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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헌재', 다시 헌법재판소를 생각한다
[이태경 칼럼] 국민주권의 침해와 왜곡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태경
종부세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재판소와 국민주권 간의 관계, 헌법재판소와 다른 헌법기관, 특히 의회로 상징되는 대의기관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헌재의 결정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이 문제들은 헌법학계와 정치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긴절한 화두이다.
 
제왕적 헌재의 등장?
 
주지하다시피 헌법재판소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아들이었다. 9차 헌법개정시 헌법재판소를 헌법기관으로 헌법에 명기해 다양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수차례의 군사 쿠데타를 통해 헌정이 중단된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헌법질서를 수호할 기관을 따로 마련하자는 생각이 분명 작용했을 것이다. 아울러 위헌 심판 및 국가기관 간 권한 쟁의,정당 해산, 탄핵심판 등의 사안은 그 성격상 정치성이 강해 대법원으로 대표되는 사법부가 정치적 중립성을 가지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출범한지 만 20년이 된 헌재는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과 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으로 단숨에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이 되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분립이 아니라 행정, 입법, 사법, 헌법재판권력의 4권 분립이라는 주장도 한다. 이번 종부세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재의 결정은 헌재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참여정부 이래 국가의 주요의사를 결정하는 최종심급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제왕적 헌재'의 등장은 매우 징후적인 사건이다. 이는 국민주권을 실현할 대의제(代議制)기구인 의회와 대통령, 그리고 대의제 기구와 국민 간의 간극을 좁혀야 할 의무가 있는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며 이들의 빈자리를 헌재 등이 메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본격화라고 불러도 좋겠다.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되는 것이 심히 걱정스러운 이유는 무엇보다 이런 사태가 '대표와 책임의 원리'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지향하는 통치구조의 구성원리는 국민주권의 원리와 대의제의 원리이다. 즉 대한민국 헌법은 헌법 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해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가 국민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국민주권은 직접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예컨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를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국가의 주요한 의사결정을 그들에게 맡기는 대의제(代議制)민주주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실현된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투표 등의 방법으로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민주주의를 일부 구현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완할 수단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의 유일한 주권자인 국민은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자신들의 대표로 선출하여 권력을 위임하고 대부분 정당 출신인 국민의 대표들은 선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정당과 자신에 대해 심판을 받는것이다. 그런데 만약 '정치의 사법화' 혹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본격화하면 위와 같이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통해서 실현되는 국민주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거나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다. 신행정수도이전에 관한 특별법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위헌 결정이나 종부세법의 일부 위헌을 결정한 헌재의 판단이 바로 좋은 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압도적인 다수의 의결로 마련한 법률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간단히 무력화시킨 헌재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결정적으로 침해한 것이다.
 
국민주권의 침해와 왜곡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헌재가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모습들은 국민의 대의기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정치'가 사라진 자리를 국민이 뽑지도 않았고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는 '사법기구'가 대신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나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기초로 구현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요소일 뿐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 행사에서 소외되는 비극을 낳게 된다.
 
헌재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헌법적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헌재의 기능을 대법원이나 제3의 기구를 신설해 이관한다 해서 이런 사정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제왕적 헌재의 독주 혹은 '정치의 사법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모호하고 궁색하기는 하지만 정당정치의 복원과 대의기구의 정상적 작동 그리고 성숙한 국민의식이 유일한 해법이 아닌가 싶다.

정당이 국민과 대의제 기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여야와 대통령이 타협과 설득에 기반한 정치를 하며, 국민들도 문제만 생기면 헌재로 달려가 판단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정당과 대의제 기구들을 신뢰할 때 헌재의 전성시대는 마감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나 국가의 중대사를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기사입력: 2008/11/17 [11:16]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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