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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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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지 않는 자여,음식노동의 가치 아는가?
[정문순 칼럼] 여성차별 막는 밥 존중, 국정과제 포함해야 세상 바뀌어져
 
정문순

남자: "전 조미료 맛을 구분 못하겠어요. 그걸 아는 사람들이 신기해요."
 
: "집에 가서, 다시다 봉지 있으면 물에 풀어서 먹어보세요.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나옵니다. 라면 수프 맛과 비슷해요." 
 
남자: "조미료가 나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 "화학조미료 논쟁이 안 끝나긴 했죠. 그걸 떠나서 무, 멸치, 다시마를 종일 달여야 나오는 맛을 화학조미료 한 숟갈로 해결된다면 음식이 너무 무성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죠." 
 
남자: "저는 음식을 딱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요. 저는 맛이 있니 없니, 재료가 뭐가 들어갔나 하는 건 안 궁금합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똑같은 음식입니다." 
 
어느 날 지인과 밥집에서 동태찜을 먹으며 나눈 대화입니다. 동태 원산지는 어디일까, 고춧가루는 국산일까, 화학조미료는 얼마나 들어갔을까 생각하며 젓가락질을 하던 저와,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똑같은 음식이라는 사람에게 동태찜은 전혀 다른 음식이었습니다. 이런 사람한테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는 노력은 무의미하거나 사치에 가까워 보일 것입니다.
 
제 지인처럼 음식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대하지 않는 이들을 주변에서 더러 보았습니다. 경남도지사 시절 무상급식을 돌연 중단시키면서 학교가 밥 먹으러 가는 데냐?”라고 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일갈도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우리 삶에서 먹는 것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음식이라는 것을 대단찮게 생각하는 태도는 음식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낳기 마련입니다
   
묵을 드시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시는지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서 미끄러져 깨져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묵집에서, 장석남
 
시인은 묵의 서늘함, 매끄러움, 떫고 씁쓸한 뒷맛, 쉽게 깨지는 위태로운 성질에서 곧장 삶을 유추해 냅니다. 묵은 이 시에서 주인공이 되지 못합니다. 묵은 시인의 옛 사랑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시인이 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았거나 묵을 쑤어봤다면 묵을 좀 더 대접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묵을 보면 탱탱한 묵을 쑤겠노라고 멋모르고 덤볐던 만용이 떠오릅니다. 묵가루 한 봉지를 몽땅 물에 풀어 두어 시간 넘게 끓이며 저어보았지만 팔을 들 힘이 없어질 지경이 되면서 제 어리석음을 뉘우쳤습니다. 결국 얻은 것이라고는 손만 대도 부서지는 흉물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잘게 썰어 말려 건조묵을 만들어야 했죠.
 
저는 묵을 볼 때마다 묵을 만들던 어려움이 생각나지 묵에서 다른 사유로 생각이 쉽게 옮겨가지 않습니다. 미끌거리고 탱탱하고 부서지기 쉬움은 저한테는 옛 사랑의 추억이 아니라 묵 만들기의 힘겨움을 상징하는 낱말들일 뿐입니다. 시인이 요리를 해봤거나, 음식에 관심이 있거나, 음식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식재료에서 생각이 좀 더 머물렀겠지요.
 

▲ 메밀묵채, 농촌진흥청 제공     ©정문순

 

열매나 곡식을 채집하고 말리고 빻고 불 위에서 쑤기까지 묵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는 여성의 노동력이 투입되는 그림이 떠올려집니다. 공장식 제조가 아닌 한, 묵 만들기는 여성노동의 상징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여성의 고된 노동이 투입된 음식이 남자 시인의 연애담을 떠올리게 해주는 매개체의 역할로 취급된다면 좀 아쉽다는 것이지요. 또 음식을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음식과 단독으로 마주 하는 상황에도 적응하기 힘들어 합니다.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 <거룩한 식사>
 
나이 든 남자에게 혼자 밥을 먹는 상황은 낯설다고 시인은 추정합니다. “양푼의 식은 밥일망정 누군가와 함께 먹는 것만 진정한 밥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밥은 남자의 어머니가 해주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남자에게 밥이란 여자가 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어머니는 없고 아내도 없는 듯한 남자가 혼자서 밥을 사먹어야 하는 상황은 당황스럽고 낯설 뿐입니다. 여자가 해준 밥만 제대로 된 밥으로 알고 있는 남자에게 혼자 먹는 밥은 밥이라는 생각은 들어서지 않으며 혼밥은 되레 여자가 먹여준 밥이 진짜 밥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할 뿐입니다.
 
2연에서 시인은 혼자 먹는 밥, 즉 여성의 돌봄이 사라진 밥에 대해 엄청난 연민을 쏟아냅니다. 이것은 혼자 밥 먹기를 좋게 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식사로서 결격사유가 큰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자 먹는 밥에 익숙한 저로서는 그게 어찌 이리 눈물겨운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혼자 먹는 라면이라도 얼마든지 맛있을 수 있고, 여럿이 함께 먹는 진수성찬이라도 불편할 수 있습니다.  나이든 남자의 밥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주장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석남 시에서 음식이 매개하는 추억은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황지우 시에서 음식은 설움과 눈물겨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두 시 모두 밥 짓는 노동을 하지 않고 대접만 받고 살아온 남자들이 음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음식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음식에 대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음식의 가치를 제대로 모른다고 해서 꼭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다 똑같다는 생각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음식을 아무렇게나 또는 편협하게 생각하는 태도의 근저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데 주목합니다. 음식 노동을 전담하다시피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억측일까요. 이언주 국회의원은 학교 급식소 여성노동자들을 밥하는 동네 아줌마들이라고 비아냥댄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밝혀준 것은, 음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여성 차별과 궁극적으로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음식 사유가 빈곤한 것은 결코 대수롭지 않게 볼 일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 성차별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 때문이지요.
 
여성조차 여성 노동을 무시하는 세상이니, 음식에 서린 여성 노동의 가치가 대접받거나 남자가 혼자 먹는 밥이 서럽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음식에 대한 존중이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 들어간다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조금은 쉬워질 것입니다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시민기자단 블로그에 게재한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7/07/30 [15:1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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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대자보> 편집위원이며,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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