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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경인운하는 MB 정세 읽는 '리트머스'
[진단] 정치경제적 시각 통해 경인운하 바라봐야...민주당 정체성 필요
 
황진태   기사입력  2009/01/09 [00:26]
가히 경인운하의 생명력은 좀비처럼 질겼다. 아니 “질렸다”는 표현이 보다 적절하겠다. 이미 경인운하 건설은 경제성이 없다는 게 각계 전문가들의 수두룩한 논문과 보고서, 칼럼과 더불어 줄기찬 시민단체활동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관철이 되고야 말았으니 좀비답지 않은가. 딱딱 들어맞는 공식을 좋아하는 신고전경제학에 기반 한 비용편익분석을 통해서도 경제성 없는 것으로 판명된 마당에 작금의 이명박 정부가 외고집을 부려 21세기에 대략 난감한 좀비를 부활시키는 것을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 소중한 지면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점을 일일이 복습할 만큼 지면낭비를 할 생각은 없다.
 
이 글에서는 단순히 경제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몰려있는 경인운하 논의를 좀 더 확장시켜서 경인운하를 현 2MB 정세를 읽는 리트머스 종이로 삼고자 한다. 그러니까 정치와 경제가 각각 물신화되어 따로 노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닌 정치경제적 시각을 통해서 경인운하를 본다면 경인운하, 4대강 정비사업 나아가 이명박표 녹색뉴딜사업까지 정부의 몰지각한 공간정책을 추진하는 이유와 문제점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 까라는 물음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지역이 빠져있는 대운하와 경인운하의 논쟁정치

지난 한반도 대운하 논쟁에서는 정작 운하가 건설될 지역에 대해서는 간과되었다. ‘한반도 대운하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었고, 당선된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중앙정부 주도로 대운하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는 주장이 상식적으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당시 논쟁정치의 절반 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즉,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 지역에서의 논쟁정치도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한반도 대운하 논쟁은 총선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대립각으로 대운하를 내세우면서 대선 때보다 더 뜨거웠다. 그런데 지역으로 내려가면 당시 경부운하가 지나가는 경상도 지자체뿐만 아니라 전라도에서도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중앙당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당의 지역후보들은 물론이고, 지자체와 일부 시민단체, 토호세력, 지역신문 등의 지역개발연대가 대운하 추진을 위해서 능동적인 활동을 펼쳤었다. 
 
▲ [그림1] 송영길 의원 홈페이지 홍보자료     © 대자보

이러한 지역의 간과는 경인운하 논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천 계양구가 지역구인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총선 당시 한반도 대운하의 대표적인 비판자였다. 그러나 지역구 총선공약에서는 경인운하 건설추진을 전면에 내걸고 운하건설에 발 벗고 나선 인물이기도 하다. <그림 1>은 송영길 의원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명박의 대선 일등공신인 청계천을 호명하면서 경인운하 유치를 주장한 홍보물이며 <그림 2>는 홈페이지 대문에 4대강 정비사업이 한반도 대운하 간의 관련성이 있는 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참으로 기묘한 동거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송 의원은 경인운하와 한반도 대운하와 간의 관련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하다. 
 
▲ [그림2] 송영길의원 홈페이지 4대강 정비사업 관련 설문조사란     © 대자보

4대강 정비사업도 중앙정부만이 독자적으로 추진한 게 아니라 대구 등의 지자체에서 그간 끊임없이 사업추진에 대한 압박을 중앙정부에 넣었던 점을 감안하면, 경인운하와 마찬가지로 지역주도의 개발주의 관성이 작동한 것이다. 고로, 이러한 가설에 따르면 송 의원의 지역구가 경상도였더라도 4대강 정비사업에 발벗고, 나섰을 거라는 것은 누구나가 예상할 수 있다.  

결국 한반도 대운하 명칭을 포기하고, 현재 각 지역에서 각자의 고유의 지명을 앞에 붙이고, ‘xxx뱃길복원사업’, ‘xxx물길잇기사업’, ‘4대강정비사업’식으로 추진되는 것은 한반도 대운하의 본질이 지역 주도의 운하를 밑그림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운하 추진의 주요 행위자였던 지역정치인을 보지 않고서는 현 개발논리의 본질을 읽을 수 없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운하추진을 선언적으로 나마 철회를 밝힌 직후였던 지난해 7월에 경인운하를 당차원에서 찬성의사를 표명한 것은 민주당 또한 4대강 정비사업에 대해서 일언반구(一言半句) 언급하는 것조차 유구무언(有口無言)해야 한다. 이는 지난 참여정부 여당이었던 민주당이 혁신도시, 연안권 특별법 등을 비롯한 각종 개발법을 뻥튀기하여 현재의 토건지향성을 강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을 떠올리면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토건지향적이다고 비판하는 것은 정말 코미디겠다.   
 
지역개발연대라는 구조적 틀에서 볼 때 지역정치인으로서 지역의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역정치인은 제쳐두더라도 온 국민이 촛불집회를 통해서 가까스로 얻어낸 운하철회선언의 성과에 대해서 이를 번복한 민주당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최소한 ‘조중동’을 제외한 대운하 계획을 비판적으로 다뤘던 언론매체들만큼은 조중동과 차이가 없는 경인운하의 경제성에 치중하고 있다. 이는 이러한 지역의 맹점을 볼 수 없게 된다. 경인운하 사업추진은 경제적인 만큼이나 정치적인 사안이며, 정치경제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중앙정부에만 매몰된 현 보도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중앙정부의 비판과 동시에 경인운하 추진에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과 지역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다루어야만 실제 지역에서 어떻게 운하가 추진되고, 담론화가 되고 있는 지를 볼 수 있고, 왜 토건지향성을 띠게 되며, 종국적으로 경인운하 추진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용편익이라는 정치적 위장술을 벗기자 

2.2->0.8166->0.9206->0.7607->1.07 

암호와 같은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경인운하 추진 와중에 왔다갔다한 비용편익 수치들이다. 비용편익분석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생소했던 개념이었는데 한반도 대운하 논란을 통해서 고작 '2MB'인 정부가 전 국민에게 ‘대운하 스펀지’ 혹은 ‘대운하 지식in'으로 톡톡히 활약한 점만큼은 칭찬해줘야겠다. 비용편익분석에서 ‘1.0을 넘으면 경제성이 있다’는 전제는 다분히 신화라는 것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기법은 균질화된 공간을 가정하고, 투입(input)과 산출(output)을 쥐락펴락 추정할 수 있다는 신고전경제학에 기반하고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처럼 매트릭스 내부에서의 모든 현상들을 데이터화, 수치화 할 수 있다는 가정과 같다. 물론 이론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그러나 나는 운하건설로 초래될 생태계변화와 파괴, 후속세대 영향까지 수치화할 수 있는 가에 있어서 회의적이다. 경인운하의 비용편익에서는 물론 이들 항목은 고려조차 안됐다).

더 큰 문제는 비용편익 분석의 방법론적 문제점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석기법을 사용하는 데 ‘마사지(massage)’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란에서의 비용편익분석 논란에서 참여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면 한미FTA 논쟁에서도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CGE 모델을 통해서 한미 FTA체결로 인한 거시경제효과가 한국에 이득이 될 거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 그 원(raw)데이터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과연 어떠한 지표들을 사용하고, 얼마나 각 변수에 얼마만큼의 비중을 부과했는지를 보아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결과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시작할 수 있는데 데이터 공개조차도 안하고서, 결과만 내놓고는 한미FTA가 한국에 유리하다고 단정 짓고 추진했던 것이다. 이러한 원 데이터의 공개조차 안하는 행위는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신고전경제학의 제살 깎아먹기며, 탈정치적이어야 할 학문에 정치적인 얼룩을 남기게 됐다.

이번 경인운하의 본격적인 추진계획의 지원사격을 한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결과도 마찬가지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 사실 KDI는 이번 보도기사처럼 경인운하와 첫 인연이 아니다. 90년대 경인운하 논쟁에서 비용편익을 둘러싸고, 자그마치 2.2를 주장한 경인운하 주식회사에 대해서 환경단체들은 자체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서 비용편익이 없다고 반박하면서 갈등이 첨예해지자 결국 객관적 판단자로서 KDI에 의뢰했었다. 그래서 2002년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의 의뢰로 경인운하의 비용편익 산출결과는 0.8166으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그런데 이 수치도 건교부에서 경제성 분석을 위한 기초자료를 조작했는데도 불구하고 “1”을 넘지 못했던 것이다.
 
▲     ©환경운동연합

하지만 이번에 또 다시 KDI가 경인운하에 대한 분석을 맡으면서 국토해양부는 KDI의 위상이라는 후광을 업고 추진을 전격 발표했다. 그러나 KDI에서는 분석에 사용한 기본 데이터의 공개도 제대로 안되고, 구체적인 논평조차 없으며 단지 국토해양부만 말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 근자에 KDI는 경인운하 사업을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바꿀 것을 권고한 바 있다. KDI의 위상에 비출 때 이러한 공공사업 전환 권고는 경인운하가 이익이 안 되고, 손해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경인운하가 경제성이 없던 결과를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바꾸는 동시에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의 전환을 권고하는 이 정신분열적인 판단을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임기가 4년 남은 정부가 40년 가까이 쌓아놓은 신뢰와 객관성을 담보한 국책싱크탱크인 KDI의 명성을 이렇게 한 순간에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 xx 되는 거 한 순간이다’는 말만큼 KDI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말도 없겠다.   

한미 FTA에서 국책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신뢰도가 추락했고, 한반도 대운하 논쟁에서 김이태 박사가 징계를 받고, 다시 4대강 정비사업 용역을 유치한 마찬가지로 국책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마찬가지의 길을 밟았다.
 
 이제 KDI마저 신고전경제학적 접근의 미덕마저도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나 KDI의 영향력이 삼성경제연구소에 밀렸다는 일련의 최근 보도기사를 의식해서 이러한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까? KDI는 자신들이 분석했던 결과를 뒤집고, 정권에 맞장구를 치는 게 다시 SERI를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까? 도리어 나는 그 추락을 가속화할 것으로 본다.

문제는 정치야, 이 바보야!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동안 대운하의 사업성이 없음을 양심 고백한 연구원이 갑작스레 징계를 받고, 한반도 대운하의 1단계라는 의혹이 짙은 4대강 정비사업이 화끈하게 추진되며, 덩달아 KDI의 후광을 입고서 경인운하까지 추진되고 있다. 각 사건들은 국토해양부 관료들의 말대로 정말 ’우연‘하고, 상호 무관하게 벌어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단 난 사업들의 부활을 두고서 어떻게 경제학적으로 설명해야 할까? 이 상황을 단순히 예외적 변수로 처리할 것인가? 그러기에는 우연으로 보이는 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변수들 간에 상관관계를 도출하고, 분석에 포함시켜야만 의미 있는 수치가 나올 수 있을 거 같다. 여기서 이 우연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정치다. 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발생한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없고, 그렇다고 계산도 안 되는데, 이명박 정부를 소실점으로 한 복잡한 권력관계들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것이다.
 
사태가 이러한데 단순히 ’경제‘의 영역으로 고립시키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니까, 논의의 진행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더하여 국회를 점거한다고 며칠을 숭고하게 외박한 민주당도 앞에서 밝혔듯이 운하를 비롯한 토건지향성을 강화시켰다는 점에서는 결코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대항마라고 생각한 민주당도 딱히 대항마로 삼기에는 탐탁치가 않은 게 현 상황이다.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은 이러한 현 2MB 정세에 맞춰서 시기적절한 접근과 그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줄 듯하다. 이광일 교수의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메이데이)는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그간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급진적, 진보적 운동이 민주화에 발목을 잡았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작업과 동시에 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프레임화한 ‘경제’, '정치‘로 나누는 이분법적 틀이 도리어 민주화를 정체시켰음을 밝혀낸 수작이다.
 
여기서 정치와 경제의 갈림길은 다시 정치경제적 시각으로의 만남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경인운하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서도 우리는 경제와 정치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책은 역설적으로 경인운하 추진의 꼭두각시가 되었던 KDI 소속의 유종일 교수가 펴낸 <위기의 경제>(생각의나무)다. 이 책에서도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라면서 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시대흐름에 조응한 이 두 책을 통해서 우리의 대응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함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촛불에 비춰질 그림자가 될 것인가? 
  
국내 지역개발연대에 대한 학계 논의는 지역개발연대의 존재자체에 대해서도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들(자유경제구역, 연안권특별법, 혁신도시 등)이 늘어남에 따라서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현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현 보수양당체제하에서 지역유권자에 기반한 선거구제에서는 지역개발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정체된 선거구제 개편 논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제2의 촛불집회뿐만 아니라 직접행동 또는 직접민주주의의 제도 민주주의와의 결합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 제시가 필요하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인 민주당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직접행동을 통한 압박은 현 정부와 여당뿐만 아니라 기존 보수양당체제의 한 축인 민주당에 대해서도 긴장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민주당은 현 선거구 체제에서 지역이해를 진정 반영하고자 했더라면 초고층 건물을 랜드마크로 세우거나, 대운하 사업 등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2MB적 사고에서 넘어서 그 자신의 지역구에서부터 현 정부의 ‘녹색뉴딜’을 비판하는 대안으로서 삼는 교육, 사회 인프라 투자에 집중했어야 했다.
 
민주당이 ‘여당의 대항마’인 야당으로서 정치적 영민함을 국민에게 보여주고자 했다면 수도권 규제 철폐 직후 지방으로부터의 압박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가 차선책으로 4대강 정비사업을 통해서 수도권-지방 양극화 논란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 의도를 간파하고, -정말 정치인이라는 직함에 어울리게!- 보다 본질적으로 담론상의 지역주의에 의거하기 보다는 수도권 규제 완화를 가령 수평적 지방재정조정 등을 통한 실질적인 지자체의 재정상태를 높여서 실익을 가져다 주는 정치거래의 협상력을 보여줬어야 했다. 
 
▲ ©청와대

현 이명박 정부의 무능뿐만 아니라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추진에서 무지함을 보여준 민주당이 앞으로도 보수양당체제에 눌러앉는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현 신자유주의 정세에서 민주당 또한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촛불에 비춰질 그림자일 뿐이다.            
          
무~~~한! 도전!!

촛불집회를 통해서 가까스로 얻어낸 대운하 사업 철회와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은 경인운하를 통해서 어떻게 그 불꽃이 짓밟히는지를 확인했다. 김이태 박사의 징계, 이데올로기 기구로 전락한 KDI, 부활된 대운하 사업까지 이 우연들은 단순한 우연들의 열거가 아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와 더불어 보수양당체제가 깊이 연루된 (밥 제솝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연적 필연성’이 작동하는 정치경제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 결말에 있어서 백낙청 선생은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다! 신년 초 백 선생은 따뜻한 봄날에 노동자만의 운동이 아닌 시민들이 함께하는 춘투(春鬪) 가능성을 예측했었다.
 
그러나 더욱 뛰어난 작가가 있었으니 바로 이명박 정부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굳이 왜 ‘녹색뉴딜’을 강조하면서 지구온난화를 걱정한지 이제서야 이해가 됐는데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따뜻한 봄날은커녕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면서 거리로 나오기 좋은 날씨 때문에 제2의 촛불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켜질 것을 진작부터 간파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제2의 촛불 예측능력에 있어서만큼은 백낙청 선생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본다.

그렇다면 녹색뉴딜을 통해서 차가운 겨울을 되돌리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의 각고의 노력으로 추운 겨울이 돌아 올 때까지 집에서 <무한도전>이 재방송만 한다고 푸념만 늘어놓을 것인가? 대신에 MBC를 비롯한 언론노조들의 투쟁에 동참하러(물론 다른 불만사항들도 좋다) 광화문이나 여의도로 가기에는 거리가 멀다면 4대강 정비사업 각 추진지역에서 산책을 겸한 연대를 표하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예상보다 빨리 새로운 <무한도전>을 볼 수 있을 수도 있다. 진정한 결말의 그 끝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유재석의 목소리는 가물가물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예리한 예측대로 다함께 거리에서 “무~~~한! 도전!!”을 외쳐볼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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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09 [00:2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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