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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연 이기적인가, 보람은 없나?
한국인의 '증오' 감정 너무 변덕스러워‥'보람' 느낄 수 있는 게 행복
 
우석훈   기사입력  2011/05/03 [00:03]
누군가를 울리기보다 웃길 수 있어야 
 
이기주의·이타주의라는 생각은 스코틀랜드에서 등장한 매우 특별한 생각이고, 이걸 네오 스토이시즘 즉 신금욕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결국은 시장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거나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좀 독특한 생각이다.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만, 결국 자신만 행복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현대 경제학은 인간은 모두 이기주의적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만약 인간이 이기주의적이 아니라면, 우리가 경제학 이론이라고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이 무너진다. 그건 맑스의 <자본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환과 관련된 분석에서 노동가치를 이끌어내는, 즉 자본론의 세계도 교환에서 시작되는 이론 체계이다.
 
이건 마치 자기실현적 명제와 같은 성격이 있다. 인간이 이기주의적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는 "인간은 이기주의적이어야 한다"라는 아주 가혹한 자기계발의 생존 논리가 된다.
 
만약 자신이 이기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럼 넌 죽어. 중고등학교에서 경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좀 똑똑해져라"라는 말로 부모들이 자식에게 하는 교육이 요즘에는 기본적으로 이기주의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 아닌가? 자신이 이기주의자이든 그렇지 않든, 결국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그렇게 되라고 한다.
 
아무리 경제학이 과학, 정확히는 경성과학(hard science)에 가까와지려고 해도 결국에는 이데올로기 속성이 강한 것이 바로 이러한 자기 생존 논리를 통해서 인간에게 이기주의적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자, 우린 이 과정을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아주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고, 본성이라는 게 있다. 이기주의자로만 살아가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인간이라면 그런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 사람으로 우리는 인간 이명박이라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지독할 정도로 이기주의만 남은 인간의 표본을 그래서 겉과 속이 모두 같은 그런 거짓없는 인간이 궁금했는데, 난 한 번은 본 것 같다.
 
그의 양심은 우리의 양심과는 좀 다르게 생긴 것 같다. 아무리 지독할 정도의 경제근본주의의 시대를 살았다 할지라도 사람이라면 가끔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스스로 돌아보는 순간이 온다. 그런 본성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없다면, 세상에서 종교는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문득 착한 본성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그러지 마, 너의 세속적 욕망을 위해서 지금의 사회적 억압을 참아내." 그렇게 말하는 게 바로 자기계발서들 아닌가?
 
그러나 인간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이 가진 기본 속성을 하나로 설명하기도 하고, 두 개로 설명하기도 하고, 좀 더 많은 것들을 본능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착하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그런 여러 가지 속성을 가진, 복잡한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게다가 인간은 터무니없이 변덕스럽기도 하다.
 
노무현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이 그의 임기가 끝나갈 때쯤에는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농담을 즐기면서 그가 만들려고 했던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참 변덕스럽다. 이명박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그래도 그는 뭔가 할 것 같아."라고 더 좋은 세상을 기대하던, 바로 그들이 이번에 분당 보궐선거에서 이번에는 "이명박만 아니라면"이라는 선택을 했다.
 
이게 과연 우리들이 좋아지는 건지, 과연 그렇게 해서 세상 좋아지는 건지, 나는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인간, 아니 한국인이 얼마나 변덕스러운가는 너무 똑똑히 보았다.
 
그렇다. 많은 한국인들은 우리의 대통령에게 대단한 정서적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건 이성과 합리성 이전에 정서의 문제이다. 한국인은 정서적으로 지금 이명박이라는 대통령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이기주의라는 간단한 인간의 본성만으로는 분당 보궐선거의 결과는 잘 해석되지 않는다. 그냥 싫다…. 우리는 노무현도 그냥 좋아했고, 이명박도 그냥 좋아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들을 그냥 싫어하게 되었다. 이게 사람이고, 바로 한국인이다.
 
손학규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세상이 좀 좋아지고 경제가 살아날까? 최소한 이명박과 그의 후계자를 더 이상 9시 뉴스 시작하자마자 보지 않아도 좋은 순간은 온다. 그게 50% 가까운 분당 투표를 이루어낸 진짜 행위의 동기 아닌가? 그냥 싫은 거. 이건 돈이나 이익과는 또 차원이 전혀 다른 원초적인 것이다. 어쩌면 더 말초적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부르면서 고양이 놀이하고, 그렇게 말초적으로 그를 혐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 경제적 이익? 지역발전? 그딴 거 아니다. 그냥 그가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 강렬한 증오, 그걸 대체할 감정이 있을 수 있나? 한나라당은 지금 지옥에 가 있다. 증오가 사람을 움직이는 얼마나 강렬한 힘인지 그걸 절감하게 될 거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아주 변덕스럽고 괴팍하고, 그렇지만 가끔은 고상하거나 숭고하기도 하다. 가끔 우리는 스스로도 놀라게 착한 생각을 할 때가 있지 않은가?
 
늘 착한 생각을 한다면 성인이나 깨달은 사람 반열이겠지만, 역시 우리는 생활인, 늘 착한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잡스러운 생각이나 치사하고 좀스러운 생각을 할 때가 훨씬 많고, 때때로는 무뇌아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게 바로 사람이고 생활인 아닌가?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런 복잡한 속성에 대해서 너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경제학은 인간은 어차피 우리는 다 그렇고 그런 존재라는 말 외에는 한 게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정치학은 어차피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찍고,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찍는다는 출생학 외에는 한 게 없는 것 같다. 한국에서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정당 한나라당에 투표 하는가, 왜 우리에게는 계급투표 현상이 없는가. 우린 이런 걸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 십년 동안 우리는 마치 한국에는 '경제적 동물'만이 존재하고,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다 '자기계발적 존재'이며, 너희들도 뒤돌아서면 다 똑같은 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강남좌파'라는 말에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가 다 있는데, 부정적인 의미가 바로 이 얘기 아닌가? 그들도 돌아서면 다 돈 좋아하고, 돈 열심히 버는 다 똑같은 인간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과연 지금의 한국에는 이기주의자들만 있는가? 혹은 매순간, 단 한번도 이기주의가 아닌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보람이라는 말이 있다. 보람이라는 감정을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돕거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착한 행동을 했거나, 의미있는 결정이 정말로 유효한 결과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부자가 되었을 때 보람을 느끼는가? 자신이 우연히 산 주식이 몇 배로 올랐거나, 아파트 투기에 성공했을 때 보람을 느끼는가? 물론 느낄 수는 있겠지만, 제 정신은 아닌 사람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보람이 있었다고 주변에 말하면 손가락질한다. 그런 게 사람이다.
 
누구든 아침에 일어나면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그게 단순히 돈을 벌거나, 승진을 위해서 기계처럼 충성하는 것을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인간은 많은 경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하고, 자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자신이나 생태계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 한번이라도 감자를 심고 키워본다면, 하얗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의미있는 감자꽃을 보면서 바로 보람을 느낄 것이다.
 
보람은 꼭 인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물질적인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미소를 짓고 그가 잠깐이라도 행복해진다면, 그 미소는 보람 있는 일이다. 한 때 프리 허그라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그것도 보람이라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일 아닌가?
 
자신의 삶이 보람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게 어쩌면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원적 속성인지도 모른다. '아, 나는 나의 본성이 시키는대로 마음껏 욕망을 채우면서 이기주의적으로 나의 평생을 잘 살아왔어, 그러므로 내 삶은 아주 보람 있는 삶이었지.' 죽기 전에 이렇게 생각할 사람이 정말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 나는 나의 욕망이 내 삶에서 잘 충족될 수 있도록 나의 마시멜로를 아주 아껴가면서 결국 내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게 된 아주 보람 찬 인생을 살았어, 나는 행복해.' 이렇게 생각할 사람이 있나?
 
자신이 스스로 보람을 느낄 수 없는 삶을 산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0%이다. 돈이 보람을 줄까? 미안하게도 돈은 보람과 같은 그런 고급 감정을 주지는 않는다. 두 손 가득히 돈을 쥐게 된 사람이 "돈은 허무하다."는 걸 결국 배우게 되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게 행복'이라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대한민국은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한 때 월드컵의 국가대표팀을 열심히 응원하면서 보람 비슷한 걸 느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게 돈을 주던가, 먹고 살게 해주던가, 아니면 누군가에게 "참 잘했어요" 그런 칭찬을 받게 해주던가? 그러나 약간씩은 보람을 느끼지 않았던가? 보람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보람이라는 것을 너무 잊고 살았다. 이명박이라는 참 독특한 캐릭터의 대통령과 함께 보낸 지난 3년, 우리는 집단 우울증을 호소했고, 이제는 집단 분노 단계로 가는 중이다. 홉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짜증'을 지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분노'로 가는 중 아닌가?
 
누구한테 그리고 왜 화를 내야하는지도 잘 모르지만, 어쨌든 화나! 한방 용어로 그런 걸 화병이라고 하는 것 같다. 어떤 한의사가 한방에서는 그걸 피가 맑지 못해서 가슴이 막히고 답답해지는 것, 그렇게 설명한다고 알려주었다.
 
돈을 위해 스스로 이기주의자가 되자고 서로들 "부자되세요"라고 격려하면서 지난 10년을 보냈다. 지난 10년 전에 비해서 "아, 나 부자가 되었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아무리 넉넉하게 추정해봐도 국민의 1% 미만일 것 같다.
 
지난 10년 전에 비해서 "아, 나 화병 증상이 생겼어."라고 하는 국민은 보수적으로 우울증 등 국민보건 통계로 추정을 해보아도 10%는 넘을 것 같다. 부자가 되길 갈망했지만, 평균적으로는 더욱 가난해진 한국인. 당연히 짜증이 늘고, 화병이 생기고, 우울증을 지나 만성 분노로 가게 된 게 현실이다.
 
이제 새로운 10년, 정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는 깨끗이 잊는 편이 최소한 정신건강에는 좋을 듯 싶다.
 
나는 이러면 좋겠다. 앞으로 10년 후 다른 건 모르지만 10년 전에 비해서 자신의 삶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대답할 수 있는 국민이 절반은 되는 나라를 우리가 만들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정신적으로 보람을 느끼는 국민들, 그 때 경제적 풍요가 찾아올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보람의 의미와 보람의 가치, 우린 그걸 잃었다. 개인들에게 '보람 있는 삶'이 사라진 자리를 보람상조가 대신 채운 게 아닌가? 뭘 해야 보람 있는지, 그거야 말로 '그 때 그 때 달라요' 아닌가?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보람 있는 삶을 살겠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파랑새와 같은 것이라는 걸 문득 깨달을지도 모른다. 참 멋진 얘기 아닌가? 집 안에 있는 파랑새를 두고 세상을 헤매고 다녔던 찌르찌르와 미찌르, "돈 좀 원없이 있으면 좋겠다"고 IMF 이후 10년을 "부자 되세요"를 입에 달고 살았던 우리들, 집 안에 있는 파랑새를 굶겨죽일 뻔 했다.
 
보람…. 언젠가 우리는 눈을 감고, 익숙했던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그 날 "참 보람진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걸 뛰어넘을 속세의 행복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풍족한 삶도, 민주 정부도, 멋진 연애도, 그 어느 것도 약속할 수 없다. 그러나 보람이라는 가치를 추구한다면, 행복이라는 파랑새가 집 안 구석 어디에선가 보이게 될 것이라는 건 약속할 수 있다.
 
보람, 그걸 너무 오랫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다. 행복, 풍요, 낭만, 명랑, 웃음, 이런 것들이 모두 파랑새의 특징을 가진 것들이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보람 있게 만들어줄 것 같다.
 
누군가를 울리기 보다 누군가를 웃길 수 있으면, 보람이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모으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닌가?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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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5/03 [00:0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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