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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동영 '복지 증세' 충돌, 현실이 되다
2년전 朴 "복지를 왜 돈으로만 보나"‥鄭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
 
김영국
 
"복지에는 돈이 필요하지만, 왜 모든 것을 돈으로만 보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따뜻한 관심이 제일 중요하다" (박근혜 전 대표, 2011.1.23)

"역대 정권이 따뜻한 마음이 없어서 복지를 못한 게 아니다. 재원 대책(증세)을 얘기하지 않는 복지는 허구다. 박근혜 대표의 시각으로는 복지 못한다" (정동영 최고위원, 2011.1.24)
 
그리고 2년 후. 정동영의 충고는 정확히 현실이 됐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됐지만, 취임 7개월 만에 '증세 없는 복지'에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대선 핵심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등 주요 복지 공약들을 재원 부족을 이유로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국민에게 사과까지 했다. 그 연장선에서 복지를 담당하는 장관이 복지 후퇴의 방법을 놓고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며 사퇴하는 어이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가능하지 않다는 게 증명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증세 대신 경제 활성화와 세출 구조조정, 지하경제 양성화 등에 기대를 걸었지만, 애당초 그런 방법만으로 복지 재원 마련에 성과가 나타날 리 만무했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고집만 부리다 엉뚱하게 복지 후퇴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박근혜표 복지의 파산선고'라고 규정했다.  

경제민주화에 이어 복지 공약까지 뒤집으면서 박 대통령의 '신뢰' 이미지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신뢰를 누구보다 강조해왔고 그걸 기반으로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었다. 야당의 복지 이슈에 밀려나지 않으려고, 아버지 묘역 앞에서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라고 외쳤던 사람이다. 철학과 정책이 내면화되지 않은 정치인의 신뢰가 얼마나 허약하고 대국민 사기극에 가까운 것인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국민 70%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62% "증세 통해 복지 확대하라" 

대부분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세 없는 복지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최근 매일경제·MBN이 9월 23~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70%가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또 국민 62%가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에 공감을 표시했다. 재원이 부족하다면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은 고작 21%에 불과했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국민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복지 증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박 대통령도 9월 16일 여야 대표와 3자 회동에서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 축소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공감대 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증세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26일에는 한발 더 나아가 "국민대타협위원회를 만들어 조세 수준과 복지 수준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통해 국민이 원하는 최선의 조합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금기시하며 수면 하에 잠자고 있던 '복지 증세론'이 다시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다.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은 박근혜 정부에게 복지를 포기하든가 대폭 축소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복지는 이미 시대적 요청이 됐다. 그 필요성은 가면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그와 비례해서 증세 문제도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핫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정동영의 3년 전 외침‥"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 부자증세해야"

▲복지재원 토론회 '복지는 세금이다!' (2011.1.20)...이날 토론회에서 정동영 의원은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이라며 부자증세를 주장했다.                © 박진철 기자


박근혜표 복지가 파산 직전에 놓인 지금, 정치인 정동영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그가 지난 몇 년 동안 보편적 복지와 복지 증세론을 외치며 끊임없이 의제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정동영은 3년 전부터 "재원대책 없는 복지는 거짓이다. 보편적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사회통합·사회복지목적세 형식의 부자증세를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외쳐왔다.

그는 "부자감세 철회, 비과세 축소, 낭비성 토목예산의 전환, 세입세출구조의 조정도 필수사항이지만, 이것만 가지고 보편적 복지를 한다고 하면 국민들은 진정성을 의심한다"며 "한나라당과 다른 정권을 만들겠다는 국정철학을 가졌다면, 당연히 '세금 없는 복지국가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는 부자증세 방식에 대해서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번 사람은 적게 내는' 조세정의 원칙에 입각해서 실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돌아와도 똑같은 소리를 했을 법한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귀를 기울이고 논쟁하면서 국민적 컨센서스가 형성됐더라면, 지금쯤 훨씬 진전된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하지만 정동영은 그런 주장들 때문에 정치적으로 너무 많은 손해를 입었다. 보수세력에게 '눈엣가시'가 되고 비난의 집중 표적이 됐다. 심지어 소속 정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관료 출신 보수파들에 의해 왕따가 됐다. 이들은 새누리당과 똑같은 논리와 잣대로 정동영 주장을 비난하고 묵살했다. 그 결과는 뻔했다. 박근혜와 똑같은 '증세 없는 복지'를 당론으로 확정해버렸다.

영혼없는 민주당의 '정치적 자살행위'‥손학규·정세균·이해찬 반성하라

보편적 복지와 증세를 대하는 민주당의 자세는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철학도 신념도 의지도 없는 채 여론과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다. 그러나 전체적인 기조는 사실상 새누리당과 똑같았다. 당연히 차별화도 불가능했다.

지난 8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세금폭탄론' 공세를 펼치며 서명운동까지 하는 '정치적 자살행위'를 벌였다. 세금폭탄론은 지난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보수세력·보수언론이 노무현 정부의 복지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동원한 경제판 메카시즘이었다. 보편적 복지를 선도적으로 주창하고 당 강령에 새겨놓은 정당이 세금폭탄론을 꺼내든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영혼과 철학이 없는 정당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지금까지 복지 증세 문제가 사회적 의제가 되지 못한 데는 어쩌면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의 무개념 트로이목마 역할이 지대한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 중심에는 당적만 민주당에 있지, 경제 DNA는 새누리당과 똑같은 관료출신 보수파들이 있다. 그들이 민주당의 진보적 정책에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민주당 정책을 통째로 주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당의 역대 당 대표들이 당 강령을 내면화하지 못한 탓이다. 정당의 정책 파트 수장은 당연히 관료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순진하고 허황된 인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관료출신 보수파의 머리에서 나오는 정책들이 친서민적일 리 없고, 재벌대기업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2011년 1월 손학규 대표가 당내에 '보편적 복지 재원조달방안 기획단'을 만들었는데, 그 안에 김진표·이용섭·강봉균·김효석 등 관료출신 보수파들로 가득 채워넣었다. 거기서 나온 결론은 너무도 뻔했다. 정동영의 부자증세를 위험한 주장이라면서 묵살하고, '증세 없는 복지'를 당론으로 결정한 것이다. 한 마디로 '새누리당 박근혜 노선'이었다. 친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해찬 의원은 "증세를 주장하다 쫓겨난 정권 많다"며 강력 반대했고, 정세균 의원도 "부유세를 먼저 들고 나가면 복지정책이 날아갈 위험이 있다"고 가세했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민주당의 증세 없는 복지는 대국민 기만이자 비겁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며 "재정 지출구조 개혁을 통해 복지재원 15조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누구의 말이 옳았는지는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친절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그 이후에도 민주당은 친노 지도부가 들어섰지만 정책 노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명숙-이해찬 친노 지도부는 보편적 복지와 증세 문제를 자신들의 선도적 파이팅 이슈로 주도하지 못 했다. 결국 복지 전쟁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과 전혀 차별화되지 못 하고, 중대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했다한들, 과연 지금의 박근혜 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복지 후퇴 딜레마를 재연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야당의 대선 패배가 당연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집권 후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철학과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었는지를 자문해보는 것이다.

손학규, 한명숙, 이해찬, 김한길로 이어지는 민주당 지도부들은 이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당 지도부의 멀리 내다보지 못 하고 신념 없고 강단 없는 리더십은 고스란히 현재 민주당의 한계로 고착화되었다. 그 결과 추락만 거듭하고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 하고 있다.

정동영의 충고 아직도 살아있다

▲노인의 날인 지난 2일.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 후퇴에 대해 어르신들이 광장에 모여 직접 이야기하는 '노인 만민공동회'가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렸다. 어르신들은 기초연금 공약 파기를 규탄하고, 이행을 촉구했다. 평소 보편적복지-부자증세를 주장해왔던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심상정 정의당 의원,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참석해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기초연금과 복지정책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 대자보

 
박근혜 정부가 진정으로 복지를 하겠다면, 3년 전 정동영이 강력하게 제기했던 문제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목적세 등 증세 외에는 복지 재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속에서 복지 수요는 급증하는데 기존 세금체계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건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OECD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친다.

뚜렷한 대책이나 노력 없이 '임기 내 공약이행'이라는 공수표로 또다시 국민들을 실망시켜선 안된다. 역대 정권의 임기 중반 이후 인기 추락과 민심 이반은 다 이런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등의 편법으로 현실을 모면하려다간 되레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방안을 국민적 논의에 올리고, 근본적인 처방과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복지 공약을 파기하고 국민에게 사과까지 하고 있지만, 최근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메르켈 총리와 집권여당은 정반대로 그동안 반대했던 부자증세를 수용하고 복지 예산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독일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그럴 수밖에 없는 정치 지형을 만들어 준 것이다.

특히 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아주 놀라운 현상이 발생했다. 한국의 이명박 정권·새누리당과 똑같이 부자·대기업 감세, 복지 축소, 규제 완화,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노선을 주도하고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던 자민당이 5% 미만의 득표율로 단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이다. 이로써 자민당은 1949년 독일 건국 이후 최초로 의회에서 퇴출당했다. 이전 총선에서도 93석을 얻었던 정당이 한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MB·새누리당 노선을 들고 독일 총선에 나서면,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가차없이 국민들로부터 퇴출당한다는 얘기다. 이런 걸 보면 지난 총선에서 한국 민주당이 취한 선거 프레임과 복지 증세론자 공천 탈락·배제 등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세계적 시대 흐름에 조응하지 못 하고 즉흥적인 이슈에만 매달린 결과다.

박 대통령의 상황 인식도 여전히 안이하고 본질에서 비껴서 있는 느낌이다. 증세를 거론하면서도 "법인세율 인상은 경제계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인 재벌대기업의 입김과 영향력 앞에 한없이 나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법인세 인상 없는 복지 증세는 모순도 그런 모순이 없다. 현재 세수 부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바로 법인세이고, 증세는 법인세 감세 철회와 인상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대기업들은 이익이 가장 많이 늘어났는데도 세금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적게 낸다. 이명박 정부가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깍아주고, 각종 공제 혜택까지 퍼주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조세정의가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대기업의 투자 유인을 위해 온갖 특혜를 베풀어줬지만, 정작 돌아온 건 투자는커녕 이익금을 금고에 그대로 쌓아놓고 부를 축적하거나 조세피난처에다 10조원에 가까운 돈을 숨겨두는 것뿐이었다. 그래놓고도 법인세 감면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거세질 때마다 재계는 투자 위축을 내세우며 반발한다. 이럴 바엔 차라리 대기업이 금고에 쌓아놓은 돈을 세금으로 걷어내 노인연금 등 복지 확대에 투자하면 그 돈은 곧장 소비로 직결돼 오히려 경제성장과 활성화에 더 기여할 것이다.

복지를 해야 부자도 행복하다 

민주당은 이제라도 자신의 과오와 용기 부족을 반성하고, 복지와 증세 논의에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선도적 혜안과 신념을 가진 리더가 역량을 잘 발휘하면 언제든지 동참할 준비가 돼 있는 국민이다. 지레 겁먹고 용기없는 리더십으로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없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도 없다.

국민들은 극심한 양극화 속에서 5대 민생 불안(보육,교육,일자리,주거,의료,노후)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복지 확대 없이는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작년 대통령선거 전까지는 복지를 하느냐 마느냐가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으라는 것이 국민 절대다수의 요구이다.

국민들은 부자감세 철회·재벌대기업 법인세 인상·고소득층 소득세율 인상 등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세금을 더 많이 내고,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내면서 국민 모두가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복지 증세라면 얼마든지 동참할 의사가 있다. 그리고 이건 좌파도 우파도 아닌, 조세정의 실현 그 자체이자 사회통합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부자도 마찬가지다. 지금 부자라고 해서 천년만년 부자로 사는 건 아니다. 언제 어떤 일로 빚쟁이로 추락할지 모르는 세상이다. 복지를 해야 부자도 행복할 수 있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기사입력: 2013/10/04 [11:29]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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