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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앞에 개신교인이라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류상태의 종교산책] 프란치스코 교황님, 전 세계의 양심이 되어 주십시오
 
류상태   기사입력  2014/08/16 [12:12]

겸손한 신앙과 삶을 추구하는 가톨릭 사제와 주교 가운데는 기어코 '교황'이라는 말보다 '교종'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다. 그분들이 가톨릭 교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까지 굳이 '교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황제'라는 의미의 권력형 용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교황이라는 단어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교종이 적합한 표현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광화문 시복식이 한창 진행 중인 시간이다), 나는 그분을 기꺼이 교황이라고 부르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권력을 기꺼이 내려놓음으로 지상 최고의 권위를 얻은 지구나라의 정신적 황제, 그분의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그리스도교라는 교회의 지도자, 그것도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교회조직체의 수장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다니...


누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없다고 했는가? 주님은 자신의 대리자를 통해 이렇게 기쁨과 소망 가운데 하늘 권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우리 세상으로 다시 오신 것을... 아,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럽다. 그리고 그와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자랑스럽다.


1. 오랜만에 기독교인으로서 긍지를 갖다


교황은 방한 첫날부터 기독교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어린아이와 상처받은 이에게 먼저 다가가고 싶어 하는 (실제로 제일 먼저 다가가 인사를 나눈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분의 선한 얼굴을 보면 꼭 성서의 예수님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분에게서 언제나 부드러운 모습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에게는 천사처럼 환하고 선한 얼굴이지만, 불의를 질타하는 데는 단호하다. (성서의 예수님 그대로가 아닌가?) 불과 이틀이 지난 이번 방한에서도 교황은 잔잔한 미소 가운데 서슬 퍼런 말씀들을 남겼다.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대전 미사에서)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유혹에 빠지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어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어 사목자들이 기업의 능률과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취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14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주교단 만남 연설에서, 이상 2014년 8월 16일자 한겨레신문)


교황의 주옥같은 말씀들은 평화를 염원하고 정의세계 구현을 간절히 바라는 전 세계 신도들과 지구마을 이웃들의 마음을 일찌감치 빼앗았다. 다음은 취임한지 1년 반도 안 된 교황이 그동안 교회와 신도와 이웃들에게, 그리고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할 수도 있는 (무언가) '가진 자들'에게 던진 메시지들이다.


"마피아, 당신들을 파문합니다."
"거리로 나가십시오, 교회가 있을 자리는 그곳입니다."
"불평등과 맞서 싸우십시오. 교회가 불평등에 무감각하면 빈부격차를 키우게 됩니다."
"교회는 가난을 재생산하고 불평을 키우는 사회구조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를 회피하고 무시하면 사회에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선을 행한다면 천국에서 함께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남을 개종시키려 드는 것은 실로 허황된 짓입니다."
"가난한 자는 힘든 일을 하면서 박해를 받는데, 부자는 정의를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갈채를 받습니다."
"과거엔 유리잔이 차면 흘러넘쳐 가난한 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리잔이 찬 뒤 마술처럼 잔이 더 커져버립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대신해서 새로운 경제개발 모델을 찾을 때가 됐습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겐 의무입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위한 다양한 길 중의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2014년 8월 14일자 시사IN)


역사적 예수께서 오늘날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면 바로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겠는가!


2. 가톨릭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사실 개신교 전통에서 살아온 나에게 가톨릭은 '가까이 하기엔 조금 먼' 교회였다. 지금도 동의하기 어려운 일, 아쉬운 일들이 없지 않다. 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이번 교황 방한과 관련하여 가톨릭교회가 꼭 했으면 좋았을, 아니, 지금이라도 꼭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 두 가지를 가톨릭교회에 전하고 싶다.


하나는, 조선말기의 4대 박해에 관련된 일이다. 바로 이번 교황의 광화문 시복식과 관련된 사건이다. 가톨릭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신자들에게 교회가 시복식을 하는 건 당연하고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자. 당시 가톨릭 교인들의 행태는 당시 조선사회의 근간을 흔든 문화침략일 수도 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다니... 조선의 위정자들이 위기를 느낀 건 당연하다. 하여 나는 '순교'라는 표현은 좋지만, '박해'라는 표현을 쓰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갈등'이라는 중립적 표현을 쓰는 것이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한걸음 더 나아가, 당시 조선사회에 문화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한 일에 대해 가톨릭교회 차원에서 사과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글에 일말의 타당성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가톨릭교회 관계자들이 있다면, 교황께서 이 일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또 한 가지는, 그때 가톨릭 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천진암으로 숨어들었을 때, 그들을 보호해 준 스님들에 대해 가톨릭이 교회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보은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시 사건으로 인해 스님들 십여 분이 함께 '순교'했다는 걸 가톨릭교회가 모를 리는 없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충분히 감사하기는커녕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불교계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서운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표현을 자제하는 것은 불교가 가진 큰 자비심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점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찌들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개신교인으로서 존경하는 큰 집 어른들에 대해 비판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하지만 변명을 좀 하자면, 나는 오래 전에 하느님께 한 가지 서원을 했다. "이웃종교의 단점은 보지 않겠습니다. 장점만 보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늘 지켜주십시오."


당시 내가 이 서원을 한 이유는,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이웃종교의 단점에 주목하고 지적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하여 특정 종교에 대한 비판은 중립적 위치에 있는 시민단체나 학계에서 맡는 것이 좋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이웃종교에 대해 덕담을 주로 하고 비판은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종교인들 모두에게도 이같이 해 주실 수 있겠는지 부탁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하지만, 가톨릭을 이웃종교라 말하고 싶지 않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형제종교이고 큰 집이 아닌가? 그렇게 보면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그리스도교와 사촌형제가 되는 셈이다. 불교는? 너무나 존경스러운 이웃집이다. 종교를 가진 분들은 모두 한 뜻을 품고 살아가는 길벗들이고... (나는 그렇게 믿고 있고, 종교인들 모두 그렇게 생각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3. 사라진 권력, 그러나 지구마을 최고의 권위를 얻다


20세기가 끝나갈 때, 교황 요한 바로오 2세는 지구마을 이웃들에게 폭넓은 사과를 했다. 이웃종교에 대해서도 가톨릭이 과거 역사를 통해 저지른 과오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이 일로 가톨릭이 얻은 세계적 신뢰는 엄청났다. 과연 교회는, 아니 종교는 낮아짐으로 높아진다는 사실이 증명된 사건이라 생각한다.


중세 교황은 황제와 권력을 놓고 다투기도 했다. 12세기 말 교황이 십자군 동원령을 내리자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를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의 왕들이 따랐다. 만일, 지금 군대를 동원하라고 교황이 명령을 내리면? 아마 제 정신이 아니라고 비웃음을 살 것이다. 이제 교황의 권력은 미미하다. "군대를 동원하라" 따위의 세속적 권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의 교황에게도 남아 있는 힘은 있다. 그 어떤 강대국의 지도자를 향해서도 "군대를 동원하지 말라."고 호통 칠 힘이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러시아도 교황의 경고를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다. 내가 지금 교황께 기대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교황이 전 세계의 양심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 주면 좋겠다. 모든 위정자들이 두려워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 그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권력마저 내려놓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로 권력자를 질타한다. 위선자와 테러리스트들에게 파문을 선고한다. 아울러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 저격당할 지도 모르는 노상에서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삶에 지치고 아파 우는 이들의 손을 잡는다. 그리하여 세계 최고의 권위를 얻었다. 비바, 파파!


4. 개신교인이라 부끄럽다


그런데, 아,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교황의 방한에 대해 일부지만 개신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반대운동을 하겠단다. 광화문에서 시복식이 열리는 8월 16일 오전(지금 내가 글을 쓰는 시간이다), 1km도 떨어지지 않은 청계천에서 '맞불 기도회'를 연다나...


이런 무례한 짓을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사명감을 갖고' 저지르는 개신교회 지도자들이여, 보수정통을 자처하는 한국의 주류 개신교회여, 차라리 소멸하라. 세상의 빛이 아니라 오물이 되어 있는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냥 조용히 지구마을에서 소멸하라.


사찰에 무단 침입하여 땅밟기를 하는 무례한 교회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웃종교 사찰의 이름을 불러가며 무너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교회는 필연코 지구마을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지구마을의 평화는 불가능하다.


아, 정말 개신교인으로서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못난 동생을 둔 가톨릭 교우님들에게 미안하고, 방자한 짓을 겪으면서도 이제나 저제나 철이 들기를 참고 기다리시는 불자님들에게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사회갈등을 야기하는 무질서와 폭력적 언행을 견뎌내는 모든 이웃들께도 마음 깊이 사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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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16 [12: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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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 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
현재는 다음 카페 ‘불거토피아’(http://cafe.daum.net/bgtopia)를 운영하면서 ‘학교종교자유를 위한 시민모임’ 실행위원으로 '생명실천운동'과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