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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국주의 영화 뿌리는 ‘주신구라’
[책동네] ‘일본영화와 내셔널리즘’, 영화로 본 일본 군국주의 형성과 발전
 
황진태   기사입력  2005/12/13 [11:04]
여전히 꿈틀대는 일본군국주의를 경계한다
 
책세상문고시리즈 104번째로 <일본영화와 내셔널리즘>(김려실 지음)이 발간되었다. 제1권인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소장학자의 번뜩이는 옥고들을 찾아서 독자에게 제공하는 ‘헤르메스’ 도서출판 책세상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일본 영화의 변천을 통해 일본 내셔날리즘의 형성과 발전을 분석한 '일본영화와 내셔날리즘'     © 책세상, 2005
이번 책은 기존 파시즘 비평의 소재인 영화분야에서 레니 슈펜스탈을 기점으로 하는 독일영화 범주를 벗어나 한국과 좀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영화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고판이라 책 두께도 얇고 여기서 본문을 직접 소개하면은 독자들이 읽을 맘이 안 들 거 같아서 인용을 최소화하고 필자가 읽고 난 후에 번뜻이는 생각 몇 가지만 언급하면 이 서평의 수명은 끝나겠다.
 
이 책은 우선 일본 내셔널리즘 영화의 기원을 ‘일본의 춘향전’이라고 불리는 ‘주신구라’의 영화화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주신구라에 주목한 연유는 이 영화에서 나오는 사무라이들의 무사도를 “근대 국가가 성립되면서부터 계속해서 외국과 전쟁을 해온 일본에서 무사도는 군국주의적 도덕률로 변용되었고, 무사도의 법도는 일본 군인의 행동강령으로 관습화”(p.22)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주신구라를 소재로 한 영화의 ‘연도별 제작편수 통계’를 참조하더라도 1908년부터 미국 점령기 전까지 총 70편이 제작되다가 미국점령기에 0편에서 이후 점령이 끝난 1952년 한해에 다시 4편이나 제작된 사실에서 군부의 주신구라의 유용성을 주시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군인들 앞에서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의 ‘희극에 가까운 비극’은 주신구라의 최신판이다.
 
저자의 흥미로운 연구 중에서 ‘제 4장 쇼와(召和 1925-1988 일왕의 통치시기) 여배우들의 역할 분담’을 살펴보자. 이 서평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기존의 파시즘 영화 연구가 독일에 쏠려서인지 독일 여감독 레니 슈펜스탈과 함께 독일 출신의 미국배우 디트리히가 많이 거론되었다. 이 배우를 생각하면서 4장을 읽어보았다. ‘서민적 현모양처’라는 다나카 기누요, ‘영원한 성처녀’ 하라 세츠코, ‘대동아공영권의 디트리히’라는 섹스심벌, 리 코우란 등 이 세 배우가 대표적인데 여기서 리 코우란의 전후 활동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여러 국책영화에 동원된 것에 대해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과거에 대한 리 코우란 자신의 죄책감이 작용했”(p.120)기 때문에 텔레비전 사회자로 인권문제, 환경문제 등의 이슈를 제기했었고, 1991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용서를 빌었다. “전쟁에 참가한 수많은 일본 남성은 지금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는 것인가.”라는 그녀의 비판은 파시즘의 여진(餘震)에서 벗어나려는 뜨거운 몸부림으로서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사회의 어두운 현실태에서 희망의 빛을 밝혀준다.
 
다음으로 본서의 제목인 ‘일본영화의 내셔널리즘’의 핵심인 대동아공영권 시기 영화를 다룬 3장을 살펴보면 한국보수가 북한이 내세우는 ‘민족공조’라는 단어를 한미동맹을 무력화시키는 고도의 선전술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의 작동방식과 비슷하게 일본의 ‘내선일체’는 “문자 그대로라면 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 실상은 내선일체 영화에서조차 반어적으로 드러나듯, 조선과 일본의 상호 동화가 아니라 조선인에게만 요구된 차별 원리였다.”(p.75)  이러한 내선일체를 합리화하는 대동아공영권 선전영화에 허영, 최인규 등의 친일영화인이 동원되었다. 이들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본 책을 통해서 직접 접해보고, 여기서 필자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한국영화측면비사>를 저술한 친일영화인 안종화에 대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비판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 영화에 대한 회고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연예계 가쉽과 같은 당시의 변사, 배우, 제작자들의 시시콜콜한 뒷이야기도 재미있게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을 비롯한 그 시대 영화인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일제의 탄압과 강제에 의한 것으로 아주 짧게 기술하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있다.”(p.76~77)
 
소스의 ‘선택’을 통한 왜곡방식, 마치 한 보수신문이 자신의 일제 찬양 행적 사료는 은폐하고, 당시 시류가 폐간되면 독자가 애국신문으로 알아준다는 장사치의 논리로 폐간되고서는 이를 독립운동으로 둔갑한 방식과 비슷하지 않은가. 카멜레온과 같은 친일행위의 미메시스다!
 
이들 영화가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효력이 말소된다면 그저 영화사의 한 헤프닝으로 넘어가겠지만 지금 일본은 1급 전범이었던 도조 히데키의 이름을 딴 ‘네오도조’란 또 다른 탁류가 발생하여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우익만화 <전쟁론>이나 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 등의 꼴통보수들이 판을 치고, 역사교과서로 독도로 시비를 걸고 있다.
 
저자는 과거 80년대 한국의 일본 쫓아가기의 새로운 버전을 촉구한다. 일본의 우익 꼴통 짓거리가 이 만큼 앞서(?)가는 데 우리의 비평과 대처자세는 어디서 뭐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문고판인데 정말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이만 줄여야겠다. 소장학자가 고생해서 쓴 책이니만큼 직접 구입해서 읽어 보시라. 마지막으로 몇 마디만 더하자면 얼마 전 일본 야마가타 다큐 영화제에서 재일동포 영화인들의 영화가 소개되었다고 한다.(시사저널 2005.11.01참조) 앞서 소개했던 허영은 선전영화를 제작한 친일영화감독 ‘히나쓰 에이타로’란 딱지가 있지만 해방 후에는 귀국하지 않고 인도네시아로 가서 인도네시아의 독립투쟁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는 등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독립운동의 영웅 ‘후융’이란 이름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가히 역사의 역설이고, 그의 생애야 말로 영화 한편이리라.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게 비판의 척도를 어디에 둘지 난감한 경우를 맞닥뜨리지만 안종화의 사례처럼 친일행적을 은폐하여 과거를 망각하고, 미래를 논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일본이 한일정상회담에 주장하는 단골 멘트가 무엇이던가.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 아니던가. 최근 APEC 회담에서 망언으로 일본이 여전히 무지몽매의 자세를 보여주었듯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는 이 나라 몽유병 환자들의 꿈을 확실히 깨워줄 필요가 있다. 최근 이 나라는 오랜 염원이었던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하는 보통국가화의 꿈을 이룰 거라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발터 벤야민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보았던 시각에 대해서 이후 나치의 선동전술의 일환으로 전락한 영화로 인하여 그 시각이 폄하되었지만 역사의 올바른 나침반을 향하게 하기 위해서 영화가 모든 관객이 평론가가 된다는 벤야민의 긍정적인 시각을 이 서평을 쓰는 지금 긍정하고 싶다. 독자들에게 본 책의 일독과 진전된 독자들에게는 김용우의 <호모 파시스투스>와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겹쳐 읽기를 추천한다. /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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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2/13 [11:0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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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지랑 2005/12/13 [13:17]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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