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IT사회문화미디어국제·과학여성환경·교육
전체기사 공지사항 사회단체알림마당 기고및토론방 편집회의실
편집  2019.10.17 [14:01]
최방식의국제뉴스레이더
공지사항
사회단체알림마당
기고및토론방
편집회의실
개인정보취급방침
대자보소개
광고/제휴 안내
기사제보
HOME > 최방식의국제뉴스레이더 >
동구밖 소나무와 재각, 그 가을의 전설
[포토에세이] 그 전설이 남겨준 빛바랜 사진 몇장 들고서...
 
최방식
가을의 전설입니다. 이제 막 철이 든 사내는 그 가을을 떠올렸습니다.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갑니다. 철지난 오두막은 굳게 잠겼습니다. 성큼 자란 대나무 숲은 의구합니다. 아랫목 온기는 사라진지 오랩니다. 어둡고 깊은 골을 막 벗어나 하얀 전설을 마주합니다.

사내가 고향을 찾았습니다. 늘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땅입니다. 가슴 속 깊이 꼬깃꼬깃 묻어둔 빛바랜 세월입니다. 막 꺼내드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부터 복받칩니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합니다. 동네 어귀 황금빛 들판에는 나락이 익어갑니다. 추산봉을 넘느라 지친 갈바람은 막 쉬어가려고 사내 곁으로 다가섭니다.

▲ 어둠의 골을 지나 하얀 전설을 찾았습니다.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세월입니다. 동네 어귀 소나무 일곱그루. 그리고 재각을 돌아 찾아든 내 고향. 대나무 숲은 그대로건만...     © 최방식

▲ '가을의 전설'이 펼쳐진 황금빛 들녘입니다. 저 큰 하늘 영상에 투영됐던 그 영화가 끝나고, 사내는 사진 몇 장 챙기고 돌아섰습니다. 다시 올 날을 기다리면서요.     © 최방식 기자
사내가 그 산골을 떠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일 겁니다. 큰 누나가 읍내에서 미용실을 하는 데 꼬마둥이를 전학시켰습니다. 고작 10리 길이지만 꼬마는 고향을 떠나는 게 무서웠습니다. 엄마 품을 벗어나는 게 왜 그리 두렵고 슬펐는지 모릅니다. 푸른 하늘 누런 들녘, 그리고 새털구름 모두 그대로이건만.
 
늘 그리워하던 아버지의 땅
 
전학 앞두고 꼬마는 말을 잃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가서 공부 잘하라고 격려해주실 때도 한마디 대꾸조차 못했습니다. 같은 반 계집아이가 예쁘게 장식한 꽃 편지를 건네 왔을 때도 꼬마는 그저 고개 숙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해 가을 꼬마는 고향을 떠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꼬마가 마을에 돌아온 건 중학교에 입학하고 입니다. 채 1년도 안 돼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니까 마을 친구들과 중학교를 달리하게 된 겁니다. 모두가 그 마을 학군으로 지정된 중학에 다니는데, 꼬마만 읍내 중학교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게 됐습니다. 그렇게 3년은 전설 속에 안겨 살았습니다.

▲ 언제나 사내의 가슴 속에 펼쳐진 들녘입니다. 사내는 늘 저 구름 위 뿔봉을 그리워했습니다. 하얀눈이 밤새 쌓이던 날 사내는 털신을 신고 저 산을 올랐습니다.     © 최방식 기자

▲ 탐스런 고향입니다. 그해 가을 같은 반 계집아이의 예쁜 편지를 받아 들고서도 사내는 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전설을 떠나는 두려움에...     © 최방식 기자
꼬마는 이 마을에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를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고, 누나가 몰래 마련해준 등록금을 받아 도회지 학교에 가게 된 겁니다. 방학 때나 와 있을 뿐 사실상 이 마을에 살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꼬마는 그 고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시간이 생기면 전설을 찾곤 했습니다. 명절 때면 길이 막혀도 선물을 사들고 들어왔습니다. 귀소본능이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그 하늘과 들녘, 그리고 높디높은 저 봉우리 넘어 살랑살랑 불어오는 마파람이 그립고 또 그리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꼬마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아흐레 전 쯤 도회지에 나와 사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유골을 들고 고향마을을 찾았습니다. 사립문 넘어 아련한 곳, 산 귀퉁이에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지친 몸을 끌고 사내는 도회지로 왔습니다. 그날, 기일이 다가오면 한 해 한 번 아버지를 뵈러 왔습니다.

▲ 쪽빛 하늘은 전설의 영화를 상영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갈바람에 살랑이며 어서 오라고 속삭입니다.     ©최방식 기자

▲ 가을의 전설은 사내에겐 언제나 그리움입니다. 언젠가 걸었던, 언젠가 한번 봤던, 그 길 그 연인이 있으니까요.     © 최방식 기자
그것도 몇 년 전부턴 잘 지키지 않습니다. 그저 여름휴가 때 한 번 오면 성묘랍시고 지나쳤습니다. 올해는 여름휴가도 기일 성묘도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가을이 완연한 어느 날 뒤늦게 아버지 묘소에 들렀습니다. 그리곤 묏등에 앉아 사내는 어린 시절 전설을 떠올렸습니다.

트리스텐이었던가요? 전쟁이 지긋지긋해 질 즈음 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시골 한 마을로 사내가 찾아든 게. 그 평화롭고 고즈넉한, 가을 산야가 울긋불긋한 곳에 찾아든 예쁜 여인 한명. 엄마를 떠나보낸 삼형제는 앞 다퉈 이 여인을 흠모하지만 여인의 마음은 가을에 태어난 전설의 사내뿐입니다.

전쟁터에서 동생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낸 트리스텐. 형이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그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만 사내. 아픔을 뒤로하고 고향을 떠나지만 사내의 마음속엔 언제나 그 고향, 그 전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트리스텐. 남은 두 형제사이에서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 여인. 사내는 그 가을에 곰과 사투를 벌이다 죽어갑니다. 전설 속으로 그 품에 안겨 편히 잠듭니다.
 
▲ 고창 모양성입니다. 사내의 전설 속에 늘 자리하는 철옹성이지요. 성도 가을 색에 취해 고색창연합니다.     © 최방식 기자

▲ 등성이 넘어엔 사내의 전설이 있습니다. 성곽 너머 어둡고 깊은 골을 지나면 시작되는 하얀 전설입니다.     © 최방식 기자

묏등에 앉아 떠올린 하얀전설
 
사내가 황금 들녘 한 가운데 카메라를 들고 섰을 때 그 영화는 막 끝났습니다. 하늘 위 넓디넓게 투영됐던 은막을 걷으며 갈바람이 한 줄기 사내의 목덜미를 간질입니다. 사내는 오래 도록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동구밖 소나무. 어귀의 재각. 흔들리는 대나무 숲. 그리고 벌판 너머 아른 거리는 뿔봉. 그토록 아련하던 전설의 세상.

뒤 늦게 아버지의 땅에 들른 사내에게 그 하늘 그 들녘은 멋진 영화 한 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동네 어귀 어딘 가에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 전설이 사내에게 남겨준 사진 몇 장 들고서요.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기사입력: 2008/10/18 [13:57]  최종편집: ⓒ 대자보
 
관련기사목록
[관광] 코토쿠인 대불과 조선불상 모신 관월당 김철관 2019/06/10/
[관광] 일본 에도시대, 검문소 '세키쇼' 어떤 곳을까 김철관 2019/06/10/
[관광] 일본 카마쿠라 대불 눈길 김철관 2019/06/07/
[관광] 미리 가본 북한 10대 관광지…'국내관광'의 팽창 김송이 권희은 2018/05/10/
[관광] 설악산 깊숙이 자리한, 영험있는 절을 아시나요? 김철관 2018/04/20/
[관광] "총 없는 한국"…美 총기사고 계기로 한국 주목 장규석 2018/02/20/
[관광] 숙박·항공 예약 이용경험 2위 호텔스닷컴, 1위는? 이형호 2018/02/20/
[관광] 건축가 눈으로 본 108산사 풍경 김철관 2018/02/05/
[관광] 단양온달문화축제 개막, 다양한 고구려 문화 선보여 김철관 2017/09/29/
[관광] 두물머리 세미원, 연꽃 만개 김철관 2017/07/22/
[관광] EBS '숨은 한국 찾기' 단풍놀이 소개 김철관 2016/11/05/
[관광] EBS '추억 속 낭만여행, 옥천' 조명 김철관 2016/10/29/
[관광] 국립공원 소백산에서 열린 특별한 힐링콘서트 김철관 2016/05/22/
[관광] 기타 치고 노래부르고...수락산장 음악회 눈길 김철관 2016/05/05/
[관광] 담양 천년 숲 대나무, 선비의 올곧은 기개 김철관 2015/12/06/
[관광] 강원도 화천이 왜 좋을까 김철관 2015/02/09/
[관광] 화천에는 산천어축제만 있다? 아니 그 이상의 것! 김철관 2015/01/20/
[관광] 지중해 그리스-터키 고대문화, 이 책 보면 안다 김철관 2014/06/23/
[관광] '금오신화' 김시습의 삶과 수락산의 정취 김철관 2013/10/19/
[관광] “은행나무숲 보는데 무슨 돈을 내고 봅니까?” 이유현 2013/10/04/
연재소개 전체목록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20만 해외입양인’ 생채기치유 난장 열린다
'금융쓰나미' 동아3국, 수출의존 '수렁'속으로
부시 ‘신발 모욕’, 아랍세계 "속이 시원하다" 환호
美 진보진영, 오바마 ‘중도노선 조각’에 불만
소통혁명, ‘디지털 오바마’ 미디어세상 바꾼다
오바마 미대통령 당선과 지구촌의 희망읽기
“오바마 뽑았으니, 체면치레 좀 했다”
구제금융 7천억불, 월가 임직원 보너스는 700억불
동구밖 소나무와 재각, 그 가을의 전설
미 대선, 2차토론 앞두고 후보간 인신공격 난무
스티글리츠 교수 “오바마 승리, 경기후퇴” 예고
볼리비아 정정불안, 긴급 남미정상회의 열려
‘페일린 스캔들’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 강타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 수락일성 “변화”
서방언론, MB종교편향 불교시위 대서특필
나이키 Vs 아디다스, 무대밖 올림픽 경쟁 더 화끈
베이징올림픽에 맞선 ‘티벳독립 촛불’ 활활
“베이징올림픽, 미국은 페더러 중국은 나달”
“암흑 뚫는 창끝이 되어 마침내 새벽 맞으리”
버마 ‘8888민중항쟁’ 20주년 시낭송회 열려
최근 인기기사
  개인정보취급방침대자보소개광고/제휴 안내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우) 120-093 서울시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80 제일빌딩 별관 4층 TEL: 070-4411-5452ㅣFAX: 02-6280-5462 (web@jabo.co.kr / c.p: 010-2249-9446)
대자보ⓒ1998-2017 ㅣ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133 2005.11.11ㅣ 발행인 겸 편집인 : 이창은,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경주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대자보' 가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센스 2.0 : 영리금지 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