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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족오 반기문 총장과 극우의 강철대오
[비나리의 초록공명] UN사무총장의 삼족오 인장 선택, 곰곰이 생각해야
 
우석훈   기사입력  2007/01/06 [14:34]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정도이다. 삼족오 인장의 경우는 언제든지 터져나올 수 있는 폭탄같은 경우인데,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당장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문제라서, 같은 인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신중했던 처사는 아니다. 뒤집으면 만약 일본의 어느 고위인사가 UN 사무총장이 되었는데, 일황의 상징이나 임나 어쩌구 하면서 급조한 상징을 들고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도 잘 참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건 UN의 정신에 어긋난다.
 
1. UN의 특수성
 
UN이라는 조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높은 월급을 받거나 큰 힘을 쓰는 곳은 아니다. WTO가 출범한 이후에 더 영향력이 작아졌고, 예전부터도 IMF나 세계은행 같은 곳들이 실제로 UN보다 더 권한이 많고, 유럽계와 미국계에서는 WTO를 UN의 상위기구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국제 기구들 사이에는 “사전에 결정된 위계(pre-established hierarchy)”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UN 입장으로 보면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현실이고, 그러다보니까 경제기구보다는 UNEP나 UNDP 그리고 UNESCO 같은 문화와 인권 혹은 환경 문제 같은데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consensus라는 특별한 장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의사결정 장치의 특징상 소수국에 대한 배려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다 보니까 UN 사무국 직원의 정서라는 것이 있고, 또 나름대로 그런 조직 문화가 UN 내에서 생겨났다. 개혁에 대한 열망도 있고, 나이 많은 UN 관료들에 대한 염증같은 것도 젊은 직원들은 종종 느낀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비율 같은 것들도 상당히 신경쓰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 일방주의가 잘 움직이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미국은 이것을 UN의 비효율성이라고 하고, 시간보다 한 시간씩 늦게 움직이는 회의 때문에 UN time이라는 농담도 있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같은 것들이 UN에는 존재한다.
 
2.

반기문 총장이 첫 발언은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서 지지하는 말이었고, 이 때문에 세계가 잠깐 뒤집어졌다. 반기문 입장으로 보면 미국 언론에서 오히려 더 심각하게 이 문제를 지적해서 억울하기는 할 것 같다.
 
나는 이 발언 자체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UN은 UN의 입장이 있고, 사무총장도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더 들어가보면, 실제로 사형을 금지하고 사형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호주 같은 국가가 전쟁에 대한 범죄 즉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를 들어서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서 환영 논평을 내기도 하였다. 단순하게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만 들어서 이 사건을 볼 일은 아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3.
 
원래 UN 사무총장이 그렇게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물론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캐스팅 보트와 유사한 막후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하면 또 그렇기는 한데, 그래봐야 사무국일 뿐이다. 사무국은 회의를 보조하는 역할이고, 회의마다 전부 별도로 선출되는 의장이 있고, 또 지역별 회의와 함께 여러 가지 장치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UN이라는 국가가 있고 그 국가의 대통령이 사무총장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기구는 아니다.
 
지금과 같이 UN 사무총장의 입을 전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은 코피아난 때 생긴 일이다. 이 매력적인 사무총장을 아마 전세계인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정말 멋졌었고, 그래서 사실 따져보자면 사무총장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코피아난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좋아하지 않았고, IMF와 WTO 체계가 거의 독재하다시피 만들어내는 세계화 국면에서 그야말로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진무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코피아난을 사랑했다.
 
반기문의 불행은 그가 코피아난의 후임자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 이전의 평범한 시절이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드골이 미국에 대항하는 제3세계 동맹을 외치던 시절에는 세상이 드골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동안 교황을 쳐다보는 시기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임기마다 바뀌는 UN 사무총장이 누군지 세계인들은 신경도 안 썼다.
 
그러나 코피아난이 사무총장이 되면서 그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의 뒷자리에 들어온 반기문과 코피아난은 너무 다른 사람이고, 세계관도 너무 다르다.
 
지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반기문은 “코피아난과 다르다”이다. 그가 말한 후세인 처형건은 그래서 뉴스가 된 것이다. 다른데 어떻게 달라? 음, 과연 다르군.
 
워낙 사람들이 코피아난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반기문이 하는 말들은 한동안 뉴스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다른 걸 어떻게 할 것인가?

정상적인 업무를 시작하면 UN의 스탭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반기문이 만들어내게 될 스캔들을 상당히 줄여줄 것이고, 그도 조금씩 UN 내부의 선택과 규칙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간간히 터져나오는 불협화음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4.
 
진짜 문제는 UN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게 된다.
 
UN 사무총장에 대한 탄핵이나 그런 일은 벌어질 일이 없고, 또 언제부터 UN이 그렇게 효율적인 조직이었다고 일사분란한 군대처럼 사무총장에서 A1급 실무자들까지 하나의 생각을 가질 수 있나? UN은 그런 조직 아니다. 좋은 총장이 와도 돌아가고, 그렇지 않은 총장이 와도 조직은 돌아간다. 그런 것이 UN이다. 설령 미국의 매파가 총장 자리에 와서 전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조직 전환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조직은 원래 그렇다.
 
우리나라의 외교관을 포함해서 공무원 엘리트들은 국제 기준을 적용하면 상당한 극우파들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을 기준으로 좌우가 나뉘고 박정희를 기준으로 또 다른 입장이 나뉘는 경향이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소수자, 환경, 인권 혹은 문화 다양성과 같은 조금 더 세밀한 기준으로 정치적 입장이 나뉘어지고, 이런 기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건전한 보수”가 아니라 “극우파”에 가깝다.
 
10년 전부터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politically correct”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의 사회적 특징이 있겠지만 낙태와 줄기세포 같은 얘기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공지영이 며칠 전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잠깐 밝혔듯이 미국에서의 기준을 들이대면 공지영도 상당한 보수주의자이다. 본인도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했다고 밝혔던 걸 보면서 나도 상당히 긴 시간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politically correct하면 좌파이냐? 그런 건 아니다. 네오콘의 극우파들도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 같은 것인데, 대체적으로 우파에서 중도좌파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 기준으로 하면 반기문만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많은 엘리트 장관들도 복합적인 정치적 기준으로는 극우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5.
 
원래도 극우파인 반기문이 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것은 그가 했던 ‘작은 국내 정치’는 더 극우파 코드, 그리고 더 민족주의 코드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그거야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판단이지만, 국제기준보다 더 신중한 UN의 기준을 들이대면 좀 상식 밖의 일이다.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보편주의의 가치 위에서 움직이는 곳이 UN인데, 여기에 지역 패권주의와 미국 중심사고를 가지고 들어갔으니 앞으로 문제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한국의 위신과 관련되어 있다거나 혹은 국가를 대표한다고 과장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반기문은 반기문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어느 나라에나 극우파 인사는 있고, 또 보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공무원은 존재한다. 그걸 국가와 직접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UN 상식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걸 더 극우파 분위기로 몰아갈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기문에 대한 음모? 혹은 한국에 대한 음해? 그런 건 없다. 다만 국제적인 정치적 기준에서 극우파 인사가 UN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국제사회가 조금 더 익숙해지고, 이 변화를 이해하게 될 뿐이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평균적 한국”이 얼마나 극우파적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사건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이 아니었다면 홍석현이 갈 자리였다. 물론 100% 한국 사람이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별 순환과 아시아의 몇 가지 상황을 놓고 보면 한국이 사무총장을 하게 될 개연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홍석현이 그 자리를 탐냈던 것이고, 노무현 정부 초기에 삼성과 중앙일보 그리고 정부 사이에 약간의 밀월 관계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정부가 지지하지 않으면 정부 대표로 UN 사무총장 자리에 출사표를 던질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석현이 총장이 되었다면 반기문 보다는 훨씬 조용하게 일처리를 했을 것이다. 정몽준과 비교하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현재 반기문이 보여주는 행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홍석현이 삼성이 UN을 끼고 돌면서 생난리치는 것보다는 사태가 훨씬 조용하게 전개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6. 다시 삼족오 질문
 
반기문 사무총장이 자신의 인장으로 삼족오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러나 상당히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릴 일이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
 
문제는 이 삼족오 인장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런 일도 있군” 혹은 “삼족오가 뭐야?”라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것 같은데, 마치 10년 전부터 삼족오가 복권되거나 휘장으로 날리는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던 것처럼 기쁘다면 뭔가 자신이 스스로 한 번 돌이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뒤돌아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이 삼족오라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자신에게는 무슨 의미일까? 중국도 역사 왜곡인데, 우리가 긍지를 좀 가지면 안 되나?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국제 기준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한다.
 
일제 때 좌파가 있었고, 민족주의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서로 힘을 합치자는 것을 ‘좌우 합작’이라고 불렀다. 우파에도 극우와 보통 우파가 있는데, 요즘은 시장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우파라고 부르고, 여기에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을 극우파라고 부른다. 클린턴주의가 끼면 조금 더 어려워진다. 클린턴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대신에 국제적인 패권주의를 반대했다. 그게 민주당식 우파 혹은 경우에 따라서 민주당식 중도좌파라고 부른다.
 
반기문이 사용한 삼족오 인장은 사실은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물론 그는 당연히 많은 한국인들이 그 사실에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줄 알았고, 그래서 그 인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극우파라고 부르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랑스가 사용하는 인장과 상징들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자유, 평등, 박애... 그렇다면 삼족오의 가치는 무엇인가? 홍익인간? 지금 삼족오가 의미하는 바는 순수하게 패권주의 아닌가?
 
만약 다른 가치가 있다면 삼족오와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으로서 삼족오 인장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다르게 평가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삼족오는 ‘고구려’라는 것 외에 무엇을 상징할까? 게다가 삼족오가 정말로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상징이었을까?
 
UN 사무국의 직원들과 국제 사회는 조금씩 반기문의 정치적 identity에 대해서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해갈 것이다. 정작 남은 것은 한국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극우파이면 안돼? 물론 안 될 것 없다.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고, 정체성이고, 그건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국의 강철대오”가 위험한 것처럼 “극우의 강철대오”도 전횡하게 되면 위험해진다.
 
삼족오를 미학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가? 물론 순수하게 아름다움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삼족오는 우리  던져진 정치적 성향과 내 안의 것들에 대한 질문과 같은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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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1/06 [14: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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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비나스 2007/01/11 [14:49] 수정 | 삭제
  • 간만에 웃습니다. 하하하하.. 좀 아는 분들에게 물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이해를 못하시니 그런걸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가관입니다 그려. '보편적 가치의 추구'와 '보편의 폭력'? 님,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까?

    그걸 나누는건 님의 어법이겠지요, 저는 그게 같다고 보는 사람이거든요. 게다가 님은 스스로 오류를 저지르고 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거든요? 무신 말이냐 하면 '추구'는 없으므로 가야된다는 말과 다른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무슨 UN이니 뭐니 보편이라고 말하는지 원.. 이해를 못하시겠나요? 님은 지금 현 세계에 대한 부정을 주장해 놓고, 그 부정성에 해당하는 것들을 대책없이 보편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오류를 저지르고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세계는 보편적인게 아닙니다. 그래서 보편으로 가야한다고 말하는 거지요. 님들의 어법은. 그런데 그 추구의 대상이 보편이 아니라면 어쩔 거냐는 겁니다. 이해 못하시겠어요?

    님들의 곤란은 제가 제기한 분열상들을 덮기위한 방편에 불과합니다. 세상이 분열되어 있고 보편은 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어떤 방어기제에 불과하지요. 정치가 다 그렇지요 뭐 ㅋㅋㅋㅋ 폭력이 아니라고요? 자신들이 하면 로맨스?ㅋㅋㅋ 그런 보편적 가치와 폭력의 나눔은 프랑크 푸르트 학파의 사회 과학 이론이지 저에게는 아니거든요? 폭력의 담론은 단순히 신체에 대한 폭력만 있다고 생각하는지? 그런 수준이면 말 다했네요. 여하튼 제대로된 반론은 커녕 스스로 한계를 보여주고 계시니 이만 상대해드리겠습니다.

  • mogiiii 2007/01/10 [04:10] 수정 | 삭제
  • 님은 여전히 '보편가치의 추구'와 '보편의 폭력'을 개념적으로 혼동하고 있어요. "공부"를 제대로 하셨어야죠. 그리고 계속 제가 보편성의 잣대로 선악을 단칼에 구분한다고 그러시는데 '선한 일을 아흔아홉가지를 하고 있다한들, 한가지 라도 보편주의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라고 제가 거듭, 누차, 반복해서, 수도없이 말씀드렸지요. 그렇게 "공부" 많이 하셨다는 분이 말귀를 왜이리 못알아 듣는지 모르겠군요.
    님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지식으로 제발 명쾌하게 제 주장을 반박해주세요. 말이 돼는 소리로요. 이 댓글공간이 너무 좁아 레비나스 님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펼치기 곤란하시다면 완결된 글을 제대로 써서 대자보에 투고를 하세요. 아니면 쟁점토론방에 올리시던가요. 그러한 글이 올라오기 전까지는 여기선 웬만해선 답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듭 논파당하신 것들을 반복적으로 늘어놓는 것 보는것도 지겹고, 그것을 거듭 반박하는 것도 별로 재미없습니다. 그럼 이만.
  • 레비나스 2007/01/09 [18:46] 수정 | 삭제
  • 포스트모던이라고 읽는 분들의 철학에 대한 어설픈 이해는 그 수준 정도의 반론일 겁니다. 아마.. 그게 님의 한계지요.

    보편을 추구해야되다는거 mogiiii
  • mogiiii 2007/01/08 [17:43] 수정 | 삭제
  • 뿐더러 내적완결성과 설득력까지 갖춘 것이었습니다.

    뭐 레비나스님이 그보다 더 세련되고 고급스런 개념틀로 접근한 글을 원하신다면 직접 쓰실 일이지 남이 그렇게 쓰지 않는다고 비난을 퍼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글을 써서 대자보에 투고를 하세요. 쟁점토론방에 올리시던지요. 레비나스님이 저와의 댓글대화중 언급하신 학자들 - 하이데거, 프로이트, 칸트, 하마버스(아마 하버마스를 잘못 쓰신거 같습니다), 지젝- 의 이름만 봐도 레비나스 님이 쓰실 글은 정말 대단할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성의있게 읽어드릴 것을 약속드리죠.

    다음으로 레비나스 님이 저지르신 오류를 몇가지 짚어드리겠습니다.

    "님들은 하나의 기준을 놓고 그들을 재단하며 보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그들이 하나의 상징을 놓고, 그것이 보편적인냥, 운명적인냥, 팩트인냥, 실용인냥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보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겁니다. 바로 님이 저지르고 있는 오류처럼. 파시즘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님이 하고 계시는 짓은 파시즘과 다를게 없습니다."

    ==> 첫째, 그 누구라도 삼족오 인장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보편주의에 반하기 때문에 그들이 제3세계 시민들의 인권을 옹호하건 말건,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건 말건 그들의 삼족오 인장 옹호라는 행위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제가 누차 말씀드렸고, 레비나스 님은 여기에 어떠한 "오류"가 있는지 납득할만한 설명을 단 한번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둘째, 제가 "하나의 기준을 놓고 그들을 재단"한것이 되는 경우는 제가 '그들은 삼족오 인장을 옹호하므로 그들이 무엇을 하던간에 옳지 않다'라고 했을때입니다. 그리고 제 기억에 저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레비나스 님이 저에게 "낮은 이해력" 운운하실 상황이 아닌거 같습니다. 셋째, 저에게 "파시즘"이라는 딱지를 붙이셨는데요. 파시즘의 정수는 스스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에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상호 동의할 수 있는 지반위에서 논리를 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레비나스 님은 헐뜯기와 딱지붙이기를 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글을 읽다보니 "소양을 갖추고, 이론을 배우고 말하세요"라며 막말까지 하시는데, 저를 파시스트라 부르시기 전에 거울을 좀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시멘트 굳으면 균열이 생길 수 있는 법이지요. 차도르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부시, 네오콘과의 연관성을 따진다면 보편적이라고 재단할 수 있을까)이 다른 보편성일게 분명한 선택의 자유와 대립되고 있다면 어쩔 것인지? 제 비판은 이런 균열상을 드러내는 것이지 보편을 담보한 비판은 아니었습니다. 경계를 보는 곤란함들. 사람들은 그 균열을 어떤 강박증적 시멘트로 메워버리고 있습니다. 그게 인간이란 존재지요...'제 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는 삼족오와 고구려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님들의 곤란함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 차도르 이야기는 또 나왔네요. 그냥 지난번에 했던 말씀 그대로 옮겨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말씀드리는데 저는 "제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는 삼족오와 고구려를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아무런 곤란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충돌하는 가치를 동시에 주장하는데서 오는 논리적 곤란함이 그들에게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님이 NL을 긍정했다고 한적 없습니다. 확실히 해두기 위해 언급합니다. 그럼 이만.
  • mogiiii 2007/01/08 [17:41] 수정 | 삭제
  • 레비나스 님에게 성의와 인내심을 갖고 답해 드렸더니 돌아오는 것은 "분노"와 비논리군요.

    제가 거론하고 있는 '보편주의'는 사회적(혹은 국제적)사안의 해결 혹은 동의를 위한 기반으로서 상호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공유 지반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반이 넓을 수록 보다 깊은 상호간의 이해와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겠지요. 불행하게도 현재 그 지반이 공유되고 있는 범위는 그닥 넓지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직도 '보편주의'는 추구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레비나스 님도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테제들인 여성억압철폐, 인종주의철폐, 패권적 민족주의 철폐 등이 보편적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하실 거라 믿습니다. 이것은 님이 혼동하고 계신 '보편(화)의 폭력'과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서구의 학계에서 위에 제시한 것들을 보편적으로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정리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보수주의"라는 비판을 두들겨맞을 겁니다.

    탈근대 철학의 기린아들 중 보편주의에 반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며 소매걷어붙이고 개입한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탈근대까지 가기도 전에 님이 이번에 언급하신 칸트 조차 그러했다고 압니다. 그들이 발언을 할때 자신의 철학적 개념틀을 총동원하여 세련된 학술논문 수준의 글을 썼던 것은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런 글은 가급적 대중적으로, 보다 많은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지반위에서 쓸수록 좋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우석훈 씨의 주장은 그 기준에 부합할
  • 파트라슈 2007/01/08 [13:53] 수정 | 삭제
  • 님한테서 데리다나 푸코, 들레즈가 풍기네요. 서양철학이지요, 우리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그런 용어 안 좋아하는.
    아무튼, 님은 그럼 어떤 것을 비판할 때 어떤 준거를 사용하나요? 보편적 가치를 거부한다면, 님이 나찌즘이나 주사파나 인종주의를 비판할 때 님의 입지점은 뭔가요? 우리가 독재를 비판할 때는 민주주의의 입각해 있죠. 우석훈의 논지는 간단합니다.
    -삼족오는 극우, 팽창주의의 상징이다.
    -UN 사무총장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옹호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삼족오 인장 사용은 비판받아야 한다.

    이런 간단한 주장을 무슨 어렵고 현학적인 용어로, 그것도 서양 철학자들의 개념을 빌려와, 그것도 매우 어설프게 빌려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하고 계십니다 그려.

    보편적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님의 우석훈 비판의 논거가 가능합니까? 보편적 가치가 없는데, 우석훈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을 근거로?

    님이 우석훈을 비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삼족오는 극우의 상징이 아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는 없는데, 삼족오가 팽창주의, 민족주의, 극우파의 상징이 아니라구요? 서양놈들이 만든 분류의 폭력, 개념의 폭력이라구요? 님이야말로 프랑스 철학자들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철학 개념을 얼치기로 끌어들여와 '아무 것도 비판할 수 없는' 철학으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을 잘 깨닫기 바랍니다.
  • 하하 2007/01/07 [21:24] 수정 | 삭제
  • 나르시즘에 대해 자꾸 말하는데 나는, 나르시즘을 전문적으로 뭐라고 하는 지는 모른다. 쉽게 자기애를 말한다고 한다면, 내 생각은 그건 개체의 생존본능과 관련있어 보인다. 그러나 생명체에겐 생존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본능도 있단다. 언제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을 운명.
    그래서 어떻게 오래 버티느냐가 항상 문제임과 동시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문제이지.

    나르시즘....
    자기만 생각하면 인생이 불쌍해진단다. 어리고 몰라서 다 그러는 거지. 나이 들었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 책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서 나르시즘 해결하거라...

  • 하하 2007/01/07 [21:05] 수정 | 삭제
  • 전 국민적 다수가 말하면 그게 옳은 거니?
    독일 파시즘은 전 국민적 다수가 지지했다잖냐.
    한명이 수학 맞히고 다수가 틀린 거면 틀린 답이 정답이 되니?
    그건 또 경우가 다른 거라고 할테지.

    그러니 숫자 가지고 우겨대지 말거라. 지능 나쁜 거 표난다.

    테오리아 아파테이아 모른다. 아는 너가 똑똑히 설명해봐라. 괜히 헛폼만 부리지 말고.

    하여튼 애들은 사랑을 줘도 투정부리고 성질만 부리지. 그만 바이다.

  • 하하 2007/01/07 [20:15] 수정 | 삭제
  •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린 시절 심한 고통과 치욕을 겪었던 사람이 힘이 생기는 15세 이후에 강력범죄자가 되거나,
    어린 시절 심한 가난과 모욕감을 겪었던 사람 중에 파시스트 독재자가 많이 나온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상처가 모두 사람을 악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탐욕과 우월감이 유독 강하고 선한 의지가 희박한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삐뚤어지는 것이다.
    이건 천성이기도 하고 부모와 사회를 잘못 만난 탓이기도 하겠지.
    그러나 결국 이런 걸 해결하는 것은 자기자신일 뿐이지.

    모든 사랑이 나르시즘에서 나왔다고?
    너의 사랑은 닫힌 사랑이고 미숙한 사랑이다.
    사랑은 지향이다. 내가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에 대한 사랑. 저너머에 대한 갈망. 이상향에 대한 희미한 감지.

    공평한 사랑?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가 똑똑하고 선해지길 바란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냐?
    그렇지만 너는 특별히 너만 배타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너랑 나랑은 이렇게 다르지 않냐. 그러니 너만 특별히 사랑할 이유가 없지.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단다.

    자기 가족, 자기 친지, 동료를 더욱 사랑하지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
    다만 패권적이고 지배적이지 않고 평화롭고 평등하길 바라는 것이지.

    나는 이래 생각한다. 너는 너 맘대로 생각해라.
    다만 더 똑똑해지고 더 선해지길 바란다.


  • 거참 2007/01/07 [19:28] 수정 | 삭제
  • 고고/답변할 말이 없으면 찌그러져라. 존내 허접한 새끼구만...^^ 에구 불쌍한 넘 ^^
  • gogo 2007/01/07 [19:24] 수정 | 삭제
  • 거참님, 왜 악에찬 글을 쓰십니까? 도와주고싶습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 레비나스 2007/01/07 [18:17] 수정 | 삭제
  • 시멘트 굳으면 균열이 생길 수 있는 법이지요. 차도르에 대한 여성주의적 관점(부시, 네오콘과의 연관성을 따진다면 보편적이라고 재단할 수 있을까)이 다른 보편성일게 분명한 선택의 자유와 대립되고 있다면 어쩔 것인지? 제 비판은 이런 균열상을 드러내는 것이지 보편을 담보한 비판은 아니었습니다. 경계를 보는 곤란함들. 사람들은 그 균열을 어떤 강박증적 시멘트로 메워버리고 있습니다. 그게 인간이란 존재지요.

    '제 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는 삼족오와 고구려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님들의 곤란함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모든 것이 명확하던 시대, 모든 것을 무짜르듯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마르크스 자신이 아닌)의 유산이지요. 현실은 민노당도 부패해있다는 어떤 실재의 출현일 뿐입니다. 물론 한국은 근대라는 시기가 미완성으로 남아있지만, 앞으로올 시대는 그것을 넘어선 하이드리브?로 읽힐 수 있는 시대라는 겁니다. 그런 시대에 보편이니 하는 낡은 가치를 들이대는 것은 현대적 징후들은 훌륭히 해석해 낼 수 없을 뿐더러, 보수적 가치에 머물 뿐입니다.

  • 레비나스 2007/01/07 [18:02] 수정 | 삭제
  • 님의 낮은 이해력과 문제의식들의 열림을 닫아버리는 보수적인 태도에 분노를 느끼면서 반론을 씁니다.

    대체 님이 거론하고 있는 보편주의가 뭡니까? 님은 이렇게 쓰셨습니다. '보편주의는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추구의 대상입니다'이라고.. 맞습니다. 보편주의는 '추구의 대상'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시나요? 보편은 보편이라는 말이 붙은 그 자체로 보편적으로 되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보편이 님의 말씀대로 추구의 대상이라면, 세상은 보편적인게 아닌게 되는 겁니다. 게다가 그 보편이라는 것이 개개인들의 주장과 경험들을 토대로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보편이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이게 칸트의 비판철학입니다.

    현실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UN도 강대국들의 특권이 보장되는등 그 자체로 보편적인 기구는 아닙니다. 그래서 님들은 보편으로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나아가 가야한다를 넘어서 어떤것이 보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것이 보편이라고 누가 보증할 수 있습니까? 님이요?

    추구의 대상이라면서 마구잡이로 자신이 욕망하는 사태들을 보편이라고 규정하는거, 이미 서구의 학계에서 정리가 끝난 논쟁입니다. 그게 바로 보수주의라고.

    제 말은 이겁니다. 다 좋습니다. 반기문 저도 싫어합니다. NL애들도 싫어합니다. 삼족오 가지고 고구려 어쩌구하는 애들, 어울리지도 않습니다. 이 점에서 저와 님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싫어하냐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복잡해 집니다.

    우석훈씨나 님께서 하신 반론들을 찬찬히 보십시요. 님들은 하나의 기준을 놓고 그들을 재단하며 보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반대로 그들이 하나의 상징을 놓고, 그것이 보편적인냥, 운명적인냥, 팩트인냥, 실용인냥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보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겁니다. 바로 님이 저지르고 있는 오류처럼. 파시즘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님이 하고 계시는 짓은 파시즘과 다를게 없습니다.

    결국 님들의 비판은 하나의 정상성을 염두해두고 벗어난 존재자들을 제 위치로 돌아오기 위한 비판밖에 않됩니다. '아직까지 민주주의는 없었다'는 유럽 좌파의 비판적 한계처럼, 거기에 머물러 그곳으로 와야한다는 주장, 그것도 유물론이 아닌 철처하게 관념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님들의 주장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하마버스의 소통이론이면 족합니까?

    자 천천히 이야기해 봅시다. 님은 이미 보편을 추구해야 된다는 말로 보편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고 있음을 은연중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UN도 보편적인 잣대일 수 없다는게 명백해지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님은 그것이 보편적이라고 못박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편은 추구해야할 필요도 없이 UN이나 서양주의라고 말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이 끔찍한 곤란함은 더도말고 우석훈씨의 정치 편력이나 님의 정치적 소양만큼의 분열상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제 비판점은 무슨 극우나 삼족오에 대한 옹호라고 생각하셨다면 큰 오산입니다. NL에 대한 긍정? 이 지점에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님은 그런식으로 비판해야 자신의 틈세와 분열상을 메꿀 수 있다고 보시겠지만, 이런 수준이라면 애들 싸움과 다를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들이 아닌 님들을 비판하고 있는 거랍니다.

    소양을 갖추고, 이론을 배우고 말하세요. 얼마전 우석훈씨의 글중 하나를 접할 수 있었는데 프랑스 철학에 대한 비판과 한국적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그 한국적 상황을 프랑스 철학에 젖줄을 대고 있는 지젝이 훌륭히 설명해내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바가 있지요.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보편을 거론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그것들을 비판할 여지는 있습니다.
  • mogiiii 2007/01/07 [16:46] 수정 | 삭제
  • 저는 씨탱님이 아니구요, 제 필명도 '모지리'가 아니라 '모기'라 읽어주시는게 좋을듯합니다.^^
  • mogiiii 2007/01/07 [16:24] 수정 | 삭제
  • 아닙니다. 저는 레비나스 님의 요점 다 잡고 반론드린겁니다. 레비나스님이 제 반론를 보시고도 그것을 재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했던 말씀을 또 하고 계세요. 님의 글을 뚝뚝 잘라서 비판하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이 방법밖엔 없겠습니다.

    "님의 보편주의로 보면 삼족오를 내세우는 그들이 보수주의자로 회귀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제 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는 순수한 시민의 다른 모습이라면 어쩔거냐는 겁니다."

    ==> 그들이 제 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백날 말할지언정, 설령 오늘하루도 그것을 부르짖느라 바빴을지언정, 그들이 삼족오를 내세우는 행위는 패권주의적 행위라는데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못합니다. 레비나스님은 상대주의의 잣대를 여기엔 이렇게 저기엔 저렇게 갖다 대시는데,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그거 종북주의자들이 '민족적 특수성','내재적 접근'운운하며 북한정권에 대한 모든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도르의 경우도 마찮가지입니다. 영국 길거리에서 차도르를 쓰고 다니는 여성들을 예로듭시다. 차도르는 '보편주의'의 시선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상징이지만, 그들 스스로 그것을 영국땅에서 지키려고 노력했을때, 선택의 자유등등의 다른 보편주의의 시선으로도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석훈씨의 시선은 바로 이런 곤란함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 제가 차도르에 대해 위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 "자국의 문화를 알리며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건 좋은데, 그것이 하필 "자국"에서 여성억압의 기제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볼때 '우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라 했지요. 선택의 자유 다 좋다 이겁니다. 차도르 쓰고다니는 선택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 억압의 상징'이라는 비판과 따가운 눈초리는 감수하라 이겁니다. 다소 극단적인 예일수 있으나, 몇년전에 신촌인지 홍대앞인지 '나찌'를 컨셉으로 디자인 되었고 종업원들도 나찌스탈의 의상을 입도록 한 업소가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을 받은 끝에 영업을 못하게 된 일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차도르가 하나의 패션코드로 통하게 된게 최근 급성장한 한 터키의 한 의류기업에 의해선 건 아시나요?


    "단순히 삼족오를 내세웠다고해서, 반기문 총장이 극우파에 해당되는 것일까요? 오늘자 신문을 보니 후세인 측근에 대한 사형등은 반대했다고 나왔는데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이런 경계의 곤란함, 해석의 곤란함, 실재의 곤란함, 균열을 메우는게 어설픈 보편주의의 미장이질(시멘트 질)일겁니다."

    ==> 후세인 측근에 대한 사형등은 반대하건말건 패권주의를 드러내는 삼족오를 내세운 것은 '극우파적' 성격을 비춘 것입니다. 우석훈씨의 주장대로, 반기문은 국민들의 민족주의적 정서가(그중에서도 패권주의적인 부분) 삼족오를 지지할것을 이미 알고 밀어붙인 것입니다. 삼족오라는 상징자체가 극우적인 것이거니와 그것을 밀어부친 마인드 또한 극우적입니다.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지요.여기 어디에 "경계의 곤란함, 해석의 곤란함, 실재의 곤란함,균열"이 있나요? 오히려 그런건 여기엔 이잣대 저기엔 저잣대를 갖다대시는 레비나스님의 주장에 가득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스탈린같은 좌파 정치인들에 행했던 모든 폭력의 근원에는 그런 균열을 메꾸는 것들이 존재해왔습니다. "

    ==> 스탈린의 만행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보편'을 빙자한 폭력이었지요. 그런데 좀 뜬금없군요. 넘어갑시다.

    "삼족오에 대한 열망을 단순 패권주의나 나치즘과 같다고 말할 수 없는건 여기에 있습니다. 보편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걸러질 수 없는 균열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네요. 그것을 다시 서양식(보편주의는 분명 서양의 관념입니다, 그것은 아직 없었지만 있어야하는 것으로 상정되있는 것이죠.)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다른 패권주의의 모습일 뿐입니다."

    ==> 별다른 논증과정없이 삼족오가 패권주의가 아니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시는데 전혀 설득력이 없군요. 이런게 "균열"이지요. 누가 삼족오가 나치즘이라고 했는지는 도무지 모르겠구요. 이것은 그럼 "실재의 곤란함"일까요? 자꾸 서양식 서양식 그러시는데, 그럼 동양식 혹은 한국식 혹은 레비나스님식 관념으로는 자유,평등,박애와 거기서 파생된 양성평등, 소수자인권보호, 인종주의철폐, 팽창적 민족주의 반대 등의 가치를 무시하나요? 여성억압을 표상하는 차도르와 극우적 민족주의를 표상하는 삼족오를 꾸짖는걸 "또다른 패권주의"라 하시니 묻는 말입니다.

    "대체 보편주의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누가 그것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근대 철학으로 돌아가서 신을 불러와야할 판입니다. 우석훈씨의 정치적 입장의 곤란함처럼 그의 반기문 또는 한국인들에 대한 해석도 곤란해 보입니다. 하이데거식으로 비판하자면 그는 존재의 담론에 메몰되어 있는 존재자겠지요...여하튼 제 비판의 요지는 그는 프로이트를 읽어놓고도 프로이트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한국인들을 파악하는 이론 도구들을 찾는데 게을리 했다는 것입니다. "

    ==> 보편주의는 논증의 대상이 아니라 추구의 대상입니다. 님이 언급하신 하이데거도 자유,평등,박애를 보편가치로 추구했습니다. 하이데거가 우석훈씨의 학문적 성과와 저술을 어떻게 비판했을지는 과문한 저로서는 알수 없지만, 그가 '삼족오는 패권주의적 상징'이라는 데에는 동의했을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프로이트 관련한 헐뜯기는 논점에서 완전히 빗나가 있을뿐더러 보기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석훈씨는 '그거 보편주의적 잣대로 보건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받을만 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걸 설득시키는데에 뭐 대단한 "이론 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어떠한 "한국인들을 파악하는 이론 도구"라도 이 주장을 뒤집을 수 없을겁니다.

    "예를들어 삼족오와 고구려를 사랑하는 일반 사람들이 자선 단체를 만들어 후원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행사를 하는 사람들의 다른 모습이라면 어쩔 겁니까?"

    ==> 자선도 좋고 이주노동자들을 돕는것도 아주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와 발언을 저절로 옳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반기문씨가 삼족오라는 패권주의적 상징을 인장으로 내세운것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극우적입니다'라는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도대체 이걸 왜 인정을 안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똑같은 말을 몇번 반복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구요.

    "UN이 보편주의에 입각해 있다면, 삼족오도 얼마든지(자연과의 어울림에 상징) 보편주의의 다른 방식으로 풀이 될 수 있습니다. 차도르가 저항의 상징으로 변화했듯이 말입니다."

    ==> 같은 이야기 또 나갑니다. 삼족오가 자연과의 어울림을 상징하더라도(하건말건) 그것이 극우적 민족주의를 표상하는한 보편주의에 반합니다. 그리고 차도르가 저항의 상징으로 "변화"했다기 보다는 둔갑하여 소비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겁니다. 그리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익숙해져서 설사 차도르를 저항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된다해도, '그것은 여성억압을 표상한다'는 명제를 조금도 흔들지 못합니다.

    "이것을 비판하기 위해서 보편주의적 해석으로 회귀하는 것은 낡은 방식입니다. 패권주의를 패권주의로 대응하는 것은 우석훈씨 자신일 겁니다. 이런 경계의 곤람함들, 일반적으로 보면 그것을 비판하는 학문이 우석훈씨가 비판했던 프랑스 철학이겠지만, 그는 그것들을 폄하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글이 나온 것일 수도..^^"

    ==> 제 견해로는 우석훈씨는 삼족오를 보편주의적 관점에서 설득력있게 비판했고, 레비나스님은 그 비판이 "낡은 방식"이라 폄하하셨을지는 몰라도 성공적으로 반론해내신 것같진 않습니다. 마지막 역시 뜬금없이 프랑스 철학을 거론하시며 헐뜯기로 장식을 해주셨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될거 같습니다. 그럼 이만.
  • 하하 2007/01/07 [16:00] 수정 | 삭제
  • 민족주의는 타민족에 대한 "경쟁"과 "지배"를 암시한다.
    그건 우리민족의 "독특함" 주장이 "우월성" 주장으로 쉽게 변질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성이라는 것은 인간개체의 주요한 본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민족주의자 우파들의 무지이다.
    경쟁과 약육강식이 발전의 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근대의 오류이다.
    우둔하고 교활하며 잔인한 자기만족적 쾌락.
    썩어 없어질 존재들의 오만함이란.
  • 거참 2007/01/07 [15:58] 수정 | 삭제
  • 나는 우석훈의 주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주장이야 무슨 주장을 못하겠나? 나름대로 근거만 분명하다면 주장이 다양할수록 좋은 것이지.

    다만 우석훈의 글은 논리 전개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개념 사용부터 엄밀하지 않다. 나는 그것을 지적한 것이다.

    뭐, 지식인이 아닌 일반 네티즌이 게시판 같은 데 쓰는 글이라면 누가 뭐라겠나? 피곤하게 그런데 신경쓸 일도 없고. 하지만 우석훈의 경우는 다르다고 본다.

    직책도 그렇고 글의 성격도 그런 게시판 글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용어와 개념의 사용에서부터 정확하고 엄밀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그런 점에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모지리, 고고 찌질한 새끼들아. 무슨 견적이 안 나오느니 열등감이라느니(하여간 이 말 즐기는 놈 치고 찌질하지 않은 넘이 없더라^^) 헛소리 나불대지 말고 내가 지적한 게 틀렸으면 정확하게 뭐가 틀렸는지 반박해라. 그 말이 맞으면 두 말 않고 인정한다.

    하여간 이 새끼들이 어디서 텍스트 물 좀 먹었다고 동병상련인 모양이다. 남의 일 같지가 않냐? 우석훈이 저 표현들, 문장들, 개념 사용들 찌질한 것 맞다. 아니냐? 새끼들아 그걸 얘기하는데, 무슨 나라의 희망이니 어쩌느니... ㅎㅎ 하여간 쪼다시키들... 그래서 나라의 희망이면 새끼들아 더 좀 정확해야 하는 거 아냐?

    니들 보기에는 내가 일부러 트집잡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만 나는 우석훈이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이 사이트 들어온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우석훈이 글은 비교적 자주 보게 되더구만. 그래서 몇번 읽었는데 도무지 답답하더라. 논리 전개, 문장 등... 너무 허술하고 개판이다. 그러니 짜증나서 한마디 한거다.

    새끼들아, 니들이 내가 지적한 것 반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건 반박이고 뭐고 있을 수 없다. 그냥 지적 그것으로 끝나는 거다. 받아들이면 되는 거다... 그걸 갖고 우석훈이란 놈은 아가리 닥치고 있고 어디서 찌질이들(우석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만)이 스물스물 기어와 헛소리 찍찍대고 있으니...

    새끼들아 우리나라 공부한다는 넘들 대가리 문제가 아니고 니들처럼 찌질한 태도가 문제야. 그런 태도로는 반드시 공부하는 동료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게 된다. 아니라면 아니라고 자신있게 대답해봐라.

    하여간 븅신색히들...^^ 새끼들 좀 놀아주니 정신들을 못차려요. 허접한 새끼들...^^
  • 레비나스 2007/01/07 [14:01] 수정 | 삭제
  • 예를들어 삼족오와 고구려를 사랑하는 일반 사람들이 자선 단체를 만들어 후원을 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행사를 하는 사람들의 다른 모습이라면 어쩔 겁니까?

    UN이 보편주의에 입각해 있다면, 삼족오도 얼마든지(자연과의 어울림에 상징) 보편주의의 다른 방식으로 풀이 될 수 있습니다. 차도르가 저항의 상징으로 변화했듯이 말입니다.

    이것을 비판하기 위해서 보편주의적 해석으로 회귀하는 것은 낡은 방식입니다. 패권주의를 패권주의로 대응하는 것은 우석훈씨 자신일 겁니다.

    이런 경계의 곤람함들, 일반적으로 보면 그것을 비판하는 학문이 우석훈씨가 비판했던 프랑스 철학이겠지만, 그는 그것들을 폄하하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글이 나온 것일 수도..^^

  • 레비나스 2007/01/07 [13:47] 수정 | 삭제
  • 패권주의가 누구일까요?

    제 글의 요점을 놓치고 있는 느낌입니다. 님의 보편주의로 보면 삼족오를 내세우는 그들이 보수주의자로 회귀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제 3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는 순수한 시민의 다른 모습이라면 어쩔거냐는 겁니다.

    차도르의 경우도 마찮가지입니다. 영국 길거리에서 차도르를 쓰고 다니는 여성들을 예로듭시다. 차도르는 '보편주의'의 시선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상징이지만, 그들 스스로 그것을 영국땅에서 지키려고 노력했을때, 선택의 자유등등의 다른 보편주의의 시선으로도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석훈씨의 시선은 바로 이런 곤란함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삼족오를 내세웠다고해서, 반기문 총장이 극우파에 해당되는 것일까요? 오늘자 신문을 보니 후세인 측근에 대한 사형등은 반대했다고 나왔는데 그렇다면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이런 경계의 곤란함, 해석의 곤란함, 실재의 곤란함, 균열을 메우는게 어설픈 보편주의의 미장이질(시멘트 질)일겁니다.

    제 말은 반기문 총장이 우파가 아니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제 비판은 오히려 반기문쪽이 아닌 우석훈씨 쪽입니다. UN 존재 자체가 보편주의에 합당하다면, 그것은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것은 UN에 이상이지, 현실은 결코 아니며, 강대국에 논리에 의해서 휘둘리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보편주의라는 것은 이런 현실을 덮는 세멘(시멘트)이지요.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스탈린같은 좌파 정치인들에 행했던 모든 폭력의 근원에는 그런 균열을 메꾸는 것들이 존재해왔습니다.

    삼족오에 대한 열망을 단순 패권주의나 나치즘과 같다고 말할 수 없는건 여기에 있습니다. 보편주의의 시각으로 보면 그것들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걸러질 수 없는 균열이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네요. 그것을 다시 서양식(보편주의는 분명 서양의 관념입니다, 그것은 아직 없었지만 있어야하는 것으로 상정되있는 것이죠.)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다른 패권주의의 모습일 뿐입니다.

    대체 보편주의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누가 그것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근대 철학으로 돌아가서 신을 불러와야할 판입니다. 우석훈씨의 정치적 입장의 곤란함처럼 그의 반기문 또는 한국인들에 대한 해석도 곤란해 보입니다. 하이데거식으로 비판하자면 그는 존재의 담론에 메몰되어 있는 존재자겠지요.

    여하튼 제 비판의 요지는 그는 프로이트를 읽어놓고도 프로이트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한국인들을 파악하는 이론 도구들을 찾는데 게을리 했다는 것입니다.
  • gogo 2007/01/07 [08:00] 수정 | 삭제
  • 거참 님, 우석훈씨에게 열등감을 느끼십니까?
    우석훈씨, 그만하면 훌륭합니다. 모든게 완벽할수는 없겠지만, 생각이 그만하면, 이나라의 희망입니다. 나는 중종 우석훈씨의 글을 읽습니다. 마음에 드는글도 있고 않드는글도 있읍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연주가도 내 마음에 않들때도 많습니다. 그때마다 트집을 잡을수는 없지 않소. 우석훈씨는, 많은 다른 columnist 들과 함께 한국에 경종을 주는 젊은이 입니다. 성공회대학의 객원교수로 알고 있는데...성공회대학에서는 정식 교수로 채용할 의사가 없는지요? 물론, 잡지에 글을 쓰지않는 석학도 많습니다. 그런분들은 새상살기가 더 어렵드라구요. 우리는, 특히 우리사회는 학자가 필요합니다. Hoelderlin 이라던가, cicero, xenophon 같은, 그리고 희귀한 학문을 하는분이 좀 있어야되는 사회 여야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까요. 미국에서의 일. Robert Fagles 씨는 Princeton 대학의 고전 교수로 얼마전에 은퇴를 하고 virgil's aeneid 를 번역했읍니다. 이책이 New York Times 의 Best Seller 에 올랐읍니다. 저는 깜짝 놀랐읍니다. Virgil 의 Aeneid 가 미국에서 Best Seller ? Aenied 는 수십명에의해 번역이 되였고 대학교재로서 많이 필리는것은 알고있었지만...그리고 Aeneid 는 Dryden 번역이 많이 읽히고 있는데...Robert Fagles 가 Best Seller ? 제 생각에는 Dryden 번역도 읽고, Humphries 나 Pharr 번역판도 읽은분들이 또 사서 읽지 않았다면 Rober Fagles 의 책이 Best Seller 가 되기 어려웠을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저는 미국을 좀 무시했었읍니다. 그리고 Aenied 가 New York Times Best Seller 라는 뉴스에 생각을 고쳤읍니다. 물론 체니 같은 엉터리 부통령이 있는 나라이간 하지만....
    학문을 사랑해야합니다. 한국 같은 신문의 제목만 보고 판단하는 사고에서 해방되지않은 이상 한국은 희망이 없읍니다.
    우석훈씨를 욕하지말고, 나쁜점은 지적하되 근거있게....
    내가 우석훈씨에게 대해 걱정하는것은 학문에서 show biz 로 흘러갈까하는 것이지요. 그럴리는 없겠지만....잔글도 좋지만 대작을 꿈꾸는것도 나쁘지 않을터인데....물론 대작은 설정부터 하는것은 아닙니다마는...하다보면 나오겠지요. 언젠가 우석훈씨가 젊은이들에게 책을 쓰라고 호소한일을 기억납니다. 우리는 쓰는것보다 읽어야합니다. 빈 대가리에서 글 써봤자...마광수의 표절정도이겠지....고대총장이나...고만 쓰지요.
  • 오래만에 2007/01/07 [02:32] 수정 | 삭제
  • 우석훈님의 화두에 괜찮은 분들이 낚였군요^^ 농담입니다.
    가볍게 쓰신 글이라 꼭 집어서 반론 같은 것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비나리님 특유의 화법이니 '삼족오' 반기문과 UN 사무총장(보편성을 전제로 한)의 간극 사이로만 이해해도 괜찮을 듯 싶네요.

    레비나스님의 지적이 좀 억지스러웠는데... 모지리님 글을 보니 반론이 필요없을 건 같네요.

    모지리님.. 혹시.. 씨탱님이 아니신지... 바야흐로 강호 고수들의 귀환을 보는 것 같습니다. 판이 무르익는 느낌입니다.~~
  • mogiiii 2007/01/07 [01:05] 수정 | 삭제
  • 우석훈씨 많이 뜨셨네요. 문장이 어쩌니 저쩌니 개념이 이러쿵 저러쿵하는 군소리 댓글이 많이 달리는건 우석훈씨의 글이 어떤 사람들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위에 '거참'이라는 분은 견적이 안나오니 냅두고, 레비나스 님의 댓글만 살펴보겠습니다.

    뭐 우석훈씨가 좌파냐 아니냐가 중요한건 아니겠으나, 우석훈씨의 글들 중에는 스스로 좌파임을 밝히는 대목이 가끔 등장하더군요. 글을 쓸때마다 '우선 내가 좌파임을 밝히겠다'는 사상고백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삼족오의 문제는 그것이 '보편주의'의 상식을 위배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보편주의'를 표방하는데 '나는 좌파'라는 자격증이 필요한것은 아닙니다. 글 첫머리부터 좌파 선명성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하는 레비나스 님이야 말로 스스로 좌파인지 부터 밝히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쓰는 모든 글에서 말입니다. 저처럼 레비나스 님의 글을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독자도 있으니까요.

    차도르의 예를 드셨습니다. "자국의 문화를 알리며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건 좋은데, 그것이 하필 "자국"에서 여성억압의 기제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보편주의'에 입각해서 볼때 '우파'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패권주의를 꽤 노골적으로 드러낸 삼족오의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우석훈씨는 위의 글에서 분명하게 "지금 삼족오가 의미하는 바는 순수하게 패권주의 아닌가?"라 말했습니다. 레비나스 님이 언급하신 "한국인을 적절하게 설명할 어떤 이론이나 탐구"가 없이 '보편주의'적 잣대로만 봐도 삼족오는 패권주의입니다.

    국제적 시선에 대한 레비나스 님의 트집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위에 우석훈씨가 코피 아난 이야기를 써놓았지요. 코피 아난은 '서양'사람입니까? 아니면 '서양식'가치를 추구했습니까? 아니지요. 그는 '보편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국제적 시선이라면 오히려 고구려 문양인 삼족오가 저항적이지 않냐구요? 아니지요. 패권주의적, 팽창주의적이지요. 아무리 중국이 역사왜곡을 하고 패권주의적, 팽창주의적으로 나온다고 똑같이 대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야 말로 팔이 안으로 굽는 경웁니다. "비 팽창주의적인 민족주의자들이나 NL같은 애들은" 자주 팔이 안으로 굽어서 "위험한 우파"라 욕을 먹기도 합니다. 북한 정권 보위한답시고 핵무장도 지지하지 않던가요.

    자꾸 '보편주의'를 서양적 개념이라 부르면서 혼동을 하시는데, '보편주의'는 UN의 운영원리를 가장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으로써 동서양을 아우릅니다. 여기다 대고 자꾸 '동양은 다르다', 혹은 '우리나라는 다르다'라고 외치는것은 미국의 일방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팽창주의가 서양에서는 욕먹을 것이고 동양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제3세계 시민들 혹은 그들의 인권을 걱정하는 다른나라 시민들이라도 '보편주의'를 거스르는 오류를 범한다면 동서양을 막론한 전세계적인 비판을 받는게 당연하고 또 그것이 그들에게 성찰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비판은 약이 될 것입니다.
  • 레비나스 2007/01/06 [20:48] 수정 | 삭제
  • 우석훈은 좌파인가? 프랑스의 철학이나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평소 우석훈은 좌파란 단어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듯하는 인상을 받았다. 좌파적 비판은 하고 있는데 온전한 좌파는 아니라는 필사적 저항선이 있는듯 보이는건 나뿐일까? 그렇다고 불온한 비판적 소수자도 아니다. 그래서 따져묻는다면 대답이 곤긍해질 것이다. 유럽 사민주의 중도좌파?ㅎㅎ 녹색당?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우석훈씨의 곤긍은 엉거주춤 좌파와 기타등등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석훈씨의 모습만큼이나 좌충우돌스러운게 사실이다.

    영국의 차도르를 쓴 여성에 대한 논쟁에서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외부에서 볼때, 차도르는 어떤 여성 억압의 상징물처럼 여겨졌지만, 소수자의 문화 아이덴티티로 여겨졌을때 차도르는 저항의 상징물로 대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족오도 그렇게 볼 수 있는게 아닐까? 우석훈의 주장처럼 문화 세계주의 세상에서 자국의 문화를 알리며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소수자들이 모두 우파들일 필요가 있을까나?

    속단하지는 말자. 분명 문화의 아이덴티티와 삼족오는 다른 것이니까. 사실이다. 삼족오를 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은 분명 문화를 지키는 정체성과 다른 이데올로기가 짙게 깔려있다. 그것이 무엇일까나? 사실 우석훈씨의 가장 큰 곤긍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국인들을 적절하게 설명할 어떤 이론이나 탐구가 부족하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런 비판을 가장할때 좌파의 옷을 살짝 입고선 위선을 떨어대며, '그것은 나빠요, 국제적으로도 우파에 속해요'라고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가 나쁜가, 좌파가 나쁜가.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옳은가? 사람들은 보통 어떤 특정한 지식과 가치를 중심에 놓고 이런 주장들을 쏟아내는데, 우석훈의 글을 보고 있으면, 그 기준이 매우 애매하다는게 문제다. 국제적 시선? 좌파적 가치? 국제적 시선이라면 모든게 서양식으로 돌아가는 국제시대에서 고구려 문양이 그렇게 눈에 띄는 가치였을까나? 오히려 저항적이지 않는가? 또한 좌파적 가치라면 팽창적인 우파나 파시즘같은 인종주의 우파등등에 대한 비판일텐데, 비 팽창주의적인 민족주의자들이나 NL같은 애들은 어떻게 분류할까나? 이 사람들도 위험한 우파들인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건, 한국인들을 이해하는데 서양적 개념을 끌고 들어오는 인간들의 행태다. 이 서양적 개념이란 분류의 폭력인데, 한국의 내셔널리즘이라고 불리는 민족주의는 이탈리아의 파쇼와 다르고, 나치의 인종주의와는 전혀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는 것.

    붉은 악마를 보는 좌우파의 어리섞음, 그것을 보는 정치학, 지식인들의 비판은 아마 대중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지난 2002년을 되돌아보면, 붉은악마들의 열의는 단순히 우파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데, 나치와 파쇼들처럼 응축된 불만을 외부적으로 전가시켜 폭발시키는 것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며, 해방의 느낌, 자유의 느낌까지 주었다는 것도 그렇고, 인종주의는 커녕 언어가 다른 외국인들과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어떤 열린자세까지 있었다는 것만봐도 알 수 있다. 마치 과거 고구려와 백제가 지냈던 제천 행사의 모습과 같은데, 그것은 우리의 언어로 '흥'이라고 불려야 할듯하다.

    한국은 서양과 조금은 다른 지대이다. 삼족오나 고구려를 말하는 한국인들의 망상은 조금 다른 언어로, 조금더 깊은 사색으로 이해되어야 할것인데, 우석훈같이 C급 경제 학자들은 너무나 쉽게 재단한다. 삼족오가 팽창주의의 상징이라면, 그 상징을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제 3세계의 인권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또다른 모습이라면 어쩔 것인가?

  • 거참 2007/01/06 [17:23] 수정 | 삭제
  • 돌/너 우석훈이냐? 똘팍처럼 말하는게 우석훈 같기도 하고. 너 내 글이나 읽고 씨부려라. 자식아 도대체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이해를 못하고 주절대냐? 한심한 놈이구만.
  • 2007/01/06 [17:11] 수정 | 삭제
  • 자국내 외교부를 대표한다면 표상물이 삼족오기던 치우천왕기던 지들꺼라 뭐라고 안해 근데 세계에서 분란좀없이 살아보자던 유엔대표수장이 혹시 일본이 되서 하늘의 자손이라 여기던 일본군에서 사용하는 욱일 승천기를 들고 나오면 그것도 허용해줘야 하잖어.. 더웃긴껀 연속극에 나온 다물활에 적힌 홍익인간이란 글자야 아니 지금으로 말하자면 미사일이나 대포에 홍익인간이라고 쓴거하고 무슨차이냐고. 요즘에도 그걸로 인간을 이롭게 할수있다는건지... 부시하고 생각이 너무나 똑같잖어... 차라리 훈민음서문으로 표상을 택했으면 훨씬더 나았을 거잖어 널리 소통하자는 얘기라서..
    프랑스기의 박애 평등 자유는 세계 어느국가에도 적용될 보편적 기준이라서 한거야
  • 거참 2007/01/06 [15:38] 수정 | 삭제
  • 이런 친구들이 마찬가지로 머리 나쁜 어린애들에게 영향을 미치니 요즘 흔해빠진 얼치기 진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도대체 국제기준이라는 게 하나로 딱 통일되어 있다는 저 발상부터가 초등 수준도 못되는 대가리를 증명한다. 무슨 국제기준? 외국의 좌파 학자들이 몇명 모여서 학파라는 것 만들고 갸들이 무슨 기준 정하면 그게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기준이 되는 거야? 나 참 별 허접한...^^
  • 거참 2007/01/06 [15:32] 수정 | 삭제
  • 개념 규정이 왜 이리 제멋대로인지... [중국도 역사 왜곡인데, 우리가 긍지를 좀 가지면 안 되나?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국제 기준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한다.] ??? 그 국제 기준이란 게 무슨 기준을 말하는 건지... 국제 기준이 한두개도 아니고 좀 정확하게 표현하면 안되나? 내가 보기에는 저런 국제 기준을 사용하는 아이들이 극좌 또라이들일 것 같은데... 아닌가? 그리고 [자신이 삼족오라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이 문장도 웃긴다. 자신이 삼족오? 도대체 무슨 의미냐? 나 참, 이 사람은 조선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차원을 떠나, 도무지 개념 구분이나 정리조차 할 줄 모르는 것 같다.
  • 거참 2007/01/06 [15:26] 수정 | 삭제
  • 이 사람 글 몇번 읽어보려고 했는데 좀 묘한 느낌이다. 공부는 한 것 같은데 어딘지 글이 정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입장이 달라서 그런 것 같지도 않고... 뭔가 나사가 빠진 상태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달까... 그런 느낌이다. [프랑스가 사용하는 인장과 상징들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자유, 평등, 박애... ] 이게 무슨 말일까? 프랑스의 모든 상징이 저 세 가지로 귀결된다는 말일까? 아니 '프랑스'라는 주어 자체가 성립할 수 있나? 프랑스 사람들인지, 프랑스 정부인지 아니면 그냥 프랑스 땅에서 이뤄지는 모든 상징이라는 건지... 저 세가지는 그냥 프랑스 국기가 상징하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고 프랑스의 모든 인장과 상징이 저걸 의미해?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프랑스 어떤 회사가 (불가능하겠지만) 하겐크로이츠를 회사 상징으로 사용하면 그것도 자유와 평등, 박애를 의미하게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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