이 나라 주인이 될 어린이를 잘 키워야 한다고 깨닫고 실천한 이들은 선각자요 선구자였으며 참된 민족 지도자였다. 그리고 모두 문화독립 독립 운동가들이었다. 일제 때에도 이 분들은 우리 어린이에게 우리말과 얼을 심어주고 튼튼하고 밝게 키우려고 애썼는데 오늘날 정부와 학자와 언론인들은 어린이들에게 한자와 외국말이나 강요하고 있으니 슬프고 부끄럽다. 이제라도 이 분들이 이루려던 꿈과 뜻을 이어받아 빛내고 이루자. 이 분들 숭고한 정신을 되살린 때에 우리 자주문화가 꽃피고 노벨문학상을 타는 사람도 많이 나올 것이다.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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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8/29 [22:4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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