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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내용등급제와 표현의 자유
 
이동연   기사입력  2002/06/17 [19:24]
21세기 정보강국을 외치며 인터넷 상용화의 위대함을 역설하던 국민의 정부가 마침내 인터넷을 대대적으로 검열·통제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전기통신사업자법'을 통해 인터넷에서의 정치적 비판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표현들을 '불온통신'으로 규정하더니, 작년 11월 1일 '정보통신이용촉진등에관한법'인 속칭 '인터넷내용등급제' 시행을 관철시켰다. 97년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이 기본 축이 되고,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음반비디오및게임에 관한 법률'이 외각에 포진하면서 인터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종 커뮤니티를 청소년유해사이트로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바야흐로 사이버공간에서의 본격적인 문화전쟁, 검열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는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인터넷 음란물의 홍수에 빠져있는 우리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민간 자율등급제이며, 청소년유해매체 표시 권고는 인터넷내용등급제와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이 말대로라면 행여나 청소년들이 자기 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음란사이트를 즐겨찾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학부모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난 한해 동안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정통윤의 인터넷네용등급제 조치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한 것이 어색하다못해 엄한 생고생으로 보일 법도 하다.  

정통윤의 청소년사랑이 진실로 순수하고 애절하면 그나마 밉지나 않겠지만, 사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인터넷내용등급제는 청소년보호를 명분으로 이른바 '사이버공간 길들이기'의 국가 통제전략이 숨어있다. 나는 정통윤의 이러한 전략을 세가지로 말하고 싶다. 첫째는 인터넷내용등급제의 기술적 핵심에서 드러나는 바대로, 결코 자율적이거나 완벽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사이트가 청소년에게 유해한가의 여부를 '전자적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란물차단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이 프로그램들이 이미 학교나 공공도서관, PC방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도록 되어 있다.

즉 인터넷의 공공 접속점들을 사전에 통제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은 전적으로 기술적 여과과정만 거치는 바, 특정한 표현물에 대한 문화적, 미적 판단들이 거세될 위험성이 높다. 쉽게 말해 기술적 과정은 포르노물의 성기와 김인규교사 사진의 성기를 구별할 수 없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특정 사이트의 내용들이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판단을 정통윤의 몇몇 직원들이나 소속 위원들이 일방적으로 내린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작년 탈학교아이들의 모임인 '아이노우스쿨'이나, 동성애자 사이트인 '엑스존'이 정통윤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서 폐쇄를 당하거나, 청소년유해매체 사이트로 표시하라는 강제명령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통윤의 업무는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넘어서 인터넷상에서의 급진적인 정치적, 사상적 표현을 통제하는 일도 함께 맡고 있다는 점이다. 소위 '불온통신'에 대한 통제임무를 맡은 정통윤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우려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인터넷내용등급제는 결국 국가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인터넷 상의 모든 표현행위들에 대해 기준과 가치를 만들고 그에 반하는 내용들은 규제하겠다는 기본 취지를 가지고 있는 바, 명백하게 국가적 검열행위에 해당된다. 정통부는 정통윤이 민간자율기구라고 하지만, 엄연히 매년 30억 원 이상의 국가 예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단지 민간의 자율적 등급매기기에 도움을 줄 뿐이라 하지만, 특정 사이트에 대한 폐쇄명령을 내릴 수 있는 행정기구이다.

정통윤과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의 의견과는 달리, 나는 인터넷내용등급제와 정통윤의 업무들이 분명하게 사이버공간에서의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검열제도이자 기구라고 말하고 싶다. 인터넷에 대한 국가의 반강제적 규제는 인터넷의 기본 성격을 위반하는 국가주의적 발상일뿐만 아니라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표현의 자유 침해를 좀더 강력하게 수행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요컨대 국가보안법이 이념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첫 번째 단계의 국가주의적 검열이라면, 청소년보호법은 개인의 성적, 정서적 윤리를 침해하려는 두 번째 단계의 검열이라 할 수 있고, 인터넷내용등급제는 바로 개인과 개인의 커뮤니티를 절단시키려는 세 번째 단계의 검열이라 할 수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커뮤니티의 자유로운 흐름들이 국가에 의해 차단될 수 있다는 것은 가설만으로도 공포스러운 것이며, 단지 음란정보의 유통 규제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정보화 시대 생산수단에 대한 국가의 특정한 독점을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년보호법과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어보이며, 이것들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낳는지에 대해 무감각하다. 학부모들은 청소년을 성매매와 음란유통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되려 반문하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인터넷 사이트에 ?라는 전자적 표시만 하는 게 무슨 큰 문제냐고 의아해 한다. 이런 식이라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음란한 자식들이던지, 성도착증에 걸린 프로이트의 환자들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 시민들이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나 사이트라는 말 자체를 자명한 것으로, 기정사실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무엇이 청소년에게 음란하고 유해한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누가 판단하는가? 김인규교사의 사이트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누가 결정하는가? 자퇴생들의 모임인 '아이노스쿨'이 어떤 근거로 청소년유해사이트인가? 그리고 동성애자 사이트인 '이반시티닷컴'이나 '액스존'을 누가 퇴폐 2등급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인터넷내용등급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국가가 등급을 결정하는 기준과 상식과 절차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며, 이것이 결국 개인의 표현의 자유, 정보공유와 교환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재앙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현재 인터넷 내용등급제에 분류된 청소년유해 사이트에는 앞서 말한 김인규교사, 아이노우스쿨, 액스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교육에 대해, 표현에 대해,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고 접근할 기회가 그야말로 '로그아웃'되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음란물차단프로그램의 기계적 속성상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청소년유해 표시 여부에 대답하지 않은 사이트로 미등급 사이트로 분류되어 접근이 차단되는, 이런 빌어먹을 세상이 어디 있는가?

만일 당신에게 당신의 존재는 청소년에게 유해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대답해야 할 의무사항이자, 혹여나 평생 얼굴에 ?자를 표시해야 한다고 누군가가 강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강요섞인 질문에 혐오스러움을 느끼고, 내 감성의 육질에 심한 두드러기가 돋는 것은 바로 이 심문이 주는 폭력성 때문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은 어른들에게도 유해한 거라고 본다. 그리고 실제로 유해한 것과 유해하다고 가정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며, 그 가설이 자행하는 파시즘적 폭력의 폐해들을 잘  알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 권리이다. 표현이 특정한 개인을 차별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생각과 표현의 감성 그 자체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규제할 수는 없다. 인터넷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해한지 무해한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사용자들의  판단에 달려있다. 표현의 자유는 심지어 그것이 차별과 학대행위가 아니라면 음란물을 만들 권리도, 수용할 권리도 포함된다. 음란물이 청소년들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설사 인터넷처럼 접근이 용이하더라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보다는 지속적인 미디어교육을 통해 스스로 견뎌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것이 상업적 포르노물의 지독한 상업성과 성의 물신주의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정통윤의 철학대로, 기술을 통해 감성을 지배하려는 발상은 한 사회를 불행하게 만들뿐아니라, 본래의 취지 자체도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창작자의 권리만이 아니라 수용자의 생산수단의 확보와 접근권리도 의미한다. 이른바 "건전사회만들기"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개인의 감성을 억압했고, 그것이 얼마나 지배권력의 지배를 정당화했는지 보았을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국가검열이 전면화되는 불행한 시간이 오기 전에 인간의 표현의 감성을 존중하는 지식인들의 행동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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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6/17 [19:2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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