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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시대의 종언-진보 사상을 재건하자
[진단과 대응]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에 맞설 진보사상의 재건 시작되야
 
홍기빈   기사입력  2007/07/14 [16:39]
90년대 들어 냉전의 종언과 함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구호는 온 세계 그리고 우리 나라에도 울려퍼졌다. 그 뒤에 찾아온 것은 “상식”의 시대였다. 자본과 군대를 앞세워 전 지구를 재구조화하기 시작한 전 세계의 지배 계층들도 자신들의 행동의 타당성을 “상식”에의 호소라고 우겨댔다.
 
100년을 내려오며 화석화되어버린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체계에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기대어 그 “과학성”과 정당성을 뽐내다가 소련의 몰락으로 하루 아침에 초상집 강아지 모습이 된 어제의 좌파 세력들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를 슬그머니 “상식”에의 호소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 형성되어 온 소위 “쿨(cool)한 진보 담론”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확실히 종교적인 신념 체계로 사람들의 머리를 “정리”시켜 판에 박힌 이론과 실천의 틀에 동원하기 위한 “정치 신학”으로서의 좌파 이념은 끝장이 났고 또 이는 슬퍼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과연 “상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90년대 이후 온 세계와 우리 나라를 휘젓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재구조화는 결코 알량한 상식이나 직관 따위로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 금융, 노동과 같은 경제적 분야는 물론 환경, 보건, 연금, 교육과 같은 사회적 분야를 거쳐 통일, 안보 등의 국제적 문제 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관과 미적 감각까지 지금 세계 자본주의는 전면적인 재편을 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한 메카니즘이 있고, 그것을 이념이 아닌 “글로벌 스탠다드”로 치장하는 사상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는 지배 세력의 구체적인 정치적 행동 계획이 있다.

이 톱니처럼 맞물려 있는 지배 세력의 총체적인 담론은 그 애매모호한 “상식” 따위로 덤벼들어봐야 이빨 자국조차 남지 않을만큼 견고하고 복잡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해체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메카니즘을 분석할 수 있는 과학적 정치경제학과 사회 이론, 우리의 진보적 가치를 수미일관한 철학으로 내걸 수 있도록 해줄 사상,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사람들 모두가 능동적인 주체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할 구체적 행동 계획과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사구시의 연구와 구체적 현안을 놓고 오가는 알맹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한미FTA의 문제를 지구정치경학학적으로 풀어놓은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집접소송제     ©녹색평론, 2006
이는 물론 온갖 지루한 데이터와 자료와 끝없는 토론을 뚫고 나가야 하는 땀투성이 작업이다. “진보 담론”에서 유행하는 책 몇 권만 읽으면 맘에 안드는 세상사에 대해 끝없는 비판의 언설을 쏟아낼 수 있는 “쿨”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 정교한 신자유주의의 현실 구조와 맞붙기 위해서 정작 필요한 것은 그 땀냄새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새로운 현실에 새롭게 맞붙는 고통스런 작업을 비겁하게 회피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낡아버린 예전의 좌파 이론으로 도망가든가 아니면 누구도 시비걸 수 없는 물에 물탄 술에 술탄 “상식적 진보 담론”으로 도망가지 않았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진보 세력이라고 하면 출구도 나오지 않는 구닥다리 비판을 아직도 풀어놓는 이들이든가 그저 좋은 이야기나 풀어놓으면서 정작 사람들의 고통의 중핵을 이루는 사회 경제적 현실에 대해서는 침묵해버리는 “패셔너블한” 지식 분자이든가로 심드렁하게 여기게 되지 않았던가?
 
정밀한 사회 이론과 인간의 정신을 깊게 울릴 수 있는 사상과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행동 계획을 갖춘 진보 사상의 재건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죽어버린 옛 이론으로든 공허한 상식으로든 도망갈 필요가 없다. 2차 대전 당시 그리스의 혁명가였던 스티나스(Stinas)는 파시스트들과 싸우는 한편 똑같이 폭압적이었던 공산주의 세력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고 대담하게 진보 운동의 새로운 출구를 열어나가고자 했다.
 
“혁명가의 생각과 행동에는 그 어떠한 터부도 없다”.
 
지금 그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 본문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330호]에도 게재됐습니다. 
*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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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14 [16: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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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 2007/07/27 [15:28] 수정 | 삭제
  • 홍기빈 선생의 글에 대한 '이론주의'적 오독을 낳았나보군요. 제 판단에 홍 선생은 헤겔주의적 이론주의를 옹호한 것이라기보다는, 위의 댓글처럼 일종의 '이론회의론'에 빠진 나머지 모든 '분석' 자체를 방기한 채 현실의 경과에 그냥 압도되어버린 현재의 '비지성주의'나 80년대식의 지적 교리를 관성적으로 답습하는 '게으름'을 비판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 neung1an 2007/07/14 [20:57] 수정 | 삭제
  • 지식인들이...
    자신의 이론을 통해서...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말이예요...
    이제 그만요...
    이제 그만... 지식인들이 자신을 더 이상 역사의 주체로 착각하지 말았으면 싶어요...
    지식인들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착각은...
    부르주아 혁명기까지만 유효한 생각이죠...
    지식인이 할 수 있는 건... 다만 역사를 기록하는 일일 뿐이죠...
    지식인이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좀 곤란한 것 같군요... ^^
  • neung1an 2007/07/14 [20:51] 수정 | 삭제
  • 맑스는 이런 물음을 제기하죠...
    ㄱㄴㄷㄹ과 ㅏㅑㅓㅕ의 조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이론'이...
    과연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거죠...
    이와 같은 발상은 '늙은' 헤겔두 했죠...
    그런 헤겔의 법철학적 질서에 대해서 맑스는 강경한 어조로 반박을 했구요...
    '이론'에 의해서 세계를 창조하려는 건...
    부르주아지들의 전형적인 발상이죠...
    '이론'은 다만 일시적이구 유동적인 것이라구 맑스는 말하죠...
    그 때문에...
    '이론'이라는 건... 그것이 채 굳어지기두 전에 모독된다는 말두 맑스가 했구요...
    '이론'을 숭배하기 시작하면...
    '이론'이 인간을 억압하기 마련이죠...
    '이론'이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면... 사람이 '이론'에게 봉사하게 되는...
    그런 전도된 현상이 일어나게 된답니다...
    구 소련 북극곰들이 숭배했던 헤겔주의적 사고의 실패상황으로부터 그 아무것두 배우지 못한 듯한 얘기로군요...
    이 기사는 아직두 80년대의 헤겔주의적 발상의 관성을 버리지 못한 관념 좌파의 발상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론'은 다만 '현실'을 '과학적으로' '반영'하기만 하는 거예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주는 '거울'의 역할이면 충분하죠...
    '진보'가 주인이라면...
    '진보사상'은 '진보'의 노예죠...
    자꾸만 '진보사상'을 주인으로 만들려 하다가는...
    '진보'가 '진보사상'의 노예가 되구 만답니다...
    이론가들의 '이론'이 관찰의 대상으로되는 까닭은...
    그 '이론'이라는 '거울'에 비친 '현실'을 제대로 보고자 함이죠...
    그래서 루카치는 요런 얘길 남겼죠...
    '이론'이 비록 '환상적 현상형태'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론'은 여전히 '객관적 현실'의 '과학적 반영물'이다...
    라구요...
    대부분의 우파적 이론가들은...
    '현실'을 '이론' 속으로 우겨넣을려구 하죠...
    하지만... 과학적 맑스주의자는...
    '이론'을 다만... '현실'에 봉사하는 도구로 볼 뿐이랍니다...
    '이론'이 세계를 창조한다구 우기게 되면...
    필연코 헤겔의 법철학적 질서를 숭배하게 된답니다...
    '현실'이 '이론'으로 하여금...
    ㄱㄴㄷㄹ과 ㅏㅑㅓㅕ의 조합 가능성을 허락할 뿐인 거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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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