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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교육에서 소외된 아빠, 변화는 언제쯤
[옛날 교과서 읽기] '밥상 무임승차자' 아빠에게 자식 교육을 허하라
 
정문순
▲ 요즘 캔 냉이, 아직은 어리다.     © 정문순


31000요일 맑음

 
저녁상에 냉잇국이 나왔습니다. 냉이를 넣은 된장국 냄새가 구수하였습니다.
봄 국이야. 많이 먹어.”
나는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 난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누나! 우리, 내일 냉이 캐러 가.”
동생이 말하니까, 아버지께서
경식이도 냉이 맛을 아는가보다.”
하며 웃으셨습니다.
오늘 저녁은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경숙의 일기)

 

▲ 자식교육이나 대화에서 소외된 아빠.     © 문교부 시절 초등학교 3-1 국어교과서

 
-초등학교 3-1 국어교과서, 문교부 제2차 교육과정(1974~1983), 맞춤법은 현행 규정으로 바꿈. 
  
나는 봄을 알리는 냉이의 향긋한 맛을 안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생김새도 최근에야 엉뚱한 풀을 여러 차례 캐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겨우 다른 나물과 구별할 수 있게 됐다. 평생의 입맛이 좌우되는 어린 시절 집에서 냉이를 먹어본 기억이 내게는 없다. 동요 가사에서 달래, 냉이, 씀바귀로 묶여 다니는 봄나물 3종 세트에서 친정집 밥상에 그나마 더러 올랐던 것은 달래가 유일하다. 어머니가 냉이를 즐기지 않아서 그랬을지 모른다.
 
<경숙의 일기>에서 경숙이는 냉잇국이 구수하다고 했지만 구수한 것은 된장이지 냉이 맛이 아니다. 냉이 맛은 향기로우면서도 시원하고 달다. 그러나 이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냉이 된장국을 처음 먹어봤을 때 나는 그 시원한 감칠맛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맛을 똑똑히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냉이 맛은 신비롭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 냉이 맛에 경숙이와 경식이도 홀딱 반했다. 요즘 아이들은 냉이가 먹는 풀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배웠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아이들은 그랬다. 냉이 맛을 몰랐던 내가 오히려 특이한 축에 들었을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날마다 일기 쓰는 일은 고역이지만, 냉이가 밥상을 훈훈하게 만든 날 만큼은 경숙이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경숙의 일기에서 주인공은 동생이다. 경숙이는 그날 하루 있었던 일과 자신의 느낌을 적는 일기의 관습을 떠나 냉이 맛을 알게 된 동생 경식이에게 집중하고 있다.
 
경식이가 냉이를 좋아하도록 돕는 것이 경숙의 역할이다. 경숙이는 냉이를 좋아하게 된 동생이 기특하다는 깨달음을 일기장에 옮겨 놓았다. 경숙의 일기를 통해 자신의 일기에서조차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1970년대 여자 어린이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글은 자식 교육에서 아버지가 하는 역할도 생각하도록 이끄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부모에게 양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손아래 남동생의 양육자 역할에 참여하는 것이 가족 안에서 경숙의 위치인데,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이니 경숙이도 그 나이쯤으로 설정됐을 것이다. 경숙이는 냉이 맛이 생소한 남동생에게 봄나물로서 냉이의 정보, 건강에 좋은 점 등을 짤막하나마 알기 쉽게 가르쳐준다. 이럴 때 경숙이는 누이라기보다 유사어머니에 가깝다.
 
그러자 베테랑 양육자로서 어머니는 어설픈 양육자인 경숙이가 놓친 정보를 바로잡아 준다. 어머니와, 동생보다 고작 몇 살 더 먹었을 경숙이는 비중이 다를망정 자식이자 동기의 양육과 교육에 함께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학습자가 교사의 의도대로 학습이 된 상태를 행동이라고 한다. 경식이는 냉이 나물을 알려준 누나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잘 습득하여 냉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내일 당장 냉이를 캐러가자고 조르는 학습 행동을 보인다. 학습목표 100% 달성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 막판에 끼어들어 물길을 바꾸는 걸림돌 역할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다. 냉이 밥상에서 아버지는 아내와 딸이 하고 있는 공동 육아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 교육에서 한 귀퉁이라도 차지하고 싶었다면 다른 말이 입에서 나왔을 것이다. 냉이를 캐고 싶어하는 경식이의 말을 이어받아 자신도 함께 가자고 하든지, 아직은 날이 추우니 좀 더 따뜻해질 때 기다려야 한다고 하든지, 아니면 어느 곳에 냉이가 많이 자라는지 등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역할은 아들의 미각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하는 것밖에는 없다. 동기간인 어린 딸까지 가세하여 아들 돌봄에 참여하는데 반해 아버지는 기껏해야 아들의 성장 정보를 얻는 데 그쳤으니, 자식을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신이 교육을 받는 학습자가 된 셈이다. 밥상에서도 자식 교육에서 배제된 아버지라면 다른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자식 교육을 아내가 전담하게 할 뿐 온 가족이 하루 중 드물게 모이는 저녁 밥상에서도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아버지, 저녁 밥 시간은 아내가 차린 밥으로 다음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거나 자식이 얼마나 잘 크고 있는지 깨달음을 얻는 의미에 국한된 아버지의 모습은, 40여년 전에는 교과서의 경식이 아버지한테만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자신만한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었을 경식이는 한 세대 이전 자신의 아버지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자식의 얼굴을 볼 새도 없이 돈 버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아니면 자식 교육은 여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손을 놓아 버리는 아버지 모습은 이 시대에는 낯설어졌는가.
 
세월이 흘러도 밥상에 무임승차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면 한 세대 이전 교과서는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나이든 어른들은 요즘 냉이가 옛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좀처럼 시간을 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어떤 단단한 고질은 자연의 변화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막강한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7/02/27 [10:2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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