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큼 노동천시가 인이 박인 나라가 있을까. 이 나라 청소년들은 노동자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한다. 남편 공장에서 일하는 ‘삼촌’처럼 되려면 공부 안해도 된다는 말로써 자식의 학습 의욕을 고취하는 엄마도 가까이서 보았는데, 어쩌면 나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대놓고 하는 것과 양심의 갈등은 느낀다는 것 정도가 아닐지.
 
우리 사회에서 노동과 관련 있다고 하면 온통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공장이라고 하면 굴뚝의 검은 연기, 회색 하늘이 상징이었다. 지금도 그 이미지는 그대로다. 협동조합인 아이쿱생협은 자회사 공장을 ‘공방’이라고 부른다. 공장이 주는 나쁜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과격하다는 이미지가 붙었다. 1990년대 말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은 배부른 파업을 하는 사람들로 매도되거나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의 원흉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지지와 연대를 얻은 것도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노동운동을 주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시민들이 보내는 것은 철저한 무관심과 외면이지 않은가.
 
경남지역 시외버스 노동자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파업이라는 것을 했는데, 이 나라의 버스 노동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파업을 해보기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다. 버스 노동자들은 한 시간만 운전대를 놓아도 “시민의 발을 볼모” 운운하는 여론에 부닥칠 것이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삼는 노동자들을 비난하기는 쉽다. 자신이 버스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은 만큼 본인도 손해 볼 수 없다는 생각은 거래와 계약을 소중히 생각하는 근대인다운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 사이의 거래가 결코 공정하지 않으며, 근대사회의 갈등이 자본과 노동의 대립 축을 기반으로 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발상이기도 하다.
 
파업 비난자들은 소비자를 볼모로 하지 않는 파업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며, 파업의 성격이란 본디 그런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지 못한다. 소비자의 피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파업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으며, 사용자뿐 아니라 일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자신에게 손실임을 감수하고 결행하는 것이 파업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손실을 주는 파업을 딱히 노동친화적이지 않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구조적인 약자라는 점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버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거론하며 파업의 불가피성을 납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비참하게 일을 해야만 파업을 받아들이는 이들이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불쌍한’ 처지가 부각될수록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은 이해받기 어려워진다. 가난한 사람들의 파업을 동정할 수는 있어도(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임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불쌍하지 않거나 자신보다 처지가 못하지 않은 사람들의 파업에는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자신보다 잘 살면 안되니까).
 
이 나라의 노동자들은 헐벗고 불쌍하게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정규직 노동자라도 사용자에게는 약자라는 점을 자본주의 나라 한국은 이해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복지 수혜 계층이 되는 건 용인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는 것은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장애인에게 봉사활동은 열심히 하러 다니면서도 자기 아파트 옆에 장애인학교를 짓는 건 반발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대한민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노동 관련 법을 배우지 않는다. 시험에 나오니까 억지로 외우는 노동3권을 학생들이 제대로 익힐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학교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가르쳐지기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다. 학생들이 사용자와 협상하는 기술을 익히는 독일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아이들 대다수는 나중에 ‘사장님’이 아니라 사장님에게 노동력을 파는 사람이 된다는 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돈을 탐하지만 대놓고 표시하면 속물이라는 말을 듣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는 남아있다. 그것처럼 노동을 천시하는 태도가 얼마나 부끄러운지는 아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시외버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요구한 임금 인상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노동위원회 중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 덕분에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다는 비난은 멈추었지만 ‘찔끔’ 개선은 향후 파업의 씨를 키우는 격이다. 그때 사람들은 다시 욕할 것이다. 파업을 밥 먹듯 한다고.
 
※11월 9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