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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ture Korea의 흥망과 황우석 파국 이후!
[홍기빈 칼럼] '국익' 여론은 기득권층의 지배음모, 되풀이 안되게 해야
 
홍기빈
1. “남대서양 주식회사”
 
자본주의의 본질을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실제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특히 성공한 나라일수록 국민 국가가 국가 기구와 시민 사회 및 국민 전체가 잘 뭉쳐진 하나의 기업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뭉침’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를 우리는 ‘성공적인 정치 경제 모델’이라고 부르며, 이를테면 80년대까지 고도 성장의 맹위를 떨쳤던 소위 ‘일본 주식회사’(Japan Inc.)와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 갖추어진 하나의 모델을 이루는 대신, 나라 전체가 노다지와 같은 초과 이윤 - 시쳇말로 ‘대박’ - 을 쫓는 ‘벤처’ 기업과 같이 되는 때도 있고, 이 경우에도 국민 국가는 국가 기구 시민 사회 국민들 전부가 혼연일체로 똘똘 뭉치는 위력을 보여준다. 1720년 영국에서 벌어졌던 경우가 그 한 예가 될 것이다. 당시의 영국은 그야말로 ‘벤처 창업’의 전성시대였다. 타자기나 기계 피아노와 같은 비교적 평범한 발명품부터 시작하여 ‘영구 기관’(!)이나 ‘기독교도와 회교도에게 각각 다른 탄환을 쏠 수 있는 기관총’ 등등 상상력 넘치는 기획들이 창업 자금을 댈 주주들을 찾아 헤메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당시의 최고의 성공작은 바로 ‘남대서양 주식회사(The South Sea Company)’였다.
 
할리 백작과  사업가 존 블런트 등이 뭉쳐 시작한 이 회사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여파로 엄청나게 불어난 영국 정부의 부채를 떠안는 대신, 브라질 이외의 남아메리카 지역의 무역을 독점할 권리, 또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주식을 발행하여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특권을 정부로부터 얻어냈던 것이다. 이 회사는 자신들이 따낸 이 두 가지의 특권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일약 주식 시장 최고의 별로 떠올랐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도 이 회사의 사업 계획이 대단히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당시의 남미 대륙은 스페인의 현실적인 지배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발행한 그 지역의 무역 독점권이라는 것은 좋게 말해서 휴지쪽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갈브레이스의 표현대로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남대서양 주식회사는 드디어 1720년 정부 부채 전액을 인수하였고 거기에 맞추어 대규모 신주를 발행한다. 정부가 밀고 고관대작들이 대거 주주로 참여하는 데에다가 주가는 날로 치솟는다.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무능력자이거나 반역자이다. 그리하여 1월에 128파운드였던 주가는 7월이 되면 1000파운드에 육박하지만, 마침내 대폭락이 시작되어 12월에는 다시 124파운드로 되돌아오고 만다.
 
2. "Venture Korea"
 
현재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줄기 세포 허브’의 꿈은 이 남대서양 주식회사와 같은 Venture Korea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이번 사태에서 보여진 수 많은 쟁점들 -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 일반 국민들 사이에 나타난 묘한 애국주의와 ‘국익’ 이념의 창궐, 과학의 위기 등등 - 은 따로따로 보아질 것이 아니라 이 Venture Korea의 흥망이라는 큰 틀에서 보아야 그 각각의 의미가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현재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경제적 위기라는 배경을 기억해야 한다. 생산 확장 - 수출을 통한 고성장 - 고용 확대라는 순환 구조를 빌어서 정당화되던 경제 체제는 사라지고, 고성장 - 높은 실업률 - 경기 침체라는 새로운 틀로 이행하고 있는 와중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외의 대기업과 금융 자본에게 경제를 조직할만한 주도권을 ‘세계화’나 ‘시장 개혁’ 등의 명분으로 넘겨준 국가로서는 이렇다할만한 대안적인 산업 정책을 제시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사실상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는 위정자들에게 있어서 이 몇 년째 계속되는 경제 침체는 대단한 부담이었고, 이는 정치적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지배층 전반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따라서 ‘세계화’, ‘시장’, ‘경쟁력’ 등과 같은 현재의 지배적 경제 담론의 꼭지말들과 어우러지면서도 ‘미래의 비전’으로서 국민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음은 분명하다. ‘미래의 세계 의료 시장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황우석 박사의 줄기 세포 연구와 그를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생명 공학 기술의 중심지로 만들어내겠다는 ‘줄기 세포 허브’의 전망은 이러한 필요에 나무랄 데 없이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밝혀지고 있듯이, 황우석 박사의 과학적 성취도와 기술적 능력의 실체에 대한 냉철한 감정 평가는 정부에서도 정치권 전체에 걸쳐서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1720년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미래의 경제 강국으로서의 한국의 비전을 보여줄 필요에 쫓기는 정치인들로서는 여야와 보수 개혁을 가릴 것 없이 황우석 박사를 하나의 “아이콘” 즉 성상(聖像)으로 만들고 그 앞에 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 년전의 벤처 붐을 겪으면서 이미 다음과 갈은 점은 국민 상식이 되고 말았다.
 
벤처 창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소위 “원천 기술”이 아니라 “펀딩”과 “바람 넣기(hype)”이다. 실제  본래의 기술이라 할 것은 아주 알량한 아이디어에 불과한 경우가 다수이며, 정말 필요한 것은 최초의 펀딩을 따내고 그것을 레버리지로 사용하여 다른 펀딩을 계속 끌어오는 것이다. 적은 돈이라도 명망있는 기관으로부터 펀딩을 얻어오면 이 일은 크게 쉬워진다. 둘째,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 창업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정말로 세상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권위있는 관계 기관과의 관련이라든가 언론 매체의 보도 등이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펀딩”과 “바람”의 두 가지를 갖추는 것에 일단 성공하면 그 다음은 눈덩이처럼 스스로가 스스로를 불리는 자동적인 과정으로 들어가면서 사실상 “현실”이 되어버린다.  
 
국민 국가라는 제도틀이 대단히 성공적인 벤처 기업의 모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국민 국가는 본질적으로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의 여론을 일으켜서 그것을 기초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내는 장치이며, 거기에 필요로 되는 각종 제도와 기관 기구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황박사에게 온갖 월계관과 찬사를 갖다 바친다. 언론은 근거도 의심스런 ‘33조의 기대 수익’이니 ‘다시 춤추는 강원래’ 등의 온갖 언사들을 사용하여 “바람”을 잡는다. 국민 국가의 볼모인 국민들은 별다른 도리 없이 황우석 박사를 이순신 장군으로 착각하게 되며, 그가 성공하면 자신들도 골고루 “대박”을 맞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이렇게 ‘국익’으로 합의된 사항이므로 정부는 아무런 저항없이 무제한의 지원과 함께 몇 백억의 시초 펀딩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국민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강력한 벤처 기업을 이루면 세계적으로도 여기에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어서 이들이 곧 호응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이루어낸다. 이제 황우석 박사의 노벨상 수상이 세계 여기저기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꿈이 현실이 되는 찰라였다.
 
3. 파국 이후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면, 황우석에 환호하던 대다수의 마음에 깔린 것이 과학 진보에의 갈채라든가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걱정과 같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국민적으로 조성된 “대박” 심리였다는 것은 달리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융 시장의 심리학이 다행증(多幸症: euphoria)과 공황(panic)과 우울증을 오가는 정신분열적인 것이라는 점도 상식적인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과학적 연구의 절차와 원칙, 생명 연구의 윤리, 독립적 언론의 취재와 보도, 정부의 합리적 감사와 감시, 그 밖에도 무수한 민주 사회의 원론적인 상식이 그 ‘국익’을 앞세운 비합리성에 얼마나 가볍게 무시당하는지를 똑똑히 목도하였다. 이 비합리성과 부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는 이 Venture Korea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 황우석 본인의 도덕성이나 비행 따위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또 이 문제를 과학계나 언론계 정치계 등 개별의 사회 영역 하나의 문제만으로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고민의 초점은, 명예와 성취에 눈이 먼 일개 과학자 개인에게 어째서 과학계 언론계 정치계 모두 그리고 나아가 다수의 평범한 국민들까지 전부 다 휘둘리게 되었는가라는, “Venture Korea의 병리학”에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오게 된다. 
 
과연 우리는 Venture Korea를 필요로 하는가?
 
황우석 박사를 앞세운 ‘바이오 벤처 코리아’는 일단 좌초된 듯 하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 본 바 그것을 낳았던  대한민국 정치 경제의 현재 상황과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의 지배층들은 또 다른 벤처 프로젝트를 내걸고 ‘국익’의 이름으로 나라 전체를 휘두르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꼭 특정 인물이나 첨단 기술을 내걸고 벌어질 이유는 없다. 그것은 국토와 지도를 바꾸어 놓을 대규모 건설 공사일 수도 있고, 사회적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대규모의 기업 지원 정책일 수도 있다.
 
단 그것은 이번 황우석 박사 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온갖 현란한 수사와 천문학적인 수치들로 치장한 채 세계화와 시장 경쟁의 시대에 대한민국에게 “대박”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의 방안이자 “국익”이라고 제시될 것이며, 국가 차원은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물적 심적인 지원을 호소하게 될 것이다.
 
그 장밋빛 전망에 취한 사람들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성적으로 접근할 것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또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입을 막으려 들 것이다. 국민 국가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경제 성장에 동원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흔히 대극점에 위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자유주의”와 “민족주의”가 얼마든지 금슬좋은 부부로 새롭게 결합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서두에서 우리는 나라가 꼭 ‘벤처 기업’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정치 경제 모델의 모습을 갖추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았다. 일본 주식회사를 답습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안정성을 가져다 줄 Venture Korea 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홍기빈은 진보적 소장학자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며 캐나다 요크대에서 지구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와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 <미국의 종말에 관한 짧은 에세이>(개마고원 2004),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2006) 등 경제연구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사입력: 2005/12/27 [17:33]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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