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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데모' 라는 교과부는 이명박 정부의 사생아?
[변상욱의 기자수첩] 당시 한 여중생 편지, 우리가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
 
변상욱   기사입력  2008/12/09 [10:28]

교육과학기술부가 4.19 혁명을 '데모'로 폄하하고, 민주화운동과 남북정상회담 내용은 뺀 대신 청계천 복원을 크게 부각시킨 영상물과 소책자를 전국 초중고에 내려 보내서 한바탕 소동.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과정기획 관계자는 "'4.19 데모'라는 동영상은 62년 대한뉴스 방영 당시 제목이 그대로 인용된 것일 뿐이고 소책자 내용이야 당근 영상물 제목이 데모로 되어 있으니 책에도 그런 것 아니냐"라고 해명.
 
해명의 뉘앙스를 보자면 '4.19 데모'라고 당시에 흔히 부르던 제목을 교과 내용으로 바꿀 때 바꿨어야 하는데 깜박 놓치고 못 바꿨다, 이게 아니라 그렇게 쓴 적도 있었고 그대로 인용한 건데 뭘 그러느냐는 태도.
 
그러고 보니 교육과학기술부가 '교과서 개편에 앞서 현대사 교육 수업자료를 만들어 초중고교에 내려 보낼 방침'이라고 했으니까 교과서 개편에 관련해 의도적일 것이라는 심증이 짙다. '교과서 바꾸기 전까지 임시로 활용하면서 역사 교육에 균형을 잡으라는 의도'라는 이야기다.(조선일보 10월 6일 보도)
 
결국 '실수'가 아니라 '작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고 교과부의 대응 역시 이를 반증한다. "4.19 혁명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었으나 별도의 공문을 보내 잘 지도하라고 하겠다. 영상물을 회수하지는 않겠다." 차라리 4.19 혁명 관련 단체들이나 시민들에게서 욕을 먹는 게 낫지 회수한다고 나섰다가 윗분한테 찍히면 곤란하다는 얘기?
 
청계천을 크게 부각시킨 건 참겠다. 어차피 영혼 없는 공무원이고, 공무원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직업이니 굽실거리고 아부하고 눈치 빠르게 달라붙어 살아간다고 치자. 그러나 교육과정에서 4.19 혁명까지 그렇게 내치면 이는 정말 곤란하다. 뭐 대한뉴스? 대한뉴스가 국사책이냐 삼국사기냐.
 
◈ 4. 19 데모라 하는 교과부는 MB 정부의 사생아?
 
혼란스런 국민을 위해 그리고 교육공무원 여러분을 위해 정리하겠다.
 
헌법 서문 - "우리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2004년 4월 19일, 이명박 서울시장 4.19 국립묘지 참배.
 
2005년 4월 19일, 이명박 서울시장 4.19 국립묘지 참배.
 
해마다 이렇게 이어지다가 2007년 4월 19일, 이명박 유력 대권후보 광주 4.19 기념탑 참배 분향.

"4.19 기념일을 민주화의 기수 광주에서 맞아 감회가 새롭습니다. 4.19 정신을 승화시켜 선진 민주복지국가로 도약해야 합니다."
 
2008년 3월 15일, 이명박 대통령 3.15의거 48주년 기념식 메시지, "자유·민주·정의의 3.15 정신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새 정부는 4.19 정신 뿐 아니라 3.15 정신도 선진화로 승화시켜 나아갈 것이다."
 
2008년 4월 19일, 한승수 국무총리 4.19기념식 기념사, "이명박 정부는 4.19 정신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과학기술부, 그들은 누군가? MB정부의 사생아, 아니면 MB정부의 본심을 간파한 족집게 도사?
 
◈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이 詩, 들어나봤나?
 
4.19 당시 '강명희'라는 이름의 초등학생이 쓴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라는 시, 이제는 이 詩는 이렇게 가르칠 건가.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데모하다 맞았다 왜)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 해도.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너도 커서 데모할래, 너 싹수가 노랗구나)
 
1990년대 이전에는 4.19를 흔히 데모라고도 불렀다. 4.19에 뛰어든 사람들도 데모라고 불렀다. 그 근거기록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4.19 당시 한성여중 2학년 생 진영숙 양이 급히 쓴 편지.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난다. 지금 제 모든 친구들, 학생들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님,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이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학우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나갔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기에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기뻐해 주세요. 부디 몸 건강하세요.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나서 4 시간 뒤에 진영숙 양은 진압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것이 4.19 그 때의 당신들은 스스로 데모라고 불렀지만 우리는 '의거'라고 '혁명'이라고 부르기로 한 이유이다. 알아들었을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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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2/09 [10: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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